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단 상조, 날개 꺾인 다단계
상품군 확장한 상조, 7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
다단계판매업계가 2년 연속 매출 감소세를 기록하며 불황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상조업체는 7년 만에 선수금 규모가 두 배 이상 불어나며 성장세를 나타냈다. 같은 특수거래업종인데 희비가 엇갈린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 이하 공정위)에 따르면 2024년 다단계판매 시장 매출액은 4조 5,373억 원으로, 전년 대비 8.5% 줄면서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무려 20년 전 수준(4조 4,719억 원)으로 뒷걸음질했다. 2024년 기준 등록 판매원 수도 687만 명으로 33만 명 감소했다.
업계는 불황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과도한 규제를 지목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부동산, 여행, 청소 서비스 등 다양한 재화와 용역이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되지만, 한국은 온갖 규제로 인해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등 일부 품목으로만 한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무덤에서 요람으로, 대전환 앞둔 상조업”
다단계업계와 달리 상조업계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25년(3월 말) 기준 선불식 할부거래업체(상조업체) 선수금 규모는 10조 3,348억 원으로, 2018년 4조 7,728억 원에서 7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가입자 수도 2018년 516만 명에서 2025년 960만 명으로 대폭 늘었다. ‘선불식 할부거래’란 대금을 2개월 이상의 기간에 걸쳐 2회 이상 나눠 지급하고 재화 등을 공급하는 계약이다.
2025년 기준 전체 76개 업체 중 여행상품만 취급하는 업체는 8개, 상조와 여행상품을 함께 취급하는 업체는 12개, 상조상품만 취급하는 업체는 56개다. 여행상품을 취급하는 업체 수는 소폭 늘어난 반면, 상조상품만을 취급하는 업체는 전년 대비 5곳 줄었다. 선불식 할부거래 방식의 여행상품은 지난 2022년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할부거래법 적용을 받게 됐다.
삼정KPMG의 보고서(무덤에서 요람으로, 대전환을 앞둔 상조서비스업)에 따르면 상조서비스는 가입 시점의 물가를 반영해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입부터 서비스 시작 시기까지의 시차만큼 가입자에게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고물가 시대에 주목받고 있다. 또, 삼정KPMG는 “장례 중심에서 벗어나 교육·웨딩·헬스케어 등 생애주기 서비스로 외연을 넓힌 것이 성장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일례로 웅진프리드라이프, 더피플라이프 등은 기존 상조상품 납입금을 활용해 웨딩·크루즈·어학연수·돌잔치·인테리어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는 ‘전환서비스’ 제도를 운영하면서 젊은 세대 공략에 나서고 있다.
젊은층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펫팸족’ 트렌드에 발맞춰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도 등장했다. 보람상조는 전문 장례지도사가 직접 출동해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단독 추모실과 펫 전용관, 유골함, 헌화꽃, 수의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카이펫’을 운영하고 있다. 또 ‘펫츠비아’를 통해 반려동물의 털, 유골, 발톱 등을 주얼리 형태로 보존할 수 있는 이색 추모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웅진프리드라이프는 AI 기술을 활용해 고인의 모습을 구현하고 대화할 수 있는 ‘리메모리’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상조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며 “전환서비스와 펫케어 등 서비스 다변화가 더해지면서 상조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며 전 연령층의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수합병 거쳐 소수의 대형사 위주로 시장 재편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는 자본금 15억 원 이상의 등록 요건을 갖춰야 하고 은행, 공제조합 등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등을 통해 선수금의 50%(여행상품은 40%, 2026년 2월부터 50% 적용)를 보전해야 한다. 나머지 50%는 금융상품, 부동산 등에 투자하며 수익을 낼 수 있다.
선불식 할부거래업의 청약철회 기간은 14일이고, 상품이 개시되지 않았다면 소비자는 일정 금액을 공제하고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상조업체가 폐업할 시 3년 내에 선수금의 50%를 보상받거나 ‘내상조 그대로’ 서비스를 통해 기존 상품과 유사한 상조 서비스를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상조업 시장은 2000년대 급격히 성장했지만, ‘먹튀’ 논란으로 불신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2010년 상조업을 선불식 할부거래의 한 유형으로 포함하면서 본격적인 규율이 시작됐고, 같은 해 선수금 50% 보전이 의무화됐다. 2019년에는 모든 선불식 할부거래 사업자에 대한 자본금 등록 요건을 기존 3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강화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제도적 안전장치가 오히려 상조업계 성장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등록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상조업체들 간의 인수합병이 활발히 진행됐고, 2015년 243개사였던 상조업체는 2019년 92개로 약 62% 감소했다.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대형사 위주로 시장이 재편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단계판매, 상조 모두 까다로운 등록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다단계판매의 규제는 상품 종류, 가격까지 통제하지만 상조는 이러한 제한 없이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며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 한 다단계 시장의 회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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