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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샬라 이집트 (2020-01-03 12:37)

권 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이국의 수종으로 꾸며놓은 엄청난 면적의 공원 내에 자리 잡은 식당은 한 눈에 보기에도 일반 서민들과는 때깔이 다른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대개 위험해 보일만큼 뚱뚱한 몸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곳에는 다이어트라는 개념은 없는 듯하다. 



고급 식당일수록 음식이 짠 이유는 뭐냐?
지구상의 어느 곳보다 남녀의 차별이 심하다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아내와 외동딸을 대동하고 행복한 저녁 식사를 즐기는 젊은 가장이 어쩐지 낯설어 보인다. 결국 性 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어쭙잖은 자격지심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히잡을 쓴 아름다운 아내와 아직은 윤이 나는 머리카락을 히잡으로 가리지 않아 나풀거리는 딸의 재롱을 흐뭇한 눈길로 지켜보는 그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을 차별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고급이라고는 해도 이집트 식당에서의 풀코스 만찬은 한국 사람에게는 좀 벅차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그렇지만 샐러드를 제외한 모든 음식에 소금을 쏟아 부은 듯 짜다. 한 입 베어 먹고 나면 혀가 굳는 듯하고 입술이 금방이라도 부풀어 오를 듯이 화끈거린다. 아내도 아들도 주 요리는 마다하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공갈빵과 걸레빵만 뜯고 있다.

또 웨이터들의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잠시만 포크와 나이프를 八 자로 놓지 않고 11자로 놓아두면 잽싸게 그릇을 치워버린다. 그냥 둬도 먹을 수 없겠지만 그나마도 기다렸다는 듯이 치워버리니 부아가 날 지경이다. 우리가 먹을 것을 눈앞에다 두고도 끙끙거리는 동안 이집트 현지인들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만찬을 즐긴다. 걸레빵을 주요리로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의 정원으로 나가니 카이로의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다.

비행기 시각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 카이로에서 제일 크다는 칸 엘칼릴리 시장에서 기념품을 사기로 했다. 여행 블로그에서는 길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며 오로지 직진만 했다가 그대로 후진하는 게 길을 잃지 않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어떤 제품이든 부르는 가격에서 절반 이상을 후려쳐야 바가지를 덜 쓰는 거라고 주의를 준다. 예를 들어 10달러를 부르면 5달러에 사야 제값이 아니라 바가지를 덜 쓴 가격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가슴에다 새기고 시장통으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인산인해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어떤 유적지나 관광지보다 훨씬 더 많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복작거린다. 특유의 걸쭉한 고음으로 호객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어떻게 하든 가게 안으로 유인하려는 노력도 계속된다. 아마도 70년대나 80년대 초의 남대문 시장이 이랬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가거나 뭔가를 사러 가면 아버지는 항상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해 점원을 놀라게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가격을 판매원이 2만 5천 원을 부르면 어린 마음에는 5천 원을 깎아서 2만 원에 사는 것이 합당한 거래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2만 5천 원을 부르면 5천 원에 주라고 하시거나, 두 개에 1만 원을 제시하셨는데 실제로 아버지께서 부른 가격의 근사치로 거래가 이루어지고는 했다.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면서도 가격을 흥정하는 일은 어렵다. 물건을 사고 나면 언제나 손해를 봤다는 느낌이 들거나, 속았다는 느낌이 자주 드는 것이 경제활동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굿 프렌드란 ‘봉’이라는 뜻
사람에 밀려 시장을 떠다니는 동안 이 나라의 특산품이라는 스카프와 아동용 셔츠를 몇 장 샀다. 나름대로 깎아 보려고 애를 썼지만 한국에서 없던 재주가 이집트에서 생겨줄 리 없는 법. 아무래도 속은 듯한 값을 지불하고 비행기를 놓칠세라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공항으로 향한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깎는다고 깎았는데도 정가의 5배에 구매하고 말았다. 한국 사람은 좋은 친구라며 이 나라의 동전을 선물로 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굿 프렌드가 봉이라는 뜻이었다니.

사람과 자동차로 꽉 막힌 길을 택시는 엉금엉금 기어나간다. 한참을 그렇게 기어가지만 시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남대문 시장의 몇 배는 되는 것 같다. 골목골목마다 넘쳐나는 인파를 한국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본다면 아 옛날이여 하며 부러워 할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던 시장 풍경이 끝나고 고가도로로 접어들자 왁자지껄하던 소음도 잦아들고 카이로 시내가 낮게 엎드려 쉬는 듯하다.

기묘한 세법 덕택에 사람이 모두 입주를 하고도 여전히 공사 중으로 보이는 주택가를 지나고 풍경이 한가해진다 싶더니 카이로 국제공항이 나타난다. 여행의 막바지에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이 다툰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과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 돈을 좀 아낄 걸 하는 생각과, 이들의 고단한 생계에 좀 더 보탬이 됐더라면 하는 생각.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환하게 불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어딘지 쓸쓸해 보인다. 이러한 마음이 ‘공항의 이별’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려나 돌아가서 머물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그 행복한 공간에서 짧았던 여행을 추억을 할 것이고 어쩌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와 신의 나라 이집트로 되돌아 올 궁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목청이 크고 때때로 거짓말도 서슴없이 해대고, 그렇지만 알라께서 약속하신 내생에 대한 믿음으로 생각보다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들조차 그리워 질 날이 있을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비행기가 서서히 육중한 몸을 기우뚱 하면서 떠오른다. 카이로의 야경이 점점 아득해지고 사진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듯 마침내 어둠뿐이다.

인샬라!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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