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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소량의 혈액으로 250여 종 질병 진단? (2020-10-16)

희대의 사기꾼② 엘리자베스 앤 홈즈

▷ 엘리자베스 홈즈

자산가치 90억에서 0원으로
엘리자베스 앤 홈즈(Elizabeth Anne Holmes)는 미국의 메디컬 스타트업 기업인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겸 CEO지만, 실체는 메디컬 사기극을 벌인 사기꾼이다.

그녀는 극소량의 혈액으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의학 키트 ‘에디슨’의 개발자이다. 2014년 홈즈 대표가 에디슨의 개발을 공표하자, 테라노스는 미국 최고의 메디컬 유니콘 기업이 됐다. 2015년 테라노스의 시장 가치는 90억 달러로 평가됐으며, 포브스誌는 45억 달러 어치의 자사 주식을 보유한 그녀를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자수성가형 여성으로 꼽았다.

그러나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테라노스를 정밀 취재한 결과, 광고에 언급된 250여 개의 질병 중 실제로 에디슨이 진단할 수 있는 것은 헤르페스를 포함해 16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머지 200여 개의 병은 실제로는 다른 기업이 출시한 의학 기기로 진단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에디슨을 사용해 ‘정밀’한 검사 결과를 받으려면 주사기 한 대 분량의 피를 채혈해야 하며, 그렇게 받은 정밀 진단 결과도 통계적/의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이에 2016년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0원으로 추락했으며, 홈즈 대표의 재산도 공중으로 사라졌다. 


테라노스 창업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앤 홈즈는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어를 공부해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또, 똑똑한 머리로 고등학교 졸업 후 200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2∼3학년에 재학하던 당시 중국와 홍콩에서 사스가 유행했는데, 이 시기에 그녀는 중국어를 하는 이점을 살려 싱가포르의 연구소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의학 진단 키트의 아이디어를 얻어 2004년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메디컬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설립했다.

전통적인 혈액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주사기를 이용해 정맥으로부터 수 ml의 혈액을 뽑아야 한다. 이 때문에 환자의 의료 부담 비용이 높은 미국에서는 간단한 혈액 검사에도 수백 달러의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숙련된 의료진이 부족한 저개발국이나 내전 지역에서는 혈액 검사 시행 자체가 힘들다. 홈즈의 주장에 따르면, 에디슨 키트를 사용할 시 채혈 난이도와 혈액 검사 비용이 혁신적으로 낮아진다. 질병 진단 결과를 받으려면 손끝을 바늘로 따서 피 몇 방울을 에디슨 키트에 담아 테라노스 본사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은 약 50달러에 불과하다.
▷ 테라노스의 에디슨 키트

에디슨 키트 발매 직후, 테라노스는 미국의 주요 약국 체인인 월그린과 계약을 맺는 개가를 올렸다. ‘세상을 바꿔놓을 신기술’을 발명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 은근히 시달렸던 실리콘밸리는 테라노스의 등장에 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테크 미디어는 홈즈와 에디슨 키트를 치켜세우느라 바빴다. 홈즈는 항상 검은 터틀넥을 골라 입어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생명공학 관련 잡지보다는 IT 계열 미디어에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이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커져가는 의구심
하지만 의학계와 생명과학계는 손 끝에서 채취한 소량의 혈액으로도 질병 진단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단 기존의 방식대로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염도가 낮은 검체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손끝과 같은 말단의 모세혈관에 바늘을 찌르면, 상당량의 간질액 및 파괴된 세포 내액이 혈액과 섞여버린다. 설령 특수한 기술을 이용해 순수히 혈액만 채취할 수 있다해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극미량의 혈액은 질병 세포를 극히 적게 포함할 수 밖에 없으므로, 표본으로서 대표성을 갖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나 홈즈는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에디슨에 적용한 극비 기술은 외부로 유출시킬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에디슨의 진단 기술을 증명할 실험 결과나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다. 또, 테라노스의 투자자들은 기술 설명을 듣지 않겠다는 조건에 동의해야만 투자에 임할 수 있었다.
▷ 테라노스 본사

최초로 테라노스의 기술이 허구임을 보도한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에디슨의 원리를 묻는 <뉴요커>誌의 질문에 홈즈는 “먼저 화학작용이 일어나 화학 반응이 발생하고, 시료(혈액)와 화학적 상호 작용으로부터 신호를 생성한 후 결과로 변환한다. 이를 인증된 실험실 직원이 검토한다”라고 답했다. 홈즈는 화려한 언변과 자기 PR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유명인의 명성을 빌려와 피해가곤 했다. 


