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직접판매 시장 개방이 임박하면서 대만이 전략적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어 문화적 유사성이 높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지리적 접근성 또한 뛰어나다. 대만은 중화권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제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고 있어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에 이상적인 테스트베드로 평가된다. 유연한 규제와 높은 구매력 대만의 인구는 약 2,340만 명으로, 인구 대비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맥을 중요시하는 꽌시 문화가 사회적, 경제적, 비즈니스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만 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2,756달러로 보고됐다. 같은 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2,237달러로, 대만이 한국을 앞선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대만 소비 시장의 구매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대만에서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단계판매관리법(多層次傳銷管理法)에서 요구하는 사업 기본 정보, 판매원 가입조건, 상품·서비스 종류 등 서류를 갖춰 주관부서 공평교역위원회(FTC)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대만은 한국과 달리 후원수당 지급률 제한, 개별재화 가격상한선,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체결 등의 의무가 없으며 청약철회 기간이 1개월로 비교적 유연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공평교역위원회에 따르면 12월 10일 기준 대만에 등록된 다단계판매업체는 388개사다.
“대만, 중국 진출의 숨은 다리 역할” 직접판매세계연맹(WFDSA)에 따르면 대만의 직접판매 시장은 지난 2023년 45억 3,000만 달러(약 6조 4,8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 세계 10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같은 기간 대만의 직접판매 사업자 수는 약 361만 명이고, 건강식품(66%), 화장품(18%) 등의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만 직접판매 전문지 직소세기(直銷世紀)에 따르면 대만 매출 상위 10개 기업으로는 암웨이(미국), 리웨이(싱가포르), 프로파트너(대만), 토탈스위스(대만), 텐리드 바이오테크(대만), 허벌라이프(미국), 비더블유엘(싱가포르), 뉴스킨(미국), 애터미(한국), 샵닷컴(미국) 등이 있다.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 불법 영업 논란으로 퇴출된 리웨이가 상위권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화권에서 특정 동물성 재료나 성분이 특별한 효능을 지닌다고 믿는 문화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웨이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화교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한국에 진출했던 중국 기업 롱리치도 뱀을 활용한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현재 대만에 진출한 국내 기업으로는 애터미, 리만코리아, 지쿱 등이 있다. 이 중 애터미는 2014년 대만 법인을 설립했으며, 진출 첫해 120억 원에서 지난해 1,300억 원으로 매출이 10배 이상 성장했다. 2023년까지 누적 매출액은 1조 1,800억 원이며, 애터미의 해외법인 26개 중 누적 매출액 1조 원을 넘어선 곳은 대만 법인과 중국 법인 두 곳뿐이다. 애터미는 지난 2020년 중국에 진출했는데, 대만 법인이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애터미 관계자는 “대만인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중국인들도 대만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중국 사업 활성화와 안정화에 도움이 됐다”며 “대만은 다단계판매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 긍정적인 편이며, 사업자들의 열정도 매우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리만코리아는 2023년 12월 대만에 현지 지사를 설립하고 진출 6개월 만에 누적 매출 8억 대만달러(351억 원)를 달성하는 등 안정적으로 현지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을 얻었다. 리만코리아는 대만 지사에 이어 지난 7월 홍콩 지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며 말레이시아, 멕시코 진출을 앞두고 있다. 리만코리아 관계자는 “리만 대만법인은 런칭 1년 만에 4만 곳 이상의 유통업체와 4만 명 이상의 소비 회원을 등록하며 성공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이는 리만의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 제품, 브랜드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결과”고 밝혔다. 또 “대만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중국어권 시장에서 중요한 허브로, 리만은 대만을 아시아 글로벌 확장의 교두보로 삼고 진출했다”며 “현재 중국에 직접적인 진출 계획은 없으나, 대만과 홍콩 시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 시장을 모니터링하며 접근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쿱은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지난 2017년 대만 지사를 설립했다. 지쿱 관계자는 “대만 지사는 한국에서 검증된 유통 방식을 현지 시장에 적용해 운영 중”이라며 “한류와 K-뷰티 제품에 대한 높은 인기 덕분에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의 매출이 특히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만은 인구밀도가 높고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만큼 직접판매산업에 최적화된 시장”이라며, “한국과 유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 시 리뷰나 지인 추천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이 있어, 앞으로도 직접판매 시장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