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예술적인 다단계판매
예술인의 연소득이 1,0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함께 조사하고 발표한 ‘2024 예술인 실태’에 이같이 나타났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아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문학인들의 자긍심이 한껏 치솟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러한 발표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조사에 따르면 사진, 문학, 미술 등을 하는 예술인들의 2023년 기준 연소득은 1,055만 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이 없는 예술인이 전체의 31%에 달하며, 500만 원 미만 소득을 올리는 비율도 29.2%로 집계됐다. 예술을 생업으로 삼고 있지만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의 비율이 60%가 넘는다는 의미다. 수입이 부족해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예술계 입문 이후 1년 이상 예술활동을 포기한 상태인 ‘경력 단절’ 경험자는 23.0%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로는 ‘수입 부족’이 65.5%로 가장 많았다.
예술을 전업으로 하는 비율은 절반 이상인 52.5%로 나타났고, 이 중 프리랜서는 61.7%였다. 절반 이상이 전업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들 10명 중 6명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예술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부업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52.5%가 전업을 하고 있다는 말은 나머지 47.5%는 겸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술인 복지법’ 제4조의 3에 따라 3년마다 시행하는 ‘예술인 실태조사’는 2015년 전면 개편 이후 네 번째로 시행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별·연령별, 14개 분야별 예술인 구성 비중을 반영해 전국 17개 시도의 모집단 33만 2,000명 중 총 5,059명을 1:1 면접, 온라인, 전화 등 방식으로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조사했다. 조사 기준시점은 2023년이다.
예술계의 냉담한 현실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발표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예술인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계약 체결률이 낮아 언제든 경제적 위기에 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어쩌면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부업을 병행했을 것이다. 강의도 해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숨고·당근 등 인터넷 플랫폼에 재능을 헐값에 팔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문득 ‘다단계판매가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단계판매산업은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확산했을 시절에도 수많은 실업자들이 판매원으로 유입되기도 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장점 덕분에 살림과 육아로 바쁜 주부들이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가, 피아니스트, 화가 등 실제로 다단계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린 예술인들의 이야기는 이미 업계에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밑천이 없어도, 조금 늦게 시작해도 맨주먹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인들에게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단계판매업체 입장에서도 예술인들의 사진, 미술, 문학에 관한 재능을 기업의 행사, 제품 기획, 디자인 등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여기에 예술인 특유의 창의력과 대인관계를 활용한다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기업의 실적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위축된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한편 다단계판매업계에서는 새로운 인재 확보를 위해 젊은층을 유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젊은 판매원들이 늘어난다면 업계 역시 역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젊은 사업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없는 편이다. ‘다단계판매=불법’이라는 막연한 오해와 질타를 받는데도 인생역전을 꿈꾸는 힘없고 바쁜 서민들이 주류를 이루는 산업이어서 해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사정은 정보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의 경계심이 허물어지지 않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판매원으로 활동하는 이들 중 20~30대 비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부모들의 권유로 가입했거나 부모들이 자식들의 명의를 차명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사업자들의 비율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이들은 화려하게 보여지는 ‘퍼포먼스’에 민첩하게 반응한다. 억지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지만, 예술인들이 다단계판매라는 무대에서 스스로의 기질을 발휘하게 된다면 이 산업도 심미적이고 기예적으로 변화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술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세대들의 유입을 위해서라도 부업이 절실한 예술인들을 업계로 모셔오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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