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답답한 다단계
다단계판매 기업과 판매원들 사이에서 “이 짓을 계속해도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 입버릇이 된 지 오래됐다. 업계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은 개선될 기미가 없고, 정부 당국의 관련 정책마저도 여전히 비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개별 제품의 가격 상한선을 16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올렸지만 일선 판매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화장품과 건강식품이 대부분인 업계의 사정을 생각하면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오히려 가격상한선으로 인해 취급할 수 있는 상품군이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 일시적으로 후원수당 산정 및 지급기준을 변경할 경우 통지의무를 면제해주기로 한 부분에 대해서도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한다. 왜냐하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3개월 전 통지 규정’ 자체가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판매를 제외한 유통 시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이 변동되고,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사은품이나 현금화할 수 있는 포인트들도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것이 2024년 현재의 유통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회원들이 만족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즉각적으로 보상플랜 등을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은 다단계판매업계가 지닌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모든 회원들이 만족하는 경우라니, 과연 이 세상에 모두가 만족하는 일이 몇 건이나 있겠는가?
제도권 밖의 기업을 방문해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2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규제와 적발과 처벌만이 능사인 줄 알았던 바로 그때로 회귀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인즉슨 현행 방문판매법과 각종 정부 정책이 현실로부터 20년의 거리만큼 동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다단계판매 관련 법이 처음 제정됐던 1995년의 제품 상한가는 100만 원이었다. 당시 1만 달러 선이었던 1인당 GDP는 2023년 3만 3,000달러 대로 3배 이상 성장했다. 대충 잡더라도 제품 상한가가 300만 원은 돼야 개인의 소득이 성장한 비율에 맞춰진다. 여기에 물가 상승률과 소비심리, 가용소득 성장 등의 요소를 감안하면 적어도 500만 원대에서 가격 상한이 정해져야 한다는 게 시장의 요구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가격상한선을 강제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다단계판매를 제외하고 가격상한제가 적용되는 분야는 아파트 분양가, 최고 이율, 부동산 수수료 그리고 코로나19 시절 공적 마스크 등 정말로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되는 분야에 국한돼 있다. 가격상한제란 정부가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으로,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막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과연 이러한 가격상한제 도입 취지가 다단계판매에서의 그것과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모든 법과 규정에는 입법 취지와 도입 취지가 있게 마련이다. 설령 다단계판매 초창기에 그러한 제도가 필요했다손 치더라도 그 이유가 해소됐다면 해당 정책 또한 함께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 모두가 격동의 시간을 겪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단계판매는 그 팍팍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정책이며 또 정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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