드러난 진실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 존 커레이루는 <뉴요커>의 인터뷰 내용에 의구심을 갖고 테라노스 취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커레이루는 테라노스의 전 직원 및 내부고발자의 치명적인 폭로를 들을 수 있게 됐다. 테라노스가 에디슨으로 진단할 수 있다고 제시한 250가지의 혈액 검사 항목 중 실제로 에디슨이 진단할 수 있는 것은 10여 개 항목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 항목은 대기업들이 출시한 별도의 기기로 검사를 시행해 진단한 병이었다. 게다가 테라노스는 규제의 빈틈을 교묘하게 노려 FDA의 검사도 거치지 않은 채 에디슨을 시장에 공개했으며,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실험 결과 조작으로 덮고 넘어갔다. 애초에 만능 진단 키트는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테라노스가 지금까지 내놓은 실험 결과는 모두 무효가 됐다. 2016년 테라노스는 주식 시장에서 퇴출됐으며, 에디슨 키트를 비치했던 월그린 등의 대형 마트들은 테라노스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연방 검찰도 본격적인 기업 조사에 착수했다. 한때 45억 달러로 평가받았던 홈즈의 주식은 하루아침에 0원으로 추락했다. 1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금 역시 공중분해 됐고, 애리조나 주는 그간 테라노스에 주었던 세제 혜택과 보조금에 대한 환급을 요구했다. 뉴스코퍼레이션의 회장인 루퍼트 머독이 테라노스에 투자해 손실한 금액만 약 1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8월 미국 보건부 산하의 CMS는 향후 2년간 홈즈에게서 실험실 운영 및 설립 자격을 박탈하고, 10년간 홈즈가 기업 임원으로 취임하는 것을 금지했다. 같은 해 11월, 테라노스 홈페이지에 ‘엘리자베스 홈즈로부터의 공개 서한’이 올라왔는데, 임상 실험 연구소와 고객 대상 혈액 검사를 시행하는 웰니스 센터를 모두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으며, 이 때문에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펜실베니아에서 근무 중인 직원 340명이 해고됐다. 홈즈는 앞으로 지카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는 소형 혈액 분석기인 미니랩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18년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홈즈의 의결권을 박탈하고 향후 어떤 상장사의 관리자도 될 수 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또, 같은 해 6월, 연방대배심이 홈즈와 운영책임자인 라메쉬 발와니를 총 11건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현재 산호세 지방 법원에서 재반 중이다. 결국 테라노스는 2018년 9월 청산 절차를 밟게 됐으며, 회사 측에 남은 현금은 채권자들이 분할하게 됐다. 


스토리텔링만 보고 이뤄진 투자 손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을 평가함에 있어 스토리텔링과 CEO의 캐릭터에 점수를 많이 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홈즈는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선호하는 ‘영웅 서사’ 또는 ‘성공신화’에 부합하는 캐릭터였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유명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홈즈

