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진입로부터 바꿔야”
다단계판매업체는 공제조합과 공제거래 계약을 맺고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업계에서는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 조사를 겸한 테스팅 마켓을 먼저 운영해보고 단점을 보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단계판매업계의 강자로 떠오른 기업들의 공통점이 바로 테스팅 마켓을 거쳤다는 점이다.
테스팅 마켓이 강자 키운다
한국암웨이를 비롯한 뉴스킨코리아, 한국허벌라이프 등의 강자들은 공제조합이 설립되기 이전에 들어와 마음껏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는 이유로 지목되기도 한다. 초창기 한국의 다단계판매 시장은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자유 경쟁 시장이었으나 방문판매법이 엄격해지고 공제계약 등이 의무화되면서 웬만한 기업이 아니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환경으로 변모됐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모 업체의 리더 판매원은 “암웨이가 아니라 암웨이 할애비라도 지금 들어와서 사전 테스팅 마켓 없이 영업을 한다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성공 사례를 따라 하는 거라면 소위 말하는 사전 영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작정 다단계’ 실패 확률 높아
이와는 반대로 회사 설립과 동시에 공제계약을 체결한 업체들 중 상위권에 포진한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인큐텐이 비교적 선전하는 중이지만 이들 조직 또한 유니시티의 판매원들이 옮기면서 구축됐다는 점에서 맨땅에 헤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 업체의 임원은 “라이선스를 획득한 이후에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기관 단체의 입맛에는 맞을지 몰라도, 수십억 원씩 투자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피가 마를 노릇”이라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업체가 창업 2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문제이면서 또한 제도적인 문제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이러한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회원을 확보한 후 다단계판매를 선택해야 제대로 승부를 펼쳐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판매는 씨를 뿌리는 시장이 아니라 옮겨 심는 시장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10위권 내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른다는 것은 나머지 110여 개의 기업들은 남은 20%의 시장을 두고 혈전을 벌인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만 하위권 기업들 중 역동성을 보이는 업체는 거의 없다. 성장판이 닫힌 현실에 순응하면서 그저 명맥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권 입성 후 ‘털썩’
모 업체의 판매원은 “연속 3개 사에서 사업을 했는데 다 문을 닫았다”면서 “처음에는 화도 나고 배신감도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되는 사업을 인내심으로 버틴다고 해서 성공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보면 2년 안에 문을 닫은 기업들이 더 현명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안 닫고 있었으면 나 또한 벌지도 못하면서 그 회사를 떠날 수 없을 것”이라며 “초기에 띄우지 못한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한때 글로벌 기업은 도태되지 않으리라는 환상이 떠돌기는 했으나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던 에이본프로덕츠와 메리케이가 전격적으로 철수했고, 2013년에 들어온 도테라를 마지막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글로벌 업체는 2018년에 등록한 피엠인터내셔널을 제외하고 전무하다. 결국 글로벌 기업이 선전할 수 있었던 요인 역시 ‘선점 효과’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시장 테스트를 위한 사전 영업을 허용하거나 적어도 묵인해야 오히려 생태계가 더 풍부해지고 파이가 커질 수 있다는 반증이다.
어반플레이스·노블제이…좌절한 스타트업
안타깝게도 새로운 형질로 다단계판매에 도전했던 몇 몇 기업은 꽃을 피우기는커녕 싹조차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았다. 가장 아쉬운 도전은 월드벤처스라는 여행 다단계업체의 놀라운 인기에 영향을 받아 설립됐던 ‘어반플레이스’의 퇴장이다. 영업을 시작한 직후 코로나19가 터진 것이 결정타로 보이지만 여행업의 구조상 현행 방문판매법이나 공제조합의 규정을 준수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여행업은 방문판매법에서는 허용되지만 각 공제조합의 공제 규정상 마음대로 영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여행 상품은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등과 비교했을 때 가격대가 눈에 띄게 높다. 또 항공편이나 호텔 예약, 관광상품 예약 등으로 인해 선불 결제가 필수 요소다. 이로 인해 공제조합의 눈에는 사고 위험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부산에서 야심차게 출발했던 ‘노블제이’는 유통기한 3개월이라는 조항에 발이 묶여 넘어지고 말았다. 농수축산물을 망라해 생활필수품 시장을 개척하려 했으나 신선식품까지 3개월이 다 돼 반품하더라도 받아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규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들 기업이 만약 공제조합 가입 전에 안정적인 회원을 확보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좌절한 스타트업에 대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디자인이라는 회사는 여행 상품과 금융교육 상품을 들고 상륙했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섬의 법칙에 휘말려 손을 들고 말았다. 자사의 주력 상품들은 론칭조차 해보지 못하고 생뚱맞은 에너지 음료와 다이어트 커피를 내놨으나 발주한 물량 대부분을 폐기하거나 본사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정리해야 했다.
위의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눈에 띄는 대한민국 다단계판매업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스타트 업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40년 전에 유통했던 화장품과 건강식품 그리고 일부 생활용품에만 문호가 열려 있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를 대상으로 한 기업들은 뿌리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
트렌드 반영할 수 있어야 생태계 튼튼해져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 중의 하나는 ‘BE클럽’이다. BE클럽은 여행 상품과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교육용 앱, 디지털 홍보 솔루션이 주력 제품이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제품군이다. IYOVIA(아이요비아) 역시 주식, 코인, 디지털마케팅, 전자상거래 교육 상품이 주력이다.
전 세계적으로 암웨이와 허벌라이프 등 선점한 업체들이 발군의 성적을 내고 있지만 언제든지 디지털 상품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낼 수도 있다. 또한 기존의 유형의 상품을 취급하는 판매원들도 새로운 디지털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는 토양이 마련됨으로써 업계의 파이는 점점 더 커지는 효과도 누리는 것이다.
모 업체의 임원은 “상상 속에서는 온갖 다양한 상품을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결국 비타민과 화장품, 샴푸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서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도 있고, 웹3, 블록체인 등등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많아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탄했다.
각 업체의 임직원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소비자피해보상보험을 체결한 기업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기업은 누릴 수 없는 혜택을 제공하고 ▲막 시작하는 기업(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지켜보는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영업을 할 만큼 몸집이 커졌을 때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가입을 유도하며 ▲심각한 사행성 아이템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이나 기타 디지털 상품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다단계판매업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종사자 대부분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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