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번’
그 많던 판매원은 어디로 갔을까?
한때 900만 명을 넘어서며 전성기를 누리던 다단계판매 회원 수가 최근 600만 명대로 감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18년 903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해마다 하락을 거듭한 끝에 2024년에는 687만 명 수준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이들 중 중복 가입자와 가입만 하고 활동을 하지 않는 비활동 회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판매활동에 나서고 있는 회원은 400만 명 전후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 많던 다단계판매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모 업체의 경영자는 “매출이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회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게 더 큰 문제”라면서 “사람이 있어야 소비도 되고 매출도 느는데 제품을 사용할 사람도 드물고, 회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전달해 줄 사람은 더 없으니 업계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단계는 실버산업?
매출이 꺾이고 회원이 줄어든 원인으로 가장 먼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고령화다.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다단계판매가 시작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점이다. 당시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은 4,796달러로 다단계판매를 시작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인 3,000달러 선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단계판매는 지금의 AI열풍과 비견될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삼성과 현대, 대우, LG 등의 대기업 임직원과 IBM 등의 외국계 기업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하던 젊은 인재들까지 사표를 내고 덤벼드는 엘도라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 당시와 2025년 현재를 비교하면 다단계판매원의 연령 구성에서 거의 20년 이상의 격차가 벌어진다. 지금의 정상급 기업에서 상위 직급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회원은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당시의 새파랗던 젊은이들이 30년의 성상을 지나면서 고령화된 것이다. 당시의 30대는 60대가 됐고, 40대는 70대가 됐다. 그리고 당시 50대였던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늙어간 자리에 들어와 조직에 활력을 제공해줘야 할 그다음 세대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50대들이 일부 활약하고 있을 뿐 40대 판매원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모 업체의 판매원은 “요즘 각 센터에는 60대만 돼도 젊은 사람 왔다고 대접받는다”고 말했다. 그의 한 마디에 세대교체 또는 사업의 연속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모 업체의 창립자는 “회원들의 세미나에 초대받는 것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세대의 순환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말이다.
한 업체의 리더 판매원 또한 “부고를 받는 일도 잦을뿐더러 요양시설에 들어가거나 치매를 앓아서 전화 통화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러다가는 다단계판매 자체가 실버산업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단계 차별법 바로잡아야”
회원 이탈의 가장 큰 원인은 시대에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도입 당시만 해도 ‘신유통’이며 ‘신사업’이었지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발전도 개선도 없이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모 업체의 판매원은 “1990년대만 해도 정말 멋진 사업이었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을 때 1년에 한두 번씩 여행다녔고, 인터넷 홈페이지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었고, 소포나 소하물이라는 말이 보편적이었을 때 택배 시스템을 통해 제품을 받았으며, 다들 월급 받던 시절에 주급 받았으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그런데 지금은 다단계업계가 시대를 앞서거나 선도하고 있는 분야가 하나도 없다”며 “30년 전 그대로인 사업을 젊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할 리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판매원 역시 “그때는 통신 상품을 판매하던 업체들이 상위권에 있었는데 이제는 핸드폰마저 팔 수 없는 사업이 됐다”며 “핸드폰 단말기도 못 파는 상황에서 핸드폰에서 구동되는 디지털 상품을 무슨 수로 취급하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다단계판매는 무슨 이유로 시대를 역행하거나 정체돼 있는 것일까? 모 업체의 대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적 규제와 공제조합의 공제규정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 광고를 본 적이 있느냐?”며 “이 업체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클릭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부업’으로 하면 적지 않는 돈을 벌 수 있다고 광고하는데 다단계판매는 부업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이유라도 알면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이유조차도 모르고 따를 수밖에 없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체의 대표는 “세부적인 규제 조항을 조목조목 따질 것도 없이 기업의 자율성만 보장해줘도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하다”면서 “정부의 정책이 다단계판매 시장을 선점한 대형 업체를 따라 하라는 식은 헌법에 보장된 경제활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약·총포·도검류 제외한 모든 제품 취급해야 고소득 가능
해마다 발표되는 다단계판매업자 정보공개에서 가장 열독률이 높은 분야는 판매원의 소득 관련 내용이다. 2024년 기준으로 후원수당을 받은 회원은 전체의 16.7%, 평균 수당은 131만 원이었다. 상위 1%는 7,000만 원 이상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상위 0.1%에 속한 최고 소득분을 제외하면 상위 1%의 소득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라는 게 판매원들의 이야기다.
수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판매원이라기보다는 단순 소비자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인의 강요나 드물게는 필요에 의해, 또는 호기심으로 인해 가입했겠지만 나눠가질 파이가 작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4년 기준 전체 매출 4조 5,373억 원 중 판매원에게 돌아간 수당은 1조 5,099원이었다. 대충 매출액의 35%는 풀린 셈이다. 그런데 이 수치를 미국의 대다수 업체들이 적용하는 후원수당 60%를 대입하면 2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똑같이 판매 활동을 하고 한국인은 더 적은 수의 판매원이 더 적은 금액의 수당을 받는 것이다.
일부 리더 판매원은 “당연히 35%로 수당이 제한된 만큼 제품 가격이 낮을 것으로 믿지만 미국 기업의 한국 지사의 경우 제품가는 비슷한 수준이거나 몇몇 업체는 오히려 한국의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모 업체의 임원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직업과 직장이 사라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AI까지 개발돼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면서 실업이 보편화될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정부 입장에서도 다단계판매를 일자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실업을 보완하고 그에 따라 복지 예산도 좀 더 효율적으로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말처럼 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다단계판매가 역할을 100% 수행할 수 있으려면 대폭적인 규제 철폐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임원은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과 총포 및 도검류를 제외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을 취급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거기에 품목당 가격 제한만 풀어주면 새로운 소득원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품목이 확대되고 소득이 높아진다면 당연히 종사자의 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일이다.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부상한 세대교체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다단계판매 초창기에는 야망을 가진 젊은이들이 도전할 만한 분야가 제한적이었다. 그로 인해 다단계판매가 열정의 분출구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돈이 될 것 같은’ 새로운 분야가 넘친다. 과거의 다단계판매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제한적일지라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해당 업계는 활황을 누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가상자산 투자자 등등의 분야다. 유튜버로 적정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은 다단계판매를 통해 소득을 얻어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비율이 낮지만 젊은이들은 물론 노년층에서도 지속적으로 도전한다. 인플루언서 또한 마찬가지며 가상자산 투자는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패가망신에 이르기도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그들을 유인하는 셈이다.
모 업체의 판매원은 “아들 녀석이 먹방 유튜버를 하겠다고 해서 카메라, 조명, 컴퓨터까지 풀세트로 갖추고, 매일 같이 먹어대는 음식값 등 엄청난 지원을 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카메라 값도 못 뽑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돈 생각하면 못할 짓인데 본인이 좋다고 하니까 지원할 수밖에 없다. 저런 열정을 다단계로 옮겨 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며 “다단계판매업계도 젊은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구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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