세계적인 명문 스탠퍼드 대학 중퇴
이 때문에 종종 하버드를 중퇴한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 리드 칼리지를 중퇴한 스티브 잡스에 비교되곤 했다. 하물며 스탠퍼드는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모체나 다름없으며, 미국에서도 혁신의 상징, 창업의 요람처럼 평가받는 학교다. 벤처업계에서 스탠퍼드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속설이 있다. 문제는 개인의 재능과 독학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IT 분야라면 몰라도 극도의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의학 진단 기기 개발을 화공과 2학년 중퇴생이 주도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미국 언론은 최초 4년간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비유대인 배인 여성 CEO
실리콘밸리나 유명 IT회사의 CEO들은 기본적으로 ‘아시아계’, ‘유대계’, ‘남성’ 중 두 가지 이상, 최소 한 가지의 조건을 갖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 조건들은 한마디로 미국 내에서 전형적인 너드(지능이 뛰어나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전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의 이미지를 가진 집단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유대계 & 남성이다. 구글의 현 CEO 선다 피차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계 & 남성이다. NVIDIA의 CEO 젠슨 황은 대만계 & 남성이며, AMD의 CEO 리사 수는 여성이지만 대만계다. 유튜브의 CEO 수잔 워치츠키, 생명공학 벤처 업체 23앤드미의 앤 워치츠키 자매는 동유럽계 성을 가진 전형적인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다.

그러나 홈즈는 여기에서 모두 벗어난 특징을 가진다. 이는 실리콘밸리나 테크 스타트업에서는 실제로도 드문 특징이고, 고위직으로 눈을 돌려보면 더더욱 찾기 힘든 특징이다. 예나 지금이나 벤처투자자들은 ‘새롭고 신선한 스타트업’을 찾아 헤매며, 따라서 이런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홈즈는 투자자들에게 대단히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게다가 외모가 비교적 받쳐주는 편이었다는 점도 무시하기 힘들다. 단순히 예쁘다 못생겼다가 아닌, 이지적이고 냉철해 보이는 이미지가 플러스 요인이 된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외모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홈즈는 거기에 머리도 금발로 염색하고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자신의 외적 이미지를 철저히 통제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이 검은 터틀넥은 덤. 당장 자신의 얼음칼처럼 날카로운 실루엣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에디슨 키트 홍보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전 CEO가 능력 외적인 부분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얻었던 이유도 그녀의 이러한 점들(젊고 미모가 빼어난 비유대인 금발 여성)이라는 점이 적지 않은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메이어의 경우와 비슷하게, 업계 종사자들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홈즈의 특성들이 투자자들과 언론의 눈을 가리는 장막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기타 스토리텔링
창업 후 자신의 전 지도 교수 채닝 로버트슨을 연구원으로 고용하는 등의 비범한 행동, 검은 터틀넥을 즐겨 입는 이유에 대해 묻자 “연구에 전념해야 하는데 옷 같은 걸로 고민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거나, 채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에디슨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진실이 까발려지기 전에도, 홈즈가 연구보다는 이미지 메이킹에 관심을 더 많이 보인다는 비판이 간간히 나왔을 정도였다.

이런 조건들이 맞물려 홈즈는 ‘젊고 신비로운 천재 미인 CEO’, ‘여자 잡스’라는 캐릭터를 구축했고,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한 기업이었던 테라노스는 비합리적일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테라노스의 가능성을 보고 달려든 펀드의 규모는 막대했다. 인기가 정점에 달하던 2015년, 테라노스의 시가 총액은 90억 달러를 넘어섰다. 세상의 다른 모든 메디컬 스타트업의 시가 총액을 다 합쳐도 테라노스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 모든 투자가 CEO의 캐릭터와 스토리텔링만 보고 이뤄진 것이다.

수년 간 아무도 테라노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수많은 미국의 유명 인사와 투자자들이 홈즈의 뒤를 받쳐주었다. 테라노스는 전설적인 외교관 헨리 키신저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제임스 매티스(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를 이사로 두었고, 언론의 제왕 루퍼트 머독의 투자를 받았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리고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공개적으로 홈즈를 극찬했다. 미국에서 테라노스의 권위를 의심한다는 것은, 곧 미국의 실권자들이 지닌 판단력을 의심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테라노스는 제대로 된 테스트 제품은 커녕 실험 데이터조차 공개한 적 없음에도 엄청난 영예를 누렸다. 테라노스의 투자자 중 의학과 관련된 인물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김선호 기자ezang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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