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부탁’과 ‘청탁’ 사이
“기사 안 나갔으면 해서요.”
기자를 업으로 삼다 보니 자주 듣는 말입니다. 언론과 기업은 때론 우호적이지만, 언제든 민감해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특히, 자신의 기업과 관련된 좋지 않은 내용의 기사가 나갈 때는 편하지만은 않은 사이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의 담당자와 담당 기자가 자주 연락하고 만나다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개인적인 친분이 쌓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한 위와 같은 ‘부탁’을 종종 받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단순한 부탁인지, 아니면 부당한 개입을 바라는 청탁인지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언론의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이 두 단어는 종종 뒤섞이며, 경계선을 위협합니다.
최근 한 기업의 관계자가 자신들에 대한 취재가 들어가자 연락이 왔습니다. 취재는 다른 기자가 하고 있는데 평소 친분이 있는 필자에게 연락을 해 온 것입니다. “이게 기삿거리가 됩니까?”, “이미 다 해결된 문제입니다” 등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숨은 뜻은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좀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기자들은 매일 많은 보도자료를 받습니다. 기업의 담당자들은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이메일 또는 전화를 통해 “잘 써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통상 보도자료는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 작성해서 언론사에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 부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기업에 어떤 잡음이 발생했을 때 “이번 이슈는 조용히 넘어가 주시면 안될까요?”라고 얘기한다면 이것은 정중한 ‘부탁’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청탁’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업의 담당자와 담당 기자가 자주 연락하고 만나다 보면 개인적 ‘친분’이 쌓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친분을 매개로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서 부탁과 청탁은 경계를 넘을 수 있습니다. 언론인에게 기사 보류나 편집 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부탁이 아닙니다. 이는 명백히 ‘청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행위이며, 언론의 자율성과 기업의 신뢰를 동시에 흔드는 위험한 접근방법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부탁’을 “도와달라고 청하거나 무엇을 해 달라고 간청함”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 ‘청탁’은 “일을 청하거나 부탁함”으로 되어 있으나, 실생활에서는 보통 ‘부당한 영향력 행사’라는 부정적 의미로 통용됩니다. 결국, 누군가에게 이익을 기대하며 무엇을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정중한 요청’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부탁과 청탁의 경계가 항상 뚜렷하지 않습니다. 기업 담당자는 언론과의 관계를 ‘협조’라고 말하지만, 언론인은 때때로 이를 ‘압박’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이런 ‘협조’와 ‘압박’의 관계가 서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기업과 언론의 사이에서 ‘청탁’은 종종 ‘친분’과 ‘정중함’이라는 가면을 쓴 채 다가옵니다. 미국의 언론학자 제임스 커런은 그의 저서 <미디어과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할 뿐 아니라, 스스로 권력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경계의 첫 단추가 바로 부탁과 청탁의 구분입니다. 언론이 부당하고 과도하게 취재 요청을 하면서 ‘협조’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때 기업은 소통의 문을 닫게 되고, 반대로 기업이 반복적으로 보도의 방향에 간섭하면서 이를 ‘부탁’이라 주장한다면 언론은 그 신뢰를 잃게 됩니다.
무엇보다 기업의 홍보·마케팅 담당자들은 언론을 친분을 이용한 ‘관리’의 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기자들과 친분을 쌓는 것은 정보의 공유와 소통을 위한 것이지, 보도의 방향을 통제하거나 개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윤리적 기업이라면 언론의 역할을 존중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정면으로 소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친한 기자에게 무리한 부탁을 반복하거나 ‘알아서 잘 써달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신뢰는 금이 갑니다.
현실에서 ‘부탁’과 ‘청탁’은 늘 모호하게 엇갈리며 상충합니다.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는 압박으로 느끼지만, 기업은 협조 요청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이 바로 기록입니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요구했는지 명확히 남기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언론계에서는 이를 ‘팩트의 기록’이라 부르고 기업에서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윤리’라고 말합니다.
<논어>에 “군자는 의(義)를 좇고, 소인은 이(利)를 좇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언론이 ‘의’를 따르지 않고 기업의 ‘이익’에 휘둘릴 때, 그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업도 ‘신뢰’보다 ‘유착’을 택한다면, 결국 사회적 존중을 잃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훼손하는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부탁은 정중한 요청이고, 청탁은 부당한 요구입니다. 말은 비슷하지만, 그 의미와 파장은 천지차이죠. 언론과 기업이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려면 이 경계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의 작은 말 한마디가 내일의 큰 논란이 되지 않도록 서로가 윤리의 선을 지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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