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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권영오 기자
  • 기사 입력 : 2024-09-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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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도대체 다단계판매가 왜 이렇게 됐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주도 임직원도 사업자도 한결같이 궁금해한다. 타인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수도 없이 질문하고 또 자답해봤다는 뜻일 거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주의 입장에서, 임직원의 입장에서, 사업자의 입장에서 답을 찾아본다. 모두가 열광하던 다단계판매업이 어쩌다 이런 난관에 봉착하게 됐을까? 금방이라도 1,000만 명을 넘어 2,000만 명을 넘어 전 국민이 다단계 하나쯤은 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렇지만 불황을 걱정하는 삼자의 입장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가장 절박한 것은 사업자다. 소비자는 돈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만 사업자에게 다단계판매란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1,000만 명에 육박하던 사업자들이 700만 명 선으로 주저앉았다는 것은 사업자 또는 소비자 300만 명이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300만 명의 소비자를 잃고도 여전히 5조 원 언저리의 매출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 300만 명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35% 수당 상한선이라는 사악한 법규와 만난다. 대한민국은 최저임금법을 제정해 근로자의 최저 생계를 보호해준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줄 수 있다. 

그러나 다단계판매업은 35% 수당 상한선을 정해 사업주의 이익을 보장해준다. 35%를 초과해 수당을 지급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사업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줬다고 해서 형사처벌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렇지만 형사처벌을 피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공제조합에서 탈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과 무관해진다.

헌법 정신에 어긋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지만 사업자 외에는 그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자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외면한다는 것은 사업자를 외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사업자 또한 다단계판매업을 외면하게 된 것이다. 

업계의 많은 구성원들은 조합 가입사들이 고전하는 이유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업체들이 잘 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런데 제도권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 한다는 사실에 대해 비웃는다. 너무나도 명백하고 명확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사업자들은 일부 전문 경영인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에 대해서도 거론한다. ‘자기 돈 아니라고 마구 써댄다’는 것이 사업자들이 전문 경영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물론 잘 됐더라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추켜올렸겠지만 사업자들은 경영자의 예산 집행까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실 전문 경영인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굳이 책임질 일을 할 이유는 없다. 잘 되면 붙어 있고, 안 되면 떠나면 그만이므로 모든 걸 다 건 사업주나 사업자와는 다단계판매를 대하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멀쩡하게 굴러가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면서도 그럴듯한 업체에서 지사장을 찾는다고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면접을 보러 달려가는 행태가 바로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

하위권 업체들의 경우는 제 때에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눈에 띈다. 사업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일한 만큼 수당을 가져 가지만 임직원들은 한 달 내내 놀고 먹더라도 임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사업주들은 다시 묻는다. 공제조합이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과연 역대 이사장 중에서 조합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뛰어다닌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 이 질문이야말로 기업들이 공제조합을 바라보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자가 만났던 이사장들은 대부분 직원 복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공제조합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수많은 사업자들은 자신의 돈을 써 가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깨져서 상심하고, 때때로 사재기까지 불사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단계판매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각각의 기업마다, 각각의 그룹마다, 리더별로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경주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시스템을 확립하고 리더를 확보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거시적인 부분 곧 업계 전체 차원에서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됐거나 가동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결정적인 절망감이 생겨난다. 

과거에는 대기업에서 훈련된 인재들의 유입이 심심찮게 이루어져 그들이 배우고 익힌 시스템을 접목해 임직원에 대한 교육을 시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고급 인력들이 업계를 외면하는 바람에 외부 시스템의 이식은 생각조차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 결과 해를 거듭할수록 우수한 인재들이 양성되기는커녕 오히려 꼼수에만 능한 ‘반칙왕’들이 전문 경영인이라는 탈을 쓰고 활개를 친다는 것도 심히 우려되는 현상 중의 하나다. 이러한 전문 경영인 아래서 배운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정답은 자명한 것이다. 

다수의 경영인과 리더 사업자들은 과연 다단계판매의 미래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을 토로한다. 다단계판매업으로 성장한 몇몇 대형기업이 돌연 이커머스니 플랫폼이니 하는 이름을 달고 유통 채널을 다양화하는 현상을 예로 들면서 이 업의 끝이 보이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들보다 더 많이 알거나, 더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기자의 생각에도 과연 이대로 다단계판매가 존속할 것인지 가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다단계판매의 활약을 생각한다면 이만한 응집력과 폭발력을 지닌 유통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가능성과 경쟁력이 충분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변화와 규제혁신이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과거에는 공제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 등 금융권을 통하거나, 방문판매법상의 다단계판매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다단계판매와 유사하게 영업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진화론>을 쓴 찰스 다윈은 ‘변종은 발단의 종’이라고 했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다단계판매가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채로 ‘갈라파고스 섬’으로 남게 된다면, 지금은 변종처럼 보이는 이들 기업들이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처럼 유통의 대세로 자리 잡지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가 반도 남지 않은 치즈에 탐닉하는 동안 치즈 상자는 이미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옮겨 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옮겨지는 치즈가 눈에 뻔히 보이지 않는가?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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