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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등뼈 ‘랑비앙산(山)’ (2019-08-30 10:40)

권 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랑비앙산은 해발 2,163미터로 백두산만큼 높다. 그러나 달랏이 해발 1,700미터에 자리한 도시이고 랑비앙 마을은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산 아래 도착해 올려다보면 그냥 우리나라의 야산처럼 보인다. 우리야 태어나면서부터 워낙 많은 산을 보고 사는 탓에 산에 대해 이렇다 할 감동도 감흥도 없다.

 
해발 2,000미터에 쏟아지는 직사광선

랑비앙산의 특징이라면 입구에서 정상까지 지프를 이용해 올라 갈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5분 정도 지프를 타면 금방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나처럼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완전 황송한 일이다.


이번에도 랑비앙 마을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난해에도 랑비앙까지 걷기는 했지만 그때는 걸으려고 걸었던 게 아니라 계획 없이 길을 나섰다가 어쩌다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그 길 끝에 랑비앙이 있을지도 몰랐고 그저 가장 높은 산을 향해 가다보니 그곳이었을 뿐이다. 준비되지 않는 트레킹이 어떠한 고통을 불러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실감나게 체험했더랬다. 물도 없이 양산도 없이 모자 하나 달랑 쓰고 해발 2,000미터의 직사광선 속을 걷는 것은 인도의 고행자에게나 걸맞은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낯선 곳이라는 기대와 설렘도 가혹하게 쏟아지는 자외선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구멍가게와 커피숍이 있다. 커피숍이라고 해서 한국의 그것만큼 요란하지도 않고 나무탁자에 플라스틱 의자 몇 개 깔아놓은 걸로 끝이다. 그야말로 소액 창업이 가능한 업종인지라 그냥 가정집이라도 공간만 있다면 영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에 대한 집착 같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라고 이해하는 쪽이 더 합당할 것 같다. 당시 랑비앙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도 카페에 들러 쉬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카페의 주인아저씨는 영어가 유창했고 열대여섯 살로 보이던 아들은 통기타를 긁적이면서 카페를 물려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한국과 이스라엘을 베트남과 한 데 묶어 ‘3대 독종 민족’이라고 한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프랑스 중국과 붙어서도 먼저 물러서지 않았던 베트남 사람들의 투지와 결기는 생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달랏에 밤이 내리면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까지 화덕을 메고 나온다. 삐딱한 눈으로 보자면 아동 노동이지만 내 눈에는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로 보인다. 독종 민족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저개발국가와는 달리 구걸하는 사람을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다. 간간이 손을 내밀기는 하지만 노골적이지도 않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달리 방도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한다. 심지어는 복권을 파는 사람들도 아침 7시면 거리로 나온다. 복권판매원들은 베트남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풍경 중의 하나다.

다 똑같은 복권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복권에 그려놓은 그림은 다 다르다. 1등 당첨금은 1억 6,000만 동. 우리 돈으로 8,000만 원 정도 될 것 같은데 거금이다. 호기심 반 측은지심 반으로 복권을 샀지만 당첨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없던 행운이 베트남이라고 해서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2013년 겨울. 처음 달랏을 여행했을 때 지프를 타고 랑비앙산의 정상까지 올랐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그다지 볼 것은 없을지라도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이곳에 올 일이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선뜻 지프 등반을 선택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택시기사의 권유가 있었고 딱히 관광지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고원지대까지 불어 닥친 개발 바람

