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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후에’ 안 가도 ‘후에’ (2019-05-03)

권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베트남의 지금은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뒤늦게 출발한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만15년에 걸친 긴긴 전쟁을 치르느라 전 국토는 초토화됐고, 그 바람에 유물도 유적도 참화 속으로 사라져갔다. 다만 후에에 터를 잡은 응웬왕조의 흔적만이 치열한 전투를 견디고 간신히 남아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을 때 여행은 시작된다

다낭에서 후에로 들어가는 길은 하이반 터널을 통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이반 터널의 길이는 6km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길다.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건설된 이 터널이 완공되면서 다낭과 후에 사이의 자동차 주행시간은 약 30분 정도 단축됐다.

긴 터널을 지나면 활짝 시야가 트이면서 곧이어 랑코비치가 나타난다. 랑코비치는 해안선이 예쁜 어촌 마을이다. 작은 포구에는 고전적인 목선들이 정박하고 있어 현대화된 다낭의 풍경에 익었던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정도다. 그러나 랑코비치는 대부분의 여정에서 휴게소 역할에 그친다. 바다 외에는 관광객들이 환호할 만한 그 무엇도 없기 때문이다.   

막연히 후에성을 보리라고 마음먹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였다. 후에에서 다낭까지는 열차를 이용하고 싶었으므로 일단 열차표를 예매한 이후에나 일정을 짤 계획이었다.


최고의 선택 ‘시클로’

그러나 어떤 여행도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확인이라도 하듯이 머릿속으로 그려놓았던 일정은 말끔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호텔 근처에서 먹잇감(?)을 노리던 시클로에 나포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후에역까지는 걸어가리라고 마음먹었지만 끈질기게 따라붙는 시클로 기사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박항서라는 이름을 들이대며 ‘코리아 넘버원’이라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클로를 탄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비록 다낭까지 가는 기차는 귀국편 비행기 시간과 맞지 않아 포기해야 했지만 가장 유용하게 후에를 둘러볼 수 있는 교통수단인 셈이었다. 처음에는 8,000원 선에서 흥정이 오갔던 것이 정작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4만 원을 지불하기는 했어도 유쾌하고 기분 좋은 나들이가 됐으므로 흔쾌하게 지갑을 열었던 것이다.

시클로 기사는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고 어떻게 해야 고객이 편안해 하는지, 사소한 친절과 서비스도 곧 지갑과 연결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맛집을 꿰고 있어서 레스토랑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득달같이 맛집으로 안내하는 기민성까지.

당연히 장삿속이기는 했겠지만 후에강을 따라 20분 정도 보트를 달려서 도달하는 파고다도 썩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국적과는 상관없이 사람은 일단 유쾌한 쪽이 좋다. 그래야 이쪽도 덩달아서 유쾌해질 수 있으니까.


경복궁 압도하는 ‘후에성’의 규모

응웬왕조의 도읍이었던 후에성은 그 규모에서 경복궁을 압도한다. 경복궁이 참화를 겪고 복원된 것처럼 후에성 또한 복원이 되고 있고, 베트남의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속도를 낼 것이다.


성터는 한눈에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넓다. 무너짐으로써 오히려 그 웅장한 규모를 더욱 분명하게 각인시킨다. 성문을 통해서는 여전히 주민들이 드나들고 깊이 파놓은 해자에는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고 연밥을 딴다. 우리의 경복궁이 그저 쳐다만 봐야하는 죽은 유물이라면 후에성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 기대어 있는 실물이다.


성루에는 초대형 금성홍기가 우뚝 서 있다. 깃발만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발명품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모든 전쟁터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그 깃발을 지켜야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청춘들이 목숨을 바치지 않았던가. 이 땅 베트남에서도 성조기 아래, 태극기 아래, 금성홍기 아래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테니. 후에성에 나부끼는 금성홍기는 이곳은 무너진 응웬왕조의 땅이 아니라 통일베트남의 영토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골목마다 꽃향기 부어주는 후에 사람들

화창했던 전날과는 달리 이튿날엔 비가 내렸다. 는개처럼 뿌리다 개었다 반복하는 날씨. 다시 후에성을 찾았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베트남 도처에서도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전날 시클로를 타고 돌아봤던 곳을 다시 한 번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시클로가 성곽도로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발걸음은 아무리 좁은 곳도 위태한 곳도 모두 들어가서 밟고 확인할 수가 있다.



후에는 깨끗하다기보다는 깔끔하다는 말로 정의할 수 있겠다. 성곽마을의 집집마다 작은 정원이 딸려 있고 정원에는 잘 가꾼 정원수들이 저마다의 꽃을 매달고 있다. 길가에도 강가에도 나무 천지 꽃 천지인데 분재까지 들여놓아 마당에 꽃이 핀 것인지 꽃밭에 집을 지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좀 생뚱맞게, 예고편도 없이 마당에다 탁자를 놓고 카페를 열기도 했다. 그 카페에도 분재로 가득하다. 주인장 말로는 가게 문을 열고 처음으로 방문한 외국인 손님이라고 한다. 고교생쯤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둘도 우리 주위를 맴돌며 수줍게 웃는다.

베트남 아니, 모든 열대의 도시가 그렇듯이 후에 또한 꽃구경만 해도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집집마다 꽃을 키우고, 골목길을 향해 향기를 부어줄 줄 아는 사람들이 후에에 살고 있다.

열대의 밤은 일찌감치 찾아온다. 여행자거리의 교통이 차단되는 여섯 시 무렵이면 한밤중이라고 해도 좋겠다. 교통이 차단되면 오토바이를 탄 사람까지 내려서 끌고 가야한다. 백인도 많고 중국사람도 많고, 흑인도 있고, 한국 사람도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더 많다. 흥겨운 음악이 스콜처럼 쏟아지고, 흥청망청 취기가 오를대로 올라도 후에의 여행자거리는 최후까지 깔끔한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전송한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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