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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과 비움의 균형… 겸허와 절제

  • 권영오 기자
  • 기사 입력 : 2025-11-14 08: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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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알고 물러날 줄 알아야 오래 간다

<진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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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제9장(第九章)
持而盈之 不如其已(지이영지 불여기이)
지니어 가득 채우는 것은, 제 때에 그침만 같지 못하다.

揣而銳之 不可長保(췌이예지 불가장보)
간직하여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金玉滿堂 莫之能守(금옥만당 막지능수)
황금과 옥이 집에 가득할지라도, 지켜낼 수 없다.

富貴而驕 自遺其咎(부귀이교 자유기구)
돈 많고 지위 높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 귀로 들어온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겨우 허기나 면하고 수저를 놓을 줄 아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만둔다(止)는 것은 포기하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를 알고 멈추는 지혜입니다. 하늘의 해도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나무도 울창한 여름을 지내고 나면 다시 시들어 봄과 여름 내 키웠던 잎들을 떨굴 준비를 하고, 가을과 겨울을 거치면서 미련 없이 돌려보냅니다.

성공한 리더가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이 바로 ‘정점’입니다. 성과에 취해 스스로를 과신하면 그 힘은 오래가지 못하고 부서집니다. 채움이 미덕이 아니라, 비움이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은 늘 흘러 비우기 때문에 썩지 않습니다. 가득 채운 병은 더 이상 담을 수 없지만, 절반만 채운 그릇은 여전히 여유를 품습니다. 리더의 그릇도 그와 같습니다.

칼은 너무 갈면 오히려 날이 무뎌집니다. 인생도, 관계도, 조직도 지나치면 깨어집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지나친 완벽은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현대 사회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강하게’를 외칩니다. 그러나 노자는 ‘그만하면 됐다’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3,000년을 건너와 지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도 칼을 갈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너무 날카로워져서 다칠 준비가 된 것인가?”

성공의 순간에도, 칭송의 한가운데에서도 ‘지나침’을 스스로 경계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오래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날카롭게 날을 세워두어도 시간은 그것을 무디게 만들고 또 녹슬게 만듭니다. 날카로운 것은 타인을 해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찌르고 맙니다.

재물을 모을수록 오히려 마음은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얻으려는 욕망은 곧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다시 집착으로 바뀝니다. 부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이 자신의 힘이라 착각하는 마음이 화를 부릅니다.

교만은 가장 정교한 파멸의 시작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쌓아 올린 탑이라도 겸손 위에 서야 오래 갑니다.

자만은 성공을 향해 달려온 모든 노력과 시간들을 허물어 뜨립니다. 역사는 부귀와 향락에 취한 왕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수도 없이 보여줍니다. 권력을 쥔 손보다, 그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손이 강합니다.

돈도 있는 데다 지위까지 높아지면 누구라도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들이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한 청문회 등에서 폭로되는 부정한 축재와 갑질, 비인간적인 처세들은 인간의 등급을 잘 보여줍니다.

대체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등급이 정해져 있고, 돈을 많이 벌거나 직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 인간의 등급이 함께 높아지는 것은 알 수 있지요. 등급이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숨겨왔던 천한 등급을 고스란히 내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노자는 떠남의 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오르는 법은 알면서도 내려오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권력의 정상에 선 뒤 스스로 내려오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의해 끌려 내려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러하지요. 이제 그는 권력도 명예도 없이 시정잡배만도 못한 신세가 됐습니다.

하늘의 도(道)는 순환입니다. 차면 이지러지고, 가라앉은 후에는 다시 차오릅니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이 이룬 공을 자신의 것이라 하지 않고, 그 공이 조직과 구성원의 덕이라 말하며 한 걸음 물러납니다. 이것이 하늘의 길, 도의 완성입니다.

공수신퇴의 덕목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초한지 속의 장량입니다. 장량은 물러날 때를 알아서 한신과 소하가 욕을 볼 때도 자신의 몸과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노자가 제9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멈춤입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달은 충만한 아름다움이지만, 막 기울기 시작하는 달은 비울 수 있어 더 여유롭습니다. 비움은 곧 새로운 채움의 시작입니다. 비움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습니다.

리더란 사적인 욕심을 덜어내고, 공을 나누며, 스스로를 비워 공동체의 숨을 되찾게 하는 사람입니다.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가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가장 적은 전리품을 가장 늦게 챙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리더라면 조직을 위한 욕심은 클수록 좋지만 일신의 영달을 위한 욕심은 적을수록, 없을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하늘이 만물을 살리는 이유는, 그 하늘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강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낮아져 그 모든 물길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움은 가장 큰 채움이며, 멈춤은 가장 큰 움직임입니다.

도는 늘 고요하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낮아져야 높아집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인간 사회에서는 가장 어렵습니다. 노자는 묻습니다. 너무 채우지는 않았는지, 너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지선을 지나서까지 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리더가 자신의 공적을 지우면 조직이 채워지고, 권력을 내려놓으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편안해집니다. 비움의 미학은 곧 도의 리듬이며, 그 리듬 속에서 세상은 조용히 조화를 이룹니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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