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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 제2의 팬데믹 될까?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5-10-30 17: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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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지난 9월 세계 보건계는 또 한 번 불길한 경고음을 들었다.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이 다시 확산되고 있으며, 포유류 감염 사례까지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류 인플루엔자가 차기 팬데믹의 유력한 후보”라고 입을 모은다. 인류가 코로나19의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년간 고병원성 AI 검출 건수가 100건을 넘었지만, 정작 백신도, 치료제도, 체계적인 대비도 부재한 실정이다. 보건복지위 장종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국내 유일한 AI 백신은 이미 효능을 상실했으며, 차세대 백신은 아직 비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란?
조류 인플루엔자(AI)는 오리, 닭 같은 조류에서 주로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변이되면서 포유류, 나아가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 AI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A형에 속하며, 표면의 두 단백질(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다아제(NA))조합에 따라 H5N1, H5N8 등 다양한 아형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도 H5N1형과 H5N8형은 치사율이 높고 전염 속도가 빠르다. 특히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clade 2.3.4.4b’ 계통은 변이 속도가 빨라 기존 백신으로는 방어가 거의 불가능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 계통은 현재 전 세계 가금류 집단 감염의 주요 원인이며, 일부 포유류 감염 사례에서도 동일한 유전자형이 검출되고 있다.

AI는 원래 조류에 특화된 바이러스지만, H5N1형은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이후 전 세계에서 860여 건의 인간 감염을 보고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치명률은 약 50%로, 코로나19(1~2%)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2024년에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고양이, 해수사자 등 포유류 감염이 연달아 보고됐다. 이는 바이러스가 종(種) 장벽을 넘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직접 감염되지 않더라도, 포유류 숙주를 거치며 변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사람 간 전파형 AI’의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3년간 100건 이상 검출, 
백신 효과 ‘제로’
장종태 의원이 질병관리청·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검출된 고병원성 AI는 2023년 46건, 2024년 26건, 2025년(8월 기준) 31건으로, 누적 100건을 넘었다. 특히 가금류뿐 아니라 일부 포유류 감염도 확인돼 바이러스의 확산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문제는 대응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AI 백신은 2005년 GC녹십자가 개발한 ‘지씨플루에이치파이브엔원멀티주’ 한 종류뿐이다. 그러나 이 백신은 2004년의 clade 1 계통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현재 유행 중인 clade 2.3.4.4b 계통에는 면역 반응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평가한다. 새로운 백신은 아직 비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용화까지 최소 3~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감염병 대비 체계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강화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특정 질병에 국한된 대응에 그쳤다. AI의 경우 질병관리청과 농림축산식품부가 이원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인수공통 감염병의 통합 대응 시스템이 부재하다.

또한, 조류 방역은 농가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인체 감염을 전제로 한 대응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신 개발 역시 산업적 수요가 적어 기업 투자가 미진하다. 장종태 의원은 “감염병 위기 때마다 긴급 대응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 상시적인 백신 비축·개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5N1, 이미 전 세계적 확산 중
세계보건기구(WHO)는 2025년 보고서에서 “H5N1은 이미 모든 대륙에서 확인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라며 “언제든 인체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일부 포유류 감염에서 호흡기 증상·폐렴 등 사람과 유사한 병리 반응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미 H5N1용 인간 백신 후보를 확보해 비축 중이다. 미국의 ‘CSL Seqirus’와 ‘GSK’는 각각 mRNA·단백질 기반의 AI 백신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EU 차원에서도 공공 비축 계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예산 편성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질병관리청과 한국리서치가 올해 상반기에 실시한 ‘감염병 국민 인식조사’ 결과, 국민의 72.4%가 “가까운 시일 내 새로운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를 겪은 국민들이 여전히 감염병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그러나 정부는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위험 소통이나 백신 확보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과 정부의 대응 수준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향후 실제 팬데믹 발생 시 대응 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기술과 정책이 함께 가야
AI 백신 개발은 단순히 제약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변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 항원 매칭, 임상 실험, 생산시설 구축 등 방대한 생명공학 생태계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국가 단위의 플랫폼 구축 없이는 상시 백신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백신 개발에는 최소 수년이 소요되므로, 사전 비축 전략(preparedness plan)이 필수다. 미국이나 EU처럼 ‘팬데믹 대비용 백신 후보군’을 미리 지정하고, 변이 발생 시 즉시 임상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2023년 이후 인수공통감염병 R&D 예산을 확대하려 했으나, 조류 인플루엔자 관련 항목은 여전히 미비하다. 장 의원은 “정부가 안이한 태도를 버리고, 조기 백신 확보와 감염병 대비 체계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아직 ‘잠재적 위협’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도 처음엔 그랬다. 고병원성 AI가 인간 사회에 들어오면, 치명률과 전파력을 고려할 때 피해 규모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인류는 이미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중요성을 코로나19를 통해 학습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방어’다. 과학기술, 산업, 제도, 그리고 사회적 공감이 함께 움직일 때만 제2의 팬데믹을 막을 수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단지 닭이나 오리의 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미래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팬데믹 그림자다. 지금 우리가 대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그림자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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