랑비앙산의 정상에는 군용 지프가 한 대 서 있다. 생뚱맞은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과 맞붙어서 이겼다는 자부심이 물씬 느껴진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랏은 남베트남에 속해 전쟁에 패했고 북베트남에 흡수 합병됐다. 그렇지만 민중들은 북베트남에 패한 기억보다는 미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는 것을 더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현실과 절묘하게 겹친다. 남한과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합병이 되고 미국이 영향력을 잃게 된다면 우리 역시 이들처럼 생각하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약 300~400미터 정도 더 올랐을 뿐인데 하늘이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풍경이 낮게 엎드려 있고, 정상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오른 쪽으로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멀리서도 황토 빛이 선명했다. ‘가도 가도 황토길’이라더니 달랏에서는 온 사방이 황토다. 정글과 밀림이라는 개념도 달랏에는 좀 달라진다. 마치 골프장에서 꽂아놓은 것처럼 소나무 외에는 이렇다 할 식물군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록달록하게 란타나 덩굴이 꽃을 피우고 있을 뿐 관목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 번 더 정상에 가보고 싶었으나 지프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정상으로 난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좀 더 멀리, 높이 가 볼 작정이었으나 산길의 경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거기에다 해발 2,000미터의 가혹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한 굽이를 돌았을 뿐인데 입구에서 내려다보던 것과는 확연히 전망이 달라진다. 길을 버리고 언덕으로 들어섰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마치 그림 속의 한 장면 같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대보지만 워낙 햇살이 강렬한 탓에 제대로 찍혔는지 어떤지 확인할 도리가 없다. 요즘이야 웬만하면 잘 찍히니까 그러려니 하고 카메라를 내리고 하늘과 구름과 바람에 오감을 맡겨 본다.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내려다보인다.

다시 우산을 양산처럼 펴고 랑비앙을 떠나면서 가게마다 들러 ‘껨(아이스크림)’을 찾았지만 팔지 않는다.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가게처럼 전기세가 무서웠거나 수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랑비앙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대절한 차량으로 매표소까지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여행자로 인해 작은 가게들이 혜택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도 대기업만 혜택을 볼 뿐인 것처럼.

아이스크림을 포기하고 점심으로 ‘껌승’을 먹기로 했다. 올라올 때 봤던 새로 생긴 듯한 식당을 찾아갔다. 작년에 들렀던 식당은 공사 중이다.
식당을 새 단장하는 것인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는 것인지 인부들이 들락날락 부산하다.

베트남도 대한민국만큼이나 급격하게 변화하는 나라다. 1년 사이에 변한 것들이 적지 않다. 재작년에 새롭게 단장했던 달랏시장 뒤편이 또다시 공사 중인 것처럼. 생각이 변한 것인지 정책이 바뀐 것인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식당은 새로 문을 연 만큼 음식도 깨끗하고 주인은 친절하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이들 중의 하나가 웃는 낯으로 ‘헬로~’하고 인사를 건네 온다. 우리 마음이 아이의 미소에 반응하면서 환해지는 게 느껴진다. ‘신짜오’라고 화답했더니 아이들과 식당 손님 전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다. 별 말은 아니지만 오고가는 인사 한 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실감이 난다.

껌승은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밥 위에 얹어주는 간단한 요리다. 돼지고기와 함께 계란이나 야채, 볶은 땅콩이나 잔 새우도 선택해서 곁들일 수 있다. 일종의 뷔페 같은 것인데 맛이 그만이다. 물론 오래 걷고 난 후에 먹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아쉬운 것은 지난해에 이곳을 찾았을 때 국숫집을 차리면 꼭 좋을 법한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새 헐리고 새 건물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은 반드시 선진국을 따라 가야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랬듯이 옛 것은 무조건 헐어내거나 밀어내는 현장을 보면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오늘의 풍경이 얼마나 정겨운 것이며, 민속촌이라는 이름으로 옛 풍경을 재현하자고 덤벼들 게 눈에 선하다.

우리의 구멍가게들. 한 짝 한 짝 나무문을 떼었다 붙였다하던 그 가게의 풍경들을 이제 우리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드라마 세트장이나 돼야 그 당시의 풍경을 잠시 떠올릴 수 있을 뿐 우리의 기억은 국민소득 3,000 달러 언저리에서 단절되고 오로지 세계적인 것, 현대적인 것에 열광하는 좀 ‘빈티’나는 민족이 돼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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