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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품앗이의 민족

  • 기사 입력 : 2024-12-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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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예로부터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품앗이 문화가 있었다. 또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조직을 만들어 두레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로서로 돕는다는 의미의 상부상조라는 말도 있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 나라에 비슷한 의미의 말이 두세 개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전반에 서로 돕고 또 도움을 받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단계판매업계에서도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찾아 몸으로 봉사하거나 물품, 현금 등을 기부하면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이 엄동설한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도왔다. 

과거에는 방송국에서 따로 시간을 편성해 이웃돕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등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기부와 나눔을 강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이 돼지저금통을 털어 기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 달라며 소액이지만 값진 돈을 기탁하기도 했다. 

기부라는 것, 봉사라는 것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마운 일이지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뿌듯하고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되로 받고 말로 준다는 말은 앙갚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따뜻한 마음들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옛날만큼 기부활동이 왕성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 결성되어 있고, 수시로 텔레비전이나 각종 SNS를 통해 기부를 요청하는 광고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단체로 기부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기부 관련 광고가 쏟아지다 보니 소위 말하는 ‘타인의 고통’이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저 풍경에 불과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관계로 특정 단체를 통한 기부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잖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또 기부된 돈이 전적으로 대상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해당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액 급여나, 심지어는 저개발 국가에서 봉사단원들이 흥청망청 즐기는 유흥비로 쓰인다는 외신의 보도도 드물지 않게 나오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기부와 봉사가 줄어든 것으로 느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기부와 봉사를 했노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쑥스러워하는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떠들썩하게 기부 파티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모르게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떠들썩하게 파티를 엶으로써 기부의 현장을 보여준다면 거기에 자극받은 또 다른 기부행렬이 늘어날 게 아니겠는가.

작금의 불경기를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기부를 권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장 숨이 넘어갈 정도로 급박한 사람들에게 타인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는 것도 도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사람 사정은 어려운 사람이 더 잘 안다고, 소액이라도 타인을 위해 쾌척할 줄 아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는 일이야말로 기부와 나눔의 가치를 뛰어넘는 더 큰 가치가 될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소외된 이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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