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맹증과 좁아진 시야가 계속된다면?
<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은 초기에는 단순한 야맹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질환은 천천히 시야의 가장자리를 갉아먹고 마침내 중심 시력까지 위협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적 원인으로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가 점진적으로 퇴화되는 희귀질환이다. 국내 환자 수는 공식 통계에 따르면 약 1,800명으로 추정되며, 세계적으로는 약 100만 명 이상이 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질환은 현재까지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적절한 보조치료와 지원 정책, 유전자 치료 임상시험 등을 통해 삶의 질을 유지하거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 글로벌 제약사들이 유전자 치료 기술에 주목하면서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야맹증에서 실명까지, 망막이 보내는 경고
망막색소변성증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야맹증이다. 어두운 환경에서의 시력 저하는 간상세포의 기능 저하로 발생하며, 환자들은 점점 ‘터널 시야’라고 불리는 좁은 시야만 남기고 주변 시야를 잃게 된다. 이 과정은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결국 중심 시력까지 잃고 실명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질환은 주로 청소년기 또는 20대 초반에 발병하며, 드물게는 유년기나 중년 이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유전적으로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경우 발현될 수 있으며, 유전자에 따라 진행 속도와 증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시스템에 따르면, 망막색소변성증은 국내에서 지정된 약 1,200개 희귀질환 중 하나로 등록돼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등록된 환자는 1,824명이며, 이 중 약 30%는 저시력 보조기기 혹은 안내견 등의 외부 지원이 필요한 중증 단계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등록 환자나 경증 단계 환자까지 포함하면 잠재적 유병자 수는 5,000명 이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이러한 환자들을 위해 2019년부터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을 확대 시행하고 있으며, 망막색소변성증은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을 중심으로 검사·진단·보조기기 구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 질환으로 포함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역할 커져
세계적인 의학 참고서인 MSD 매뉴얼에 따르면, 망막색소변성증의 진단은 ▲망막 전기생리검사(ERG): 망막의 기능을 전기 신호로 측정 ▲광학단층촬영(OCT): 망막 층 구조를 영상화 ▲시야 검사: 터널 시야 및 주변 시야 결손 확인 ▲유전자 검사: 유전 변이 유형 분석 검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이 질환의 치료는 아직 근본적인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CRISPR), 줄기세포 이식, 광유전학 기술 등을 활용한 임상시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비타민A, DHA 등 항산화제를 통한 보조 치료가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일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성 질환인 만큼 가족력이 중요한 진단 단서가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희귀질환자 및 가족을 위한 유전자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 보건소 차원의 조기 선별 검사, 저소득층 유전자 검사비 지원 등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국립재활원과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에서는 저시력 환자 대상 보조기기 교육, 심리·정서 지원 프로그램, 고용 연계 상담 등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기반 시각 보조기기와 음성 인터페이스 내비게이션 기술 등이 도입되며 환자의 이동권과 자립 생활이 보다 용이해졌다.
한편, 질병관리청과 복지부는 2024년 하반기부터 희귀질환 임상시험 참여자에 대한 생활비·이동비 지원 시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는 치료 접근성이 낮은 희귀질환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첫 통합형 공공지원 사례로 평가받는다.
국내외 연구 활발히 진행 중
현재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주요 안과 클리닉에서는 rAAV 기반 유전자 전달체를 이용한 망막색소변성증 치료 임상시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Rhodopsin(RHO), RPGR, USH2A 등 다양한 돌연변이 유형을 목표로 한 1상·2상 임상시험들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2026년을 목표로 2상 임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들 병원은 전기생리검사(ERG), OCT, 미세 시야 검사와 같은 정밀 검사를 통해 유전자형별 환자를 선별하고, 개별 유전자형에 맞춘 맞춤형 단일 주사 요법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초기 평가 결과, 안전성 측면에서 이상 반응은 경미한 수준이며, 시야 민감도와 저조도 시력에 일부 개선이 관찰되었다는 내부 보고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KAIST 연구진이 Prox1 단백질 조절을 통해 M.ller glial cell을 재프로그래밍하여 망막 재생을 유도하는 혁신적 치료 기전을 개발하였고, 향후 국내 임상 적용 가능성이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2017년 미국 FDA가 유전자 치료 전문 기업 스파크 테라퓨틱스(Spark Therapeutics)의 럭스터나(Luxturna)를 세계 최초의 망막 유전자 치료제로 승인하면서 상업적 상용화가 본격화됐다. 럭스터나는 RPE65 유전자 이중 돌연변이가 확인되고, 여전히 생존하는 광수용체 세포가 존재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시술은 양안 각각 약 42만 5,000달러(한화 약 5억 9,000만 원) 수준으로 시행된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시력 손실이 진행 중이던 어린이와 성인 환자들이 치료 후 별 보기, 얼굴 인식, 독서 기능 일부 회복 등의 시각 개선을 경험했고, 이러한 효과는 최대 3년 이상 지속되는 사례도 보고됐다.
현재까지 FDA 승인 치료제는 럭스터나 하나뿐이다. 대부분의 다른 RP 유전자 치료제는 임상 1~3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럭스터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용이다. 양쪽 눈을 모두 시술할 때 치료비만 10억 원이 넘는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단순히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이 아니라, 환자의 학업·진로·사회적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장애다. 특히 청소년기에 진단을 받는 경우 정신적 충격과 불안감이 크며,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립이 어려운 현실도 존재한다.
따라서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나 동정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해와 지원 시스템을 통해 포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의료현장뿐 아니라 교육·문화·기술 산업 전반에서 ‘시각 약자’를 위한 설계와 접근성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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