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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외화내빈(外華內貧) (2021-11-19 09:43)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편에서 공을 차는 것처럼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방문판매법이라는 것이 있다. 30여 년 전 다단계판매의 건전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후원수당 지급비율, 가격상한선 등이라는 기상천외한 법률을 만들어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30년이 지난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다단계판매업자 주요정보’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등록된 다단계판매원의 수는 827만 명이고, 시장의 규모는 5조 원에 육박한다. 대한민국 국민 6명 중 1명은 판매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나 소비자로서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의미다.

비록 비탈진 땅에서 태동한 다단계판매산업이지만 이토록 대중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800만 명의 판매원들과 업체의 임직원들이 그야말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업계가 정체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한계를 느끼는 업계 종사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원인으로 방문판매법의 과도한 규제가 지목되고 있다. 공제조합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데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제품 가격, 성분 등을 검색해 비교하면서 제품을 구매하는 시대에 후원수당 지급 비율 35%, 가격상한 160만 원, 판매원 청약철회 기간 3개월, 프로모션 3개월 전 고지 등은 현실과 동떨어진 조항이라는 것이다.

방문판매법은 ‘방문판매, 다단계판매 등에 의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정한 거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게 입법 취지다. 그러나 ‘공정한 거래’와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실현한다는 입법 취지를 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른 산업에 비해 차별적으로 규정돼 있는 조항을 손질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1월 10일 ‘방문판매법의 개정방향’을 주제로 한국소비자법학회가 주최하고, 협회와 양 조합이 ‘후원’한 학술대회가 열려 업계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모처럼 위드코로나 이후 현장에 모였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게 했고, 실제로 방문판매법에서 정한 규제가 다소 과도하다는 점이 학술적으로 규명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학술대회를 놓고 여러 가지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방문판매법 개정에 대한 신선한 발제도 일부 있었으나 예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는 말이 가장 많았다. 무엇보다 방문판매법의 소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 개정을 논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마치 철수 없는 철수의 생일잔치에 간 기분처럼 오묘했다는 것이다. 또한, 다단계판매산업에서 판매원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판매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채널이 부재했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현장 행사 진행자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공정거래위원회 특수거래과는 그 여느 때보다 업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안타까운 사정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주최 측에서 초대를 안 한 것인지, 그 흔한 공문조차 보내지 않은 것인지는 알 길은 없으나, 행사장의 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줌 화상통화가 끊기는 등의 소동으로 행사가 도중에 중단된 이 날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긴 한다.

더군다나 행사의 끝 무렵 “참석하신 분들에게 최소한 커피 쿠폰을 드리려고 하는데, 이번에 후원을 안 받아서…후원을 해주시면 쏴드리겠다”는 주최 측의 발언은 방문판매법의 개정을 논하는 자리의 격에 맞지 않았고, 연구용역에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쏟았을 연구자들의 진심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 업계 관계자들의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코로나19 여파로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은 데다, 집합금지 등 차별적인 방역 정책을 적용받으면서 대한민국에서 다단계판매산업이 서 있는 위치를 30년 전 그때처럼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 어떤 때보다 협회와 양 조합이 끈끈한 협력과 유기적 공감대 형성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안타까움마저 든다.

물론 한번 정해진 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지만, 방문판매법 개정이라는 목적을 무색하게 하는 신중하지 못한 행동과 발언들은 학술대회의 취지가 진정으로 법 개정을 위한 것인지, 그동안 의논했던 것들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인지 의심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다단계판매산업이 생겨난 지 약 30년이 지났다. 불법 피라미드와 다단계판매를 구별하지 못하고 연구용역에 대한 결과물을 발표했던 어중이떠중이들은 어느덧 사라졌고, 학문적으로 다단계산업에 통달한 인사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문판매법 개정에 대한 염원이 해마다 관성처럼 나오고 있다. 이 간절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간지럽히듯 하나마나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이고 건설적으로 토의해야 한다.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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