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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가을 길어진 가을 밤 (2020-11-20 10:47)

11월의 와인 보졸레 누보

▷ 프랑스 론 부서의 세르시에 마을 주변의 보졸레 포도밭 풍경(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0년 전까지만 해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면 와인숍마다 줄을 서곤 했다. 심지어는 편의점에까지도 프랑스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와인이 그득 찼으니 바로 ‘보졸레 누보’ 때문이었다. 보졸레 누보는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수확한 포도로 담근 햇와인이다.


잊혀진 와인 ‘보졸레 누보’
한창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하던 그때 한국 사람들의 싹쓸이 문화는 와인이라고 그냥 두지 않았다. 이제는 가격조차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시들해졌지만 그때는 햇와인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싼 2~3만 원대를 호가하기도 했다.

그랬던 보졸레 누보는 어쩌다 구경하기 힘든 귀한 와인이 되어버렸으며, 귀한 와인이면서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는 왕따 와인이 되고 만 것일까? 심지어는 와인 전문지에서조차도 보졸레 누보에 관한 소식은 2018년을 끝으로 실리지 않고 있다.

보졸레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남쪽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그다지 유명한 와인은 생산하지 못하던 이곳이 유명해진 것이 바로 햇와인 보졸레 누보 덕분이다. 1951년 11월 13일 보졸레 누보 축제가 시작되면서 이 오래 묵힐 수 없은 와인의 인기몰이가 시작됐다.

▷ 알베르비쇼 보졸레누보(출처: GS리테일)

홀짝홀짝 non(아니오) 벌컥벌컥!
대부분의 와인이 홀짝홀짝 음미하면서 마시는데 비해 보졸레 누보는 벌컥벌컥 원샷으로 마시기도 할 만큼 가볍고 신선하다.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보졸레 누보 축제는 시간이 갈수록 그 유명세를 더해 1970년부터는 일약 세계적인 축제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과는 별개로 지금도 축제 당일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유명한 축제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는 취소되어 약식으로 보졸레 누보의 생산을 기념하는 데 그쳤다.

보졸레 지역은 화강암과 석회질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가 어우러져 가메품종의 포도를 과일향이 풍부한 약산성으로 길러낸다.

해마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보졸레 누보의 판매일로 확정한 것은 1985년부터다. 일반적인 와인이 오래 보관할수록 맛과 향이 더 풍부해지는 것과는 달리, 보졸레 누보의 신선함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이듬해 부활절 이전까지는 모두 소비해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피노 누아에 밀린 가메 품종의 반란
이 때문에 다른 와인들이 배로 운송되는 것과는 달리 비행기를 이용해 공수되면서 가격 또한 높아지게 됐다. 대체로 10~14℃로 보관했을 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졸레는 부르고뉴 지역에 속해 있지만 사실상 부르고뉴 와인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보졸레 와인으로 불린다. 무엇보다 주로 재배하는 품종에서 차이가 있다. 부르고뉴 지역이 주로 피노누아를 이용해 레드와인을 만드는데 비해 보졸레에서는 가메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부르고뉴에서도 처음부터 피노누아만 재배했던 것은 아니다. 피노누아와 함께 가메도 재배했으나 피노누아만큼 우아한 맛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메를 주로 재배했던 코트도르 지역에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보졸레 지역에서 나오는 와인이 보졸레 누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졸레 빌라주라는 일반적인 와인도 생산되지만 이 와인 역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 2년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보졸레 와인은 가급적이면 빨리 마셔야 하는 와인이다.

11월은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무겁고 거친 맛보다는 아직까지 상큼한 맛이 남아 있는 가벼온 로제나, 그래도 보졸레 누보가 조금 더 어울리는 계절이다.


와인 모르던 시기 바가지 씌우다, 알고 난 후 외면당해
그렇다면 보졸레 누보는 어쩌다가 한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을까?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와인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보졸레 지방에서 보졸레 누보는 얼른 마셔치우는 술이었는데, 한국의 와인업자들은 이를 고급 와인인 것처럼 포장해 바가지를 씌웠던 것이다.

와인 맛을 모를 때에는 그게 그 맛인가 보다하고 마시던 사람들이 점점 와인을 알아가면서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것도 보졸레가 더 이상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만약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와 같이 가벼운 이미지로 팔았더라면 여전히 가벼운 식사 자리나 간식 자리에서는 선택을 받았을 테고, 매해 11월 셋째 주에는 보졸레 누보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금융위기와 신대륙 와인의 역습, 한국에서도 천덕꾸러기 전락
이뿐만이 아니라 2005년 무렵부터 칠레, 호주,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대륙 와인이 대거 들어온 것도 보졸레 누보뿐만이 아니라 저품질의 프랑스 와인이 함께 퇴출되는 역할을 했다. 이미 와인 맛을 알아버린 이후라 가격 대비 품질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흥청망청하던 와인 애호가들도 좋은 와인을 골라 마시게 됐고, 일부 와인소비자들이 계층탈락을 겪은 것도 더 이상 보졸레 누보가 한국 시장에서 먹히지 않게 되는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보졸레 누보 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키운 사람은 죠르쥬 뒤뵈프이다. 보졸레의 황제라는 애칭을 가졌을 만큼, 싸구려 동네와인을 세계적인 와인으로 각인시킨 것이다.

비록 보졸레 누보의 진실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가을의 꼬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11월에는 햇와인의 신선함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11월은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무겁고 거친 맛보다는 아직까지 상큼한 맛이 남아 있는 가벼온 로제나, 그래도 보졸레 누보가 조금 더 어울리는 계절이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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