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불법 피라미드 강력 처벌해야
모든 단어에는 힘이 있다. 같은 대상도 어떤 단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촌스럽거나 부정적으로 비치기도 하고, 세련되거나 전문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노인정’ 대신 ‘실버하우스’, ‘쓰레기 소각장’ 대신 ‘자원회수시설’, ‘다단계판매’ 대신 ‘네트워크 마케팅’이라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1995년 방문판매법 개정으로 다단계판매는 제도권 안에 편입됐고, 법률 용어로도 정착됐다.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려면 최소 5억 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추고,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계약을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 까다로운 요건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어 실제 피해 발생은 극히 드물다. 지난해 직접판매공제조합과 공제계약을 맺은 업체에서 발생한 보상금 지급액은 ‘0원’이었고,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도 6,600만 원에 그쳤다. 이는 다단계판매 시장 전체 매출액(4조 5,373억 원)의 0.00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이 다단계판매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기, 불법, 피라미드가 대부분이다. 다단계라는 말만 꺼내도 곧바로 고개를 젓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마저 죄인 취급을 받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업계 종사자들조차 다단계라는 표현을 피하고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하거나,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유통회사에 다닌다고 둘러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감자튀김을 프렌치 프라이라 부르거나, 계피차를 시나몬 티라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단어만 바꾼다고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화장을 두껍게 한 얼굴이 잠시 화려해 보일 수는 있지만, 민낯이 드러나면 충격이 더 큰 법이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대체어 역시 다단계판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리려고 덧칠한 화장일 뿐이다.
따라서 용어를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단계판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불법 피라미드다. 다단계판매와 무관한 코인, FX마진거래, 미술품, 부동산 사기 사건 등이 언론에서 다단계로 보도됐고, 뭇 대중도 이를 별다른 이질감 없이 받아들였다.
합법적인 다단계판매업체들은 매출, 후원수당, 환불 내역 등등 기업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직접판매산업협회, 직접판매공제조합,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등이 불법 피라미드와 합법 다단계판매의 차이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과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테헤란로에서 기생충처럼 번지고 있는 불법 업체들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다단계판매라는 법률 용어 자체를 ‘직접판매’, ‘특수판매’, ‘후원판매’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실제로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3년 ‘회원직접판매’로 용어를 교체하는 방문판매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정착된 용어를 바꾸는 것보다는 불법 피라미드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불법 영업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 무등록 업체는 줄고, 다단계판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MBI, 브이글로벌, 아도인터내셔널, 휴스템코리아 등 불법 피라미드 사건에 연루된 사업자들은 법정에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피해자들의 원성을 샀다. 이는 불법 피라미드에 대한 별도의 법률적 정의가 없어 방문판매법이나 사기죄, 유사수신법을 적용해서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검찰과 경찰이 불법 피라미드 업체에 대한 집중 단속을 예고했지만, 가담자에 대한 처벌 근거 없이 단속만 강화한다는 것은 불은 끄지 않고 연기만 잡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용어만 바꾼다고 업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업계 종사자들이 함께 노력해 ‘다단계판매’라는 단어 자체가 신뢰로 점철된 산업임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 독일, 대만, 일본 등 해외에서도 초창기 ‘다단계판매는 부정적’이라는 편견에 시달렸지만, 제도적 장치와 업계의 자정 노력이 맞물리며 긍정적인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다단계판매는 국내 산업적 가치 측면에서도 우수한 기능을 하고 있다. 제조·운송·유통 분야에서의 고용 창출, 중소기업 제품 판로 확대, 해외진출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다단계판매라는 단어 자체를 바꾸려는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불법 피라미드를 엄정하게 다스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법이라는 것은 처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도덕을 실현시키며 범죄를 예방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불법 피라미드를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법률을 만든다면, 수십조 원에 달하는 범죄 예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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