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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사상누각(沙上樓閣) (2019-07-05 09:44)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은 항상 ‘기초’가 튼튼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 노력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자 그때서야 “아 내가 기초가 부족 하구나”라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라더니, 중학교 때 아니면 고등학교 1, 2학년 때 좀 더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고서야 느낀 것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죠.

최근 정부는 잇따라 바이오헬스 산업을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차세대 3대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바이오헬스 산업에 R&D 규모를 4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향후 5년간 2조 원 이상의 정책금융 투자를 약속했으며, 신약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적극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선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정책을 준비한 사람들이 해당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느 분야든지 그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기초학문의 발전이 필수적입니다.

정부가 생물학, 기초의학, 약학 등에 대한 지원 없이 기업 위주의 지원을 펼친다면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산업은 다국적 제약사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에 비하면 기술력과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신약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한지 올해로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불미스러운 일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7월 3일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산업에 불미스러운 일이 또 발생했습니다. 인보사 허가취소가 최종 확정됐으며, 지난 2015년 최초로 약 1조 원대 신약 수출 계약을 체결했던 한미약품 비만•당뇨치료제(HM12525A)의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얀센과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고, 계약금과 임상개발, 시판허가, 매출단계별 성공에 따른 마일스톤으로 최대  8억 1,000만 달러(약 9469억 원)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미약품 주가는 폭등했고, 회사는 단숨에 제약업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

얀센이 계약을 해지한 이유는 미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얀센에 따르면 최근 진행이 완료된 2개의 비만 환자 대상 임상2상 시험에서 1차 평가 지표인 체중 감소는 목표치에 도달했으나, 당뇨가 동반된 비만 환자에서의 혈당 조절이 내부 기준에 미치지 못해 권리 반환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인보사도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던 도중 주성분 2액이 허가를 받은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인 것으로 확인돼 허가 취소라는 참담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 신약개발은 용두사미가 된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2011년 당시 식약처와 줄기세포 기업 파미셀 사는 ‘하티셀그램 AMI’를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라며 대대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한미약품의 신약 계약 해지도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5년 7월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에 내성표적 폐암치료제 ‘올리타’에 대해 총 7억 3,000만달러(약 85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부작용 등 임상문제로 인해 무산된 바 있습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신약 규제를 완화한다면 바이오헬스 업계는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해 앞 다퉈 신약 허가를 신청할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약 개발은 막대한 자금과 기나긴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만든 신약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닙니다. 신약후보물질을 찾아내고 수 십, 수 백 혹은 수 천 번의 임상시험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예산지원하고 규제완화해서 금방 신약이 만들어진다면 중국에서는 벌써 수많은 신약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통과한 신약이 해외에 나가면 자꾸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 일까요? 정답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신약에 대한 인허가 과정이 허술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임상승인기간은 30일로 중국이나 유럽의 60일보다 적습니다.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도 더 완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규제가 더 완화됩니다. 의약품은 사람의 생명과도 직결됩니다. 국내 인허가를 통과한 제품이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계속 나온다면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는 계속 떨어질 것입니다.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과 신약개발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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