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단계 관련 논문이 신빙성을 얻으려면…
서울의 모 대학 박사과정에 다니는 박 모씨의 연구논문에 업계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최고 학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진심으로 다단계를 연구했다는 데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그의 전공이 지리학이라는 점은 좀 의외이기는 해도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지성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 논문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할 의사가 있었다면 주제인 ‘중국인 판매원’에 대한 보다 폭넓고 심층적인 설문조사 및 인터뷰가 선행됐어야 하지는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명의 중국계 이주자 판매원과 이주단체 대표 3명 등 모두 6명을 인터뷰하고 중국인 판매원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었다는 점에서는 객관적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짐작하기에 인터뷰한 6명은 다단계판매라는 업종에 잠시 발을 담갔거나 귀동냥으로 들은 게 전부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미 중국계 판매원들의 수입이 저조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맞춰 논문을 끌고 나간 흔적도 엿보인다. 이것은 기자들도 초보 시절에는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이미 다단계판매업계에 관심을 가졌다면 잠깐 판매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보다는 왕성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사람을 찾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실제로 국내의 복수 업체에서 최고 직급에 오른 중국인이 있고, 그의 산하로 중간 직급 이상을 달성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자리 잡은 사람은 적지 않다.
함께 다단계판매사업을 하고 있는 상위의 사업자들에 따르면 중국계 판매원들은 한국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테크 실력을 보인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슈퍼카나 럭셔리 브랜드를 소비하는 데 열중하는 동안 중국계 판매원들은 토지를 비롯한 주택, 빌라, 아파트 등 부동산에 투자해 엄청난 재산을 불린 사례도 꽤 있다.
아직까지 대학원생인 관계로 인맥 풀이 얕을 수밖에 없으므로 현실에 밀접한 연구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후속 논문을 기획하고 있거나, 자신이 논문에 덧붙인 것처럼 조사 대상에 대한 한계를 극복할 의사가 있다면 언론사를 비롯한 각 기업을 통해서도 기꺼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업계는 다단계판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자 하는 학자가 있다면 업계 전체 차원에서 자료 제공은 물론 모든 연구 편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다단계판매원의 수입이 적다는 저자의 선입견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정보공개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쓴 기성 언론에서 제공한 것이다. 쉬운 말로 전체 매출의 35%만을 판매원에게 제공하고 나머지 65%를 기업이 독식하는 불공정한 규칙에 대한 고찰 없이 정부 기관이 읊어주는 대로 받아 쓰는 관행 탓에 학자들의 자료 풀에도 편견이 개입하게 됐다는 말이다.
보다 정확한 기사가 되고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판매원의 적은 수입을 보고 접근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폭리구조에 대한 접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적게 주도록 만들어놓은 방문판매법은 도외시 한 채 적게 벌어가므로 비윤리적이라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단계판매뿐만 아니라 그 어느 분야를 취재하거나 연구하더라도 이와 유사한 결론밖에 도출할 수 없게 된다. 아직 젊고, 젊은 만큼 기존의 실책을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주어질 것이므로 좀 더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연구로 중국계 판매원만이 아닌 다단계판매업계 전체에 기여하는 뛰어난 연구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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