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우리들의 일그러진 방문판매법
몇몇 업체들 사이에서 서로 정부기관에 민원을 넣으면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각종 민원에 시달리는 바람에 신제품 출시가 수개월 지연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리크루팅이 안 돼 사업자들의 유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원을 넣겠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잘못한 것은 없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물론 경쟁사 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러한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이유는 다단계판매 시장이 정체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수년째 5조 원이라는 매출을 올리는 등 업계가 등속도 운동을 지속하면서 난데없는 제로섬 게임이 펼쳐지고 있고, 기업 간의 경쟁이 기업의 발전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생존 경쟁으로 변질하고 만 것이다. 기근이 계속되면 선량한 백성도 도적이 되듯이 수십 년째 다단계판매를 둘러싼 각종 규제 탓에 시장의 외연이 확대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서로를 헐뜯고 빼앗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현재 공정위는 개별재화 가격제한을 16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올리고, 후원수당 산정 및 지급 기준의 변경이 일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통지의무를 면제하는 내용을 담은 방문판매법 시행령 개정안을 6월 3일까지 입법예고한 상태다. 개별재화 가격제한은 1995년 100만 원, 2002년 130만 원, 2012년 160만 원으로 상향된 바 있다.
물론 업계 내에서는 적어도 300만 원까지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12년 만에 법 개정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이는 한국직접판매산업협회, 직접판매공제조합,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그리고 무엇보다 700만 사업자들의 중구삭금을 통해 이뤄낸 것으로 상당히 값진 결실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단계판매산업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후원수당 지급률 개정도 뒤따라야 한다. 다단계판매가 지난 1995년 제도권에 들어선 이후 사실상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후원수당 지급률 제한 35%’는 개정이 가장 시급한 법 조항으로 꼽힌다.
공정위, 지자체, 공제조합, 시민단체 등등 이중삼중의 감시를 받는 다단계판매는 소비자피해보상보험이라는 소비자보호장치가 있는데도 후원수당 지급률은 35%로 정해진 이후 합리성에 대한 재검토 없이 수십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후원수당 지급률 관련 규정을 손질한다면 산업의 체질이 개선될 수 있고 자연스레 긍정적인 시장 경쟁을 촉진하면서 산업의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단계판매산업은 우리나라의 고용지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판매원, 임직원뿐만 아니라, 제품 원료·생산·개발·포장·운송·폐기 등에서 직간접적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단계판매산업이 위축된다면 실업자들이 대거 발생할 수 있고, 제조업, 운송업, 심지어는 재배농가까지 연쇄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업계는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시기보다도 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또 최근 유명 방송, 유튜브 등등에서 코인, 유사수신, 부동산 따위에 다단계판매라는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사례가 다시 급증하면서 다단계판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고 사업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판매법의 규제수위를 대폭 완화하든지, 불법 업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든지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업체들끼리 서로 민원을 주고받는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움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업계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면 지금 우리는 서로 비난하고, 헐뜯을 게 아니라 업계에 산적해 있는 법 개정 등 업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합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요즘 나오는 동화는 원작과 다른 결말이 많다고 한다. 잭이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거인의 재물을 훔치는 내용의 ‘잭과 콩나무’는 원래 거인이 잭을 쫓다 콩나무에서 추락사하는 결말로 끝이 나지만, 거인과 잭이 서로의 오해를 풀고 거인이 잭을 용서하는 결말로 끝이 나는 버전도 있다고 한다. ‘아기 돼지 삼형제’도 아기 돼지들이 집이 없는 늑대의 고충을 듣고 늑대에게 좋은 집을 지어주는 것으로 결말난다고 한다.
이제 다단계판매업계도 서로 싸우고 누군가는 패배하는 결말이 아니라 서로 오해를 풀고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운 결말로 귀결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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