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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찾아서…빵이 떠야 도시가 뜬다 (2023-01-20 09:53)

성심당의 대전, 이성당의 군산

속 터지는 코로나 어디로든 가보자<64>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지금은 동네마다 카페가 있고 카페마다 갖가지 빵을 팔지만 간식이나 기호식품으로도 분류되지 못하고 구호식품 쯤으로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 밀가루를 굽는다는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찌는 바람에 찐빵이 나왔고, 서양오랑캐의 음식이라는 뜻으로 호빵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빵의 전성시대가 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인을 사로잡은 빵 
튀김소보로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에서 전 세계의 맛집을 평가할 때 별 하나에서 별 세 개까지 부여한다. 한 개의 별은 요리가 훌륭한 식당, 두 개의 별은 멀리에서 찾아갈 만큼 요리가 뛰어난 식당, 대망의 별 세 개는 오로지 요리를 맛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을 선정한다.

그러므로 빵집을 방문하기 위해 소비자로 하여금 여행을 준비하도록 한다면 그 빵집은 미슐랭 별집에 필적하는 위대한 식당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튀김소보로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대전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성심당역시 미슐랭 별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 사진: 성심당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찐빵집으로 출발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제외하면 전국의 빵집 중 매출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를 제치고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우뚝 서 있기도 하다.

성심당의 창립자인 임길순 암브로시오는 함경남도 함주군이 고향으로 흥남 철수 당시 거제도로 피난했다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던 중 타고 있던 기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대전에서 내렸고 대흥동 성당의 신부님이 내준 밀가루
2포대를 갖고 찐빵을 만들어 팔던 것이 지금의 성심당을 존재하게 했다.
▷ 사진: 독자제공


창업 당시부터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실천하고 있으며 남은 빵은 전쟁 고아나 노숙인들에 제공했다. 이 전통으로 인하여 대전시민들은 성심당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교황의 식탁에 올린 빵이 바로 성심당에서 만든 것이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와 교황을 위한십자가 훈장을 김미진(세례명 아녜스) 성심당 이사에게 전달했다.


군산 대표 맛집
이성당
이성당 역시 전국의 빵순이 빵돌이들로 하여금 오로지 빵을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군산을 방문하도록 하는 삼성급 빵집이다. 이성당(李盛堂)()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본격적으로 이성당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 씨 성을 지닌 사람이 번창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이성당을 대표하는 빵은 단연 단팥빵이다
. 이성당의 거의 모든 빵들이 웬만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단팥빵이야 말로 자천타천 전국 최고를 자부한다.
▷ 사진: 이성당


이성당의 시초는 아들을 일본군에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한 히로세 야스타로
(..安太.)라는 사람이 1906년 군산으로 건너와 차린 이즈모야가 전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의 쌀 수탈 전초기지였던 군산은 일본인들이 대거 들어와 있었고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서양의 음식문화에 익숙해진 일본인들이 아침 식사로 빵을 찾으면서 이성당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 사진: 군산시


이즈모야가 가장 번성한 시기는 창립자 히로세 야스타로의 첫째 아들 히로세 켄이치가 운영하던 시기였다
. 군산에서 문을 연 일본 빵집 협회의 대표를 맡으면서 제빵 기구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빵집의 권익보호를 위해 적극 나서기도 했다.

이즈모야는 이름은 빵집이었지만 화과자에 가까운 제품을 주로 판매했다
. 그러나 히로세 켄이치는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도쿄를 찾는 등 기술 개발에 힘썼고 당시까지 해도 파격적이었던 케이크와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21세기형 카페를 1900년대 초에 선보였다.

그러나 일본 패망 이후 켄이치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가 비운 자리를 이성당의 시초인 이석우 씨가 차지했다
. 이 씨는 남원 출신의 부모를 뒀으나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광산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홋카이도로 이주했던 그의 부모 역시 일본 패망 이후 귀국했고 군산에 정착했다.

광산 노동을 통해 재산을 일구었던 그는 과자 장사를 시작했다가 이즈모야를 인수해 이성당을 차렸다
.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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