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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단계’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 기사 입력 : 2024-05-1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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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판매라는 용어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다단계판매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돼 왔다. 용어 변경 필요성의 배경도 그때나 지금이나 각종 언론 매체 및 사회 각 분야에서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똑같다.

한때 두 공제조합과 직판협회가 의기투합해 용어 변경을 위한 캠페인에 나설 뻔하기도 했으나 치적에 눈이 먼 한 이사장의 독주로 무산되고 말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체로 조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충신이라 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간신이라고 한다. 그 사람은 다단계판매업계와 다단계판매원의 고충에는 아랑곳없이 ‘내가 했다’는 절체절명의 명제를 실현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뭣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공제조합이나 직판협회의 구성원들은 다단계판매로 불리든 피라미드로 불리든 해당 용어가 주는 압박감이나 부담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단계가 됐든 피라미드가 됐든 장사는 기업에서 하는 것이고, 조합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들 단체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고 현장에서 비바람을 맞아보지 않고는 다단계라는 용어가 왜 그토록 부정적인지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결국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주체는 다단계판매업체와 다단계판매원으로 좁혀진다. 그러나 기업은 기업대로 산적한 여러 가지 문제를 도외시하고 용어 변경이라는 지엽적인 사안에 매달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판매원 역시 용어 변경을 의논하는 시간이면 단 한 사람의 소비자라도 더 만나는 것이 현실적인 이익과 부합한다. 

사실 다단계판매라는 용어가 불편하기는 해도 묵묵히 일에 매진하는 판매원들은 그것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지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고객들은 다단계판매라는 용어를 구매하지 않고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한다. 다단계라는 말이 아무리 부정적으로 들리더라도 필요한 제품이라면 구매할 것이고, 아무리 아름답고 우아한 용어로 바꿔 놓아도 필요하지 않고 조악한 제품이라면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다단계판매는 30년의 성상을 지나왔다. 지금은 약 700만 명의 판매원이 활동하고 있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는 1,000만 명에 육박하는 판매원들이 전국을 누비면서 판매 활동을 했다. 적게 잡아서 500만 명의 판매원이 30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났다면 미성년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다단계판매라는 용어나, 다단계판매를 통해 유통되는 제품들을 보기는 했다는 말이 된다. 

다단계판매라는 말은 우리 업계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부각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다단계판매라는 이름표를 달고 싸우고 깨지고 버텨왔는데 지금에 와서 이 용어를 바꾼다는 것은 분투해온 그간의 시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은 아닌지 짚어 보게 된다. 

다단계라는 말에는 업계를 지탱해오고, 거쳐 가기도 한 수천만 명에 이르는 판매원의 결기와 깡다구가 응축돼 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는 들풀의 생명력처럼 가장 밑바닥의 풀들이 서로 어깨를 겯고 버텨온 세월이 다단계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미 욕도 먹을 만큼 먹었고, 손가락질도 당할 만큼 당했는데 새로운 용어를 채택해 새로운 욕을 먹으며 견뎌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대통령이라는 말보다 다단계라는 말이 훨씬 더 자랑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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