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가 돼라, 온갖 생명이 모여들지니
암컷의 덕성을 지녀야 오래 갈 수 있다
<진리를 찾아서…>

『도덕경』 제6장 (第六章)
谷神不死(곡신불사)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是謂玄牝(시위현빈)
이를 일러 그윽한 암컷이라고 한다.
玄牝之門(현빈지문)
그윽한 암컷의 문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
이를 일러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綿綿若存(면면약존)
이어지고 이어져 있는 것 같다.
用之不勤(용지불근)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합니다. 산과 골은 양과 음이기도 하고 남과 여이기도 하지요. 남자들은 대부분 높이 오르는 일에 골몰합니다. 대체로 남자의 욕망은 멈추는 법을 모르지요. ‘조금 더, 한 걸음만 더’라는 욕망에 집착하다 끝내 낭패를 보고는 합니다.
높이 오르기보다 안정된 자리를 추구하는 여자들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입니다. 남자가 위태로운 봉우리라면 여자는 안정된 골짜기입니다. 그 옛날 이 땅의 여인들은 집 나간 남편이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반병신이 돼 돌아오더라도 말없이 받아주고는 했습니다.
봉우리는 무너지기 쉽지만 골짜기는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플랫폼처럼 온갖 짐승들이 물을 먹으러 오기도 하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기도 합니다. 하루살이와 같은 미물에서 호랑이 같은 맹수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생명들까지 부담없이 찾아오고, 골짜기는 그들의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다하지 않을뿐더러 다디단 물을 먹여 키우고, 풀 나무를 우거지게 해 숨겨주고 또 쉬어가게도 합니다.
산이 너무 높으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살지 못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성공한 후 돌아봤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지요.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도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살 수가 없습니다.
에베레스트는 수많은 산악인들이 그저 한 번쯤 올라가고 싶어 하는 봉우리일 뿐 어떤 효용도 없습니다. 올라갔다면 서둘러 내려와야 하지요.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곧장 죽음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하지만 베이스캠프까지만 내려와도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표범도 살고, 영양도 살고 땅에 찰싹 붙어서 풀들도 자랍니다. 그렇지만 해발 4,000m의 생태계는 그다지 풍부하지 않습니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본격적인 계곡이 시작되고 생명의 합창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높은 것은 그런 것입니다. 높다는 것만으로는 우리 삶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넓고 깊어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걸 모르고 너무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최근에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는 감옥에 있고, 그 한 사람의 욕망에 편승하려 했던 다른 사람들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높아지기보다는 낮아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골짜기는 낮은 곳에서 숱한 생명들을 품고 기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가장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는 방법은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라고 하지요. 골짜기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웬만한 상황이라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냇물이 흐르고 냇가에는 사람의 마을이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고 길러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리더라 이름 붙이고, 성인이라고 불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고 하며, 이것을 그윽한 암컷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암컷의 문을 통해 잉태되고 그 문을 통해 세상에 나옵니다. 세상의 뿌리, 세상의 근원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암컷이 없으면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골짜기와 암컷의 문은 생명을 낳고 또 키우며 번성시킨다는 점에서 흡사합니다. 노자의 도(道)는 낮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기운입니다.
상남자와 불한당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상남자는 진퇴를 알고 제 자리를 아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불한당은 가장 낮은 곳에 버려져 있으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걸로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보니 그에게는 예의고 존중이고 남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당연히 대다수의 불한당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서는 걸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뒤에서, 아래에서 조용히 일을 처리해 나가는 걸 선호합니다. 각각의 스타일이므로 어느 것이 더 낫고 더 못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나서는 걸 좋아하는 사람 곁에는 나서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참모 역할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요. 반대로 조용한 리더 주위에는 좀 요란한 분위기 메이커가 있어야 조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윽박지르는 독불장군형 리더보다는 어쩐지 여성성이 가미된 듯한 남성, 남성성이 엿보이는 여장부들이 성공 확률이 높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일이지요. 산과 골짜기는 바로 곁에 있고, 산의 역할과 골짜기의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 가면 물레를 자아 실을 뽑아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장면은 실로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끊어질 것 같은데도 끊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이 장면을 가리켜 면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그런 것입니다. 인류 발생 이후 수만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삶은 지금까지도 지구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하지요. 이러한 삶의 진리는 아무리 꺼내 써도 마르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과거의 지구에는 몇 번인가 대멸종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이야말로 인류의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겁에 질린 소리로 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것처럼 면면히 그 역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TOP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