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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빛에 불빛 내 마음의 호이안

  • (2019-04-29 08:58)


만약 당신이 호이안을 떠올리고 있다면 이미 당신 마음속에는 소박하게 심지를 올리고 반짝 불이 켜졌다는 거다. 굳이 나만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속을 드나드는 모두가 허방을 딛지 않도록 발끝을 비추며 청사초롱처럼 소박하게 호이안이 빛난다.


아랑곳 않고 옛 모습 간직한 마을
호이안은 다낭과 맞닿아 있어 이제는 지역 간의 경계도 희미해졌다. 그러나 이미 상당 부분 옛 모습을 잃어버린 다낭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호화 리조트를 짓느라 부산한 다낭과는 달리, 호이안은 세월이야 가든 말든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눈 높은 여행객들을 끌어들인다.

호이안에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낭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인구 8만 명 남짓한 호이안에는 공항이 없다. 다낭국제공항에서 택시로 30여 분, 우리 돈으로 2만 원 안팎이면 호이안에 닿는다. 긴 해안선을 벗어나면 휴양지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논밭이 번갈아 나타나는 농촌 풍경이다. 베트남의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걷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오토바이 천국이다. 농부도 어부도 상인도 그리고 학생들까지도 오토바이를 타고 오간다. 오토바이를 탈 수 없는 초등학생들은 엄마나 아빠가 모는 오토바이에 얹혀 간다.


누구나 마음속에 등불 켠 배화교도가 되는 곳

열대의 밤은 일찌감치 찾아온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시간을 어기는 법이 거의 없다. 온대지역이 낮과 밤의 길이로 계절을 가늠하는 것과는 달리 적도 인근의 호이안에서는 비의 양으로 계절을 구분한다. 4월에서 9월까지는 건기, 그 외에는 우기다. 우기에는 섭씨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도 드물지 않다. 

시간을 어기지 않고 밤이 오듯이 시간을 어기지 않고 등도 불을 밝힌다. 호이안의 옛 마을은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긴긴 전쟁을 겪고도 용케 몸을 다치지 않은 데 대한 격려 또는 사례일 수도 있겠다.

옛 마을은 남중국해로 흘러드는 투본강 기슭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밤이 이슥하도록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시장이 있고, 그 옆에는 앙증맞은 등을 서너 개씩 매단 나룻배가 손님을 기다린다. 30분 남짓 물결에 몸을 맡겨 두는 나룻배에 오르면 예쁘게 접은 종이 접시에 촛불을 켜고 물 위에 띄워 소원을 빌기도 한다. 유람이 목적이 아니라 소원을 비는 것이 더 큰 목적이어서 사람들은 이 나룻배를 ‘소원 배’라고 부른다. 길을 가다가 유창한 한국말로 소원 배를 타라는 권유를 받는다면 이미 당신의 소원은 절반쯤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큰 맘 먹고 호이안까지 왔다면 소원 배는 한 번 타 보시도록. 기껏해야 한국에서 오리배 타는 값의 반도 안 되니까.

사람들이 불을 피워 소원을 비는 풍습은 불을 피워 짐승의 공격을 피했던 수렵시대의 유전자가 각인된 탓이다. 향을 피우거나, 촛불을 켜거나, 모닥불을 피웠을 때 공연히 경건해졌던 경험이 있다면 당신도 이미 무의식 속에서는 불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원시의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 미광
▷ 완탕튀김
▷ 반쎄오
▷ 화이트로즈

호이안에는 미슐랭 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행자들 사이에, 또는 블로거들 사이에서 이름난 맛집이 많다. 베트남 음식이라는 것이 고급 식당에서 길거리 음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입맛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급 와인이 가득 들어찬 와이너리를 갖춘 식당도 있고, 서양에서 날아온 쉐프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도 많아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는 말을 해볼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불빛 가득했던 골목 다시 채우는 꽃빛
일제히 불을 밝혔던 밤이 여행자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모든 불이 꺼지고 오로지 태양만이 떠올라 골목골목을 비추는 아침은 호이안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다. 찬란한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온갖 꽃들이 드러나고, 호이안의 색이라고 불러도 좋은 노란 칠을 한 담벼락도 화사함을 더한다.

아침엔 세상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꽃향기도 훨씬 더 분명하게 코끝에 느껴진다. 인파에 치여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좁은 골목길과 문 닫은 상점 모퉁이마다에도 꽃향기가 흘러내린다. 어제 지난 거리가 이곳이 아니라 꿈속의 어느 장소는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다.


다만 군데군데 노상 식당들이 군데군데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아침 손님은 대부분 호이안 사람들이다. 눈꼽을 떼며 엄마 손에 이끌려 나와 호이안식 쌀국수인 ‘꺼우러우’로 아침을 떼우고 학교로 가는 아이도 있고, 온가족이 길거리로 나와 아침을 먹기도 한다. 꺼우러우는 국물이 거의 없는 쌀국수다. 독특한 소스와 쌀 전병을 부숴 뿌리고 채소 한두 가지를 고명으로 올렸다. 아침으로 먹기에는 좀 깔깔한 듯 싶지만 의외로 목에 걸리지 않고 잘 내려간다. 쉽게 끊어지는 일반 쌀국수와는 달리 면이 탱탱해 씹는 맛이 제법이다.

개들도 소란한 밤중보다는 조용하게 가라앉은 아침이 훨씬 더 마음에 드는 눈치다. 밤에는 보이지 않던 고양이들도 아침햇살을 받으며 털을 고르고, 닭도 마음껏 홰를 친다. 그 옆에서는 담과 나무와 덧창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도마뱀도 볕을 쬔다.

호이안은 지난 밤에는 등불을 밝혀 아름답더니 오늘 아침엔 온갖 꽃을 피워 아름답다. 한국에서도 6월이면 작렬하는 태양을 받으며 처연하게 꽃을 피우는 능소화가 열대의 골목길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밤사이 부겐빌레아 꽃잎이 별이 지기라도 한 것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열대의 꽃 중에는 이 부겐빌레아가 으뜸이고 히비스커스와 플루메리아가 그 뒤를 따르지 않을까?

호이안은 잠시 잠깐 등불 단 골목만 보고 가서는 좀 곤란하다. 등불이 꺼진 자리에서 향기를 쏟아내는 꽃빛을 보지 않고는 호이안을 다 봤노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불이 호이안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아침을 밝히는 꽃빛이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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