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단계판매원은 유령인가?
약 700만 명이 활동하는 다단계판매원은 우리 사회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및 각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단계 유통망은 소비자와 기업을 잇는 중요한 유통 채널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단계판매원은 직업 코드상에서 ‘방문판매원’이라는 큰 범주에 뭉뚱그려져 있다. 방문판매와 다단계판매는 얼핏 유사한 업종인 것 같지만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방문판매원은 급여 소득자인 반면 다단계판매원은 자영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누릴 수 있는 각종 세제 혜택과 경비 처리, 정부 지원 등은 전혀 받지 못한다. 급여소득자와 자영업자를 같은 직업으로 분류하고 있으면서 그에 대한 정책 적용은 달리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직업 현실을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다단계판매원들이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다단계판매원이라 할지라도, 독립된 직업코드가 없으니 필요경비 인정 범위가 모호하다. 사업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교통비, 통신비, 홍보비 등이 경비로 온전히 인정되지 못해 세 부담이 과도해진다. 동일한 소득 구조를 가진 프리랜서 강사나 보험 설계사는 직업코드를 기반으로 일정 부분 세제상 혜택을 누리지만, 다단계판매원은 방치되는 셈이다.
사회보장제도의 문제도 심각하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중심으로 제도가 확장되고 있지만, 직업코드에 없는 집단은 그 논의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다단계판매원은 스스로 영업망을 구축하고 성과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특고 종사자에 해당하지만, 직업 분류상 방문판매원에 속해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 정부가 종사자 수와 소득 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맞춤형 사회안전망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정부의 각종 지원 제도에서도 다단계판매원은 배제된다. 코로나19 시기 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할 때, 다단계판매원은 애매한 직업 분류 탓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이는 제도의 미비로 인한 차별과 다름없다. 합법적인 다단계판매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행정적 기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직업코드 신설은 단순히 다단계판매원들의 이익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이는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조직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제도적으로 직업을 인정해야 통계를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올바른 규제를 설계하고, 불법 다단계와 합법 다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직업코드가 존재해야 세제 합리화도 가능해지고, 보험·복지 등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수 있다. 제도의 공백이 불법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단계판매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등록된 다단계판매업체와 그 안에서 일하는 판매원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그와 별개의 문제다. 다단계판매원이 우리 경제의 한 축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을 제도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음성적 조직이 대거 발호하는 빌미를 주게 될 것이다. 점증하는 불법 여행 다단계업체가 바로 분명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다단계판매원에게 직업코드를 부여하는 일이야말로 제도와 현실을 일치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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