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다단계판매가 가야 할 길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온라인쇼핑 규모는 228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2021년 대비 22.3% 늘어난 수치다. 여기에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디지털 기반의 소비생활을 했다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적인 고금리·고환율·고물가 이른바 3고(高) 현상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민간 소비가 위축됐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 상황에서도 온라인 시장은 급격히 커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6월 28일 발표한 ‘컴퓨터 관련 여가와 노동공급(조강철 차장, 이하민 조사역)’ 보고서에는 노동시간은 줄고, 컴퓨터, 휴대폰 등 온라인에서의 여가시간은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빠른 속도로 대중화된 탓이다. 가구 컴퓨터 보유율은 2000년 71%에서 2022년 81%로 10%p, 개인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2년 64%에서 2022년 98%로 무려 34%p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대면 산업인 다단계판매는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만 하더라도 거리두기 등으로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자 인스타그램, 유튜브, 줌 등을 활용해 소비자를 유치했으나, 엔데믹 국면에 접어들면서 점차 사용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다단계판매의 경우 온라인을 활용하면 상당한 행사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전 세계인들과의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은 직접 만나서 영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대면 영업을 선호하는 사업자들이 많은 편이다. 또 다단계판매산업의 경우 종사자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점 때문에 온라인을 활용하지 않는 기업도 적지 않다.
문제는 엔데믹 이전인 2020~2023년 동안 소비자들이 비대면 제품 구매에 익숙해져 있고,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직접 가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 중에는 매장에서 물건을 보고 주문은 인터넷으로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유통업계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가자 다단계판매 업계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국내에서 다단계판매는 약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각종 사건과 소동 속에서도 ‘제품력만큼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고, 점차 시장이 안정화 됨에 따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면서 산업의 위상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의 발전 양상과는 다르게 다단계판매에 대한 근무 여건은 30년 전 그대로여서 시장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단계판매는 지난 2018년 판매원의 수가 9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4,300만 명의 20세 이상 인구 5명 중 1명은 판매원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는 700만 명대로 현저히 줄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 휴대폰 등을 통해 누구나 정보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다단계판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면서 판매원들의 수도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후원수당 지급률 35%’ 개정 등 판매원에 대한 처우 개선이다. 판매원의 사업 여건이 개선된다면, 자연스레 사업자의 유입이 늘어날 것이고,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단계판매 시장이 커진다는 말은 산업에 대한 막연하고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이제는 업계 스스로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보상이 아니라 제품력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외제차를 타는 모습이 아니라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비누, 치약과 같은 생필품 위주의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면서, 한 사람이 10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10명이 각각 한 개씩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 국내 기업 중에는 애터미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기업은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과 견주어 봐도 품질도 웬만하고, 값도 저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것이 다단계판매의 근본원리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
다단계판매업체로 등록하지 않은 채 무등록 다단계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는 업체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불법 다단계 시장규모가 2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다단계판매 시장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불법 업체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방문판매법, 유사수신행위법 등으로 이들을 근절하기에는 처벌 수위가 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법률상 등록 다단계판매와 무등록 다단계, 즉 불법 피라미드 업체가 구분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정의와 용어를 정립하고, 강력한 처벌 수위의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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