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설득은 ‘경청’
세상은 인자하지 않다 동정 따위 바라지 마라
<진리를 찾아서…>

천지는 결코 인자하지 않습니다. 천지가 인자했더라면 폭우로 인한 재해도, 가뭄으로 인한 재해도, 산불로 인한 재해도, 지진으로 인한 재해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온 세상을 마비시켰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도 없었을 것이고, 도처에서 발발한 전쟁도 어떻게든 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는 인간이라고 해서 더 봐주고, 동물이라고 해서 덜 봐주는 법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법칙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저 제사상에 잠시 쓰이고 버려지는 풀강아지처럼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떠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라고 하면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아끼고 위하며 애지중지할 것 같습니다만 노자는 성인 또한 인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인이나 돼서 백성을 제사상에 한 번 올리고 버리는 풀강아지 취급을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고 하더라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인자하지 않을 거라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무관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성인이지요. 그래야 돌아가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정말 인정머리 없고 인간미 없는 리더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냉정한 인간이라면 조직에서 내쳐져야 당연할 텐데 오히려 승승장구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해주기 위해 지구가 멈출 수는 없는 것처럼 사소한 온정 때문에 발길을 늦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또 동정심을 유발해 뭔가를 도모하려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값싼 동정심은 나를 기르고 고무하기보다는 내 속에 가지고 있던 잠재력마저 고갈시킵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동정을 바라는 사람보다는 가냘픈 운명의 끈을 부여잡고 최선을 다해 맞서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게 인간입니다.
담을 넘으려는 사람에게 등을 내주면 그 등을 밟고 장애물을 넘어가지만 막연히 손만 벌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등을 내주더라도 등을 내주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습니다. 풀무란 대장간이나 제련소 등지에서 불을 피울 때 바람을 불어넣는 기구입니다. 풀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엄청난 불길이 일어나지요. 텅 비어 있어서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데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대로, 가득차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동안에는 때때로 비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그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양손에 시장바구니만 들고 있어도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큰 짐을 안고 있는 사람은 그 짐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쓸 수가 없게 됩니다. 한 손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들여야 합니다. 마음속에 들어온 걱정거리라도 잘게 잘게 나누고 해체하다 보면 극소량의 걱정만 남아 있게 됩니다. 몸의 짐도 마음의 짐도 가볍게 해야 내가 조종하고 쉽사리 다룰 수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를 하고 궁해지기 마련입니다. 소위 말하는 구설수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한때는 나라를 좌지우지할 것 같았던 정치가들도 말 한 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무대 뒤로 사라지고는 했습니다. 칼에 맞고 총에 맞은 상처는 아물기도 하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원망으로 남고 때로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지는 인간이라고 해서 더 봐주고, 동물이라고 해서 덜 봐주는 법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법칙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저 제사상에 잠시 쓰이고 버려지는 풀강아지처럼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떠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라고 하면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아끼고 위하며 애지중지할 것 같습니다만 노자는 성인 또한 인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인이나 돼서 백성을 제사상에 한 번 올리고 버리는 풀강아지 취급을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고 하더라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인자하지 않을 거라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무관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성인이지요. 그래야 돌아가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정말 인정머리 없고 인간미 없는 리더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냉정한 인간이라면 조직에서 내쳐져야 당연할 텐데 오히려 승승장구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해주기 위해 지구가 멈출 수는 없는 것처럼 사소한 온정 때문에 발길을 늦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또 동정심을 유발해 뭔가를 도모하려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값싼 동정심은 나를 기르고 고무하기보다는 내 속에 가지고 있던 잠재력마저 고갈시킵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동정을 바라는 사람보다는 가냘픈 운명의 끈을 부여잡고 최선을 다해 맞서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게 인간입니다.
담을 넘으려는 사람에게 등을 내주면 그 등을 밟고 장애물을 넘어가지만 막연히 손만 벌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등을 내주더라도 등을 내주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습니다. 풀무란 대장간이나 제련소 등지에서 불을 피울 때 바람을 불어넣는 기구입니다. 풀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엄청난 불길이 일어나지요. 텅 비어 있어서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데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대로, 가득차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동안에는 때때로 비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그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양손에 시장바구니만 들고 있어도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큰 짐을 안고 있는 사람은 그 짐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쓸 수가 없게 됩니다. 한 손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들여야 합니다. 마음속에 들어온 걱정거리라도 잘게 잘게 나누고 해체하다 보면 극소량의 걱정만 남아 있게 됩니다. 몸의 짐도 마음의 짐도 가볍게 해야 내가 조종하고 쉽사리 다룰 수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를 하고 궁해지기 마련입니다. 소위 말하는 구설수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한때는 나라를 좌지우지할 것 같았던 정치가들도 말 한 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무대 뒤로 사라지고는 했습니다. 칼에 맞고 총에 맞은 상처는 아물기도 하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원망으로 남고 때로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만인을 이롭게 할 수 없는 말이라면 차라리 심중에 안고 삭이는 게 좋습니다.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나면 자신의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상대방의 속은 썩고 문드러져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말이 많기만 한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적재적소에 적당량의 말만 전달할 줄 압니다. 그러나 그저 말이 많은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뚱맞은 말들을 쏟아내고는 합니다. 말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가장 잘하는 말은 경청입니다. 마음을 기울여 들어주다 보면 그 어떤 웅변으로도 움직일 수 없던 마음들이 뜨겁게 반응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말이 많기만 한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적재적소에 적당량의 말만 전달할 줄 압니다. 그러나 그저 말이 많은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뚱맞은 말들을 쏟아내고는 합니다. 말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가장 잘하는 말은 경청입니다. 마음을 기울여 들어주다 보면 그 어떤 웅변으로도 움직일 수 없던 마음들이 뜨겁게 반응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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