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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에서 알약으로, 비만치료제 패러다임이 바뀐다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5-09-05 08: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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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2025년 글로벌 제약 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비만치료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체중 감량은 개인 의지와 생활 습관 교정에 달려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비만은 고혈압·당뇨병·심혈관 질환과 함께 관리해야 할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굳어졌고, 약물 치료가 본격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위고비(Wegovy)와 마운자로(Mounjaro) 같은 신약은 이미 시장을 뒤흔들었으며, 최근에는 경구용 비만치료제까지 임상에 속속 성공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비만율 급증
우리나라의 비만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2021년 기준, 한국 성인의 비만 유병률은 전체 38.4%, 남성 49.2%, 여성 27.8%로 조사됐다. 이는 성인 남성 두 명 중 한 명이 비만이라는 뜻이다. 특히 30~50대 남성 층에서 절반 이상이 비만 상태로, 각종 만성질환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추세는 더욱 심각하다. 2014년 37.8%였던 남성 비만율은 2023년 45.6%로 10%p 가까이 상승했다. 여성 역시 같은 기간 33%대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에서의 좌식 생활 증가, 서구화된 식습관, 운동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제 비만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건강 리스크로 떠올랐다. 이런 배경에서 효과적인 약물 치료제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비만치료제 시장의 판을 바꾼 ‘위고비’
비만치료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주인공은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위고비(Wegovy)다.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위고비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유사체 기반 치료제로,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연구되다 식욕 억제 효과가 밝혀지면서 비만치료제로 개발됐다.

임상시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68주(약 16개월) 동안 평균 체중의 15%를 줄이는 성과를 보여 기존 약물 대비 3배 이상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주 1회 주사라는 편의성이 환자의 순응도를 높였다.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사용 사실을 밝히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불법 유통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위고비의 성공은 비만치료제를 단순한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주류 치료제 시장의 핵심 품목으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글로벌 제약사들에게 “비만은 차세대 블루오션”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위고비의 대항마로 떠오른 ‘마운자로’
뒤이어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내놓은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또 다른 ‘게임체인저’로 떠올랐다. GLP-1과 함께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제다.

임상시험에서는 위고비보다 더 큰 효과를 입증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평균 20% 이상 체중을 감량시켰고, 혈당 개선 효과도 탁월했다. 2022년 당뇨병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고, 2023년에는 체중 관리용으로도 허가됐다. 한국에는 2024년 정식 출시됐으며, 의료계와 환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마운자로의 등장은 위고비가 독점하던 시장에 균열을 내며, 비만치료제 시장의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다만 두 약물 모두 주사제라는 점에서 장기 복용의 불편함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새로운 전환점, ‘먹는 비만치료제’
비만치료제 시장의 다음 무대는 주사제가 아닌 알약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이미 ‘주사제 혁명’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환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경구용 GLP-1 작용제가 차세대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사제는 효과가 뛰어나지만 장기간 맞아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일부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거나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틈새를 노리고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알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앞서 나간 곳은 일라이 릴리다. 릴리가 개발 중인 ‘오르포글리프론(orforglipron)’은 하루 한 알 복용으로 72주간 체중의 10.5%를 줄이는 임상 3상 성과를 냈다. 기존 주사제 못지않은 효과를 보이면서도 복용 편의성은 훨씬 뛰어나 “비만치료제 판도를 뒤흔들 약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릴리 측은 “비만과 제2형 당뇨 환자 모두에게 전례 없는 효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안에 글로벌 규제당국에 허가 신청을 진행할 계획이다.

경쟁자인 노보 노디스크 역시 가만있지 않는다. 위고비의 성공으로 시장을 선점한 노보는 곧바로 ‘세마글루타이드’의 경구 버전 개발에 나섰다. 후기 임상에서 최대 15% 체중 감량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미국 FDA의 최종 결정은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주사제에서 알약으로 이어지는 혁신을 통해 노보는 다시 한번 시장의 주도권을 굳히려는 전략이다.

머크(Merck) 역시 중국 제약사 한소파마(Hansoh Pharma)와 손잡고 ‘HS-10535’라는 경구용 소분자 GLP-1 작용제를 개발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 시장까지 고려한 장기 전략을 준비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바이오텍 에코진(Ecco­gene)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ECC5004’는 1일 1회 복용하는 형태로, 초기 임상에서 체중 감량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를 보였다. 현재 중간 단계 시험이 준비되고 있어 향후 성과가 주목된다.

로슈(Roche)는 스타트업 인수 전략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2022년 미국의 카르못 테라퓨틱스(Carmot Therapeutics)를 인수한 뒤, 경구용 GLP-1 작용제 ‘CT-966’을 개발 중이다. 이 약물은 당뇨병이 없는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에서 단 4주 만에 평균 6.1% 감량이라는 고무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짧은 기간에 나타난 효과라 상업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다.

반면 화이자(Pfizer)는 아쉬운 소식을 전했다. 하루 두 번 복용하는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을 개발했지만, 중간 단계 임상에서 내약성 문제(위장관 부작용 등)가 크게 부각되면서 결국 개발을 중단했다. 그러나 화이자가 시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며, 다른 형태의 경구용 후보 물질 탐색에 여전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글로벌 빅파마들이 일제히 ‘먹는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드는 현상을 두고, “주사제에서 알약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제형 변화가 아니라 시장 확대의 핵심 동력”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환자 입장에서는 알약 하나로 체중 관리가 가능하다면 심리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고, 장기 복용 순응도 역시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시장 규모의 급격한 팽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컨설팅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비만치료제 시장은 2030년 1,500억 달러(한화 약 2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만 해도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각각 수십 조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경구제까지 본격 상용화된다면 환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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