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김천 무죄, 인천 유죄
김천지원에서 열린 MBI 관련 재판에서 한 사업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날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MBI 항소심 재판에서는 두 명의 사업자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똑같은 범죄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업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제각각인 것인데, ‘한국이 연방국가였던가’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둔 MBI는 자회사 엠페이스를 통해 전산상 숫자에 불과한 자체 가상화폐 ‘GRC’ 판매를 가장하여,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단기간에 고수익을 벌 수 있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챈 금융 피라미드 회사다.
국내에서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MBI 관련 수사와 재판은 전국적으로 줄지어 계속되고 있지만 상반된 검찰의 기소, 앞선 사례처럼 지역별 재판부의 ‘따로따로’ 판결 등으로 혼란만 커지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산지방법원은 지난해 2월 14일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MBI 창원센터의 지사장 장 모 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앞서 1심 법원은 장 씨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다단계판매조직의 개설이나 관리·운영에 가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건은 검찰 측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장 씨는 창원센터 등 사무실을 개설해 투자설명회를 하면서 회원을 끌어모으고, MBI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수사 대응 방안을 공유하는 대화방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장 씨의 직책이 특별한 권한이 있다거나 중요한 직책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았다.
반면, 같은 해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은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MBI 상위사업자 안 모 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안 씨는 장 씨와 마찬가지로 대구 모처에 사무실을 차리고 사업설명회를 통해 회원을 모집했다. 대구지법은 안 씨가 MBI 본사 임원진과 국내 사업자 등과 공모해 무등록 다단계판매 영업을 벌였다고 봤다.
똑같이 투자금을 가로챈 사업자더라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로 유무죄가 갈린다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단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점 때문에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불법 피라미드 사업을 하고도 A사에서는 피해자, B사에서는 가해자로 분류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동일한 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업자들에 대해 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나오는 사이 브이글로벌, 휴스템코리아, 아도인터내셔널 등등의 업체가 창궐했고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기도 했다. 판결이 제각각이라는 말은 하나의 법령을 두고 재판부가 각기 다르게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금융 피라미드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행 방문판매법에 따르면, 등록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등록한 다단계판매조직을 ‘개설·관리 또는 운영한 자’로 처벌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재판부의 해석이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면서, 사실상 불법 피라미드를 조장하는 조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상자산법이 지난 7월 19일 시행되면서 코인과 관련된 범죄행위에 대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코인을 규제하는 법률이지 불법 피라미드를 억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상품권, 부동산, 레저, FX마진거래, NFT, 코인 등과 같이 시대가 흘러 새로운 아이템이 나온다면 이러한 유형의 범죄는 끊임없이 창궐할 수 있다.
업계 내에서는 불법 피라미드에 대한 법률적 정의를 마련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단계판매 방식으로 영업하는 불법 코인, 유사수신 등에 대한 법률 용어를 정립하고, 이러한 불법 업체들은 방문판매법, 유사수신법 등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으므로 강력한 처벌 수위의 불법 피라미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피라미드 사건의 99%는 모두 테헤란로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테헤란로에 있는 건물의 입주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애먼 다단계판매업체들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과거 테헤란로는 금융기관, 호텔 등의 인프라가 조성돼 있고 교통여건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회사 이미지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범죄소굴로 전락하고 말았다. 테헤란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경찰과 검찰은 대대적인 ‘청소’를 벌여 이들을 모두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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