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구름 위의 삶> - 제 1장 - 인생
저자 <댄다코리아 김영삼 회장>
06. 인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가 행동하는 목적은 결국 행복에 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행복은 저절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찾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 행복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존재 그 자체다. 우린 아무 조건 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한다. 바다, 햇살, 별 그리고 바람을 보고 듣고 느낄 때 그저 행복하지 않은가. 살아 있어서 기쁘지 아니한가.
돈이 최고라고? 어제 죽은 100억 자산가는 오늘 자장면 한 그릇도 먹을 수 없다. 대하소설《토지》를 쓴 박경리 소설가는 “살아 있는 것, 생명이 가장 아름답다”라고 했다. 그렇다. 생명은 그 자체로 찬란하게 아름답다.
볼 수 있어서, 들을 수 있어서,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하는 간절한 기도를 들어보자.
“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이것 하나만 바라며 간절히 기도한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축복이다.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우린 이미 이루고 살아가지 않는가. 누군가가 간절히 기대하는 기적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내 삶에 감사하자. 내 삶을 사랑하자. ‘지족(知足)하는 삶’을 살자!
지금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면 우울과 불행이라는 손님이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노크한다. 지금 보고 듣고 걸으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그것이 행복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그래도 삶이 무료해지면 가끔 봉사 활동을 해보자.
인천에서 사업하며 라이온스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지역 요양원을 찾아가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분을 목욕시키는 봉사 활동을 했다. 한 분은 거동할 수가 없어서 3명이 함께 욕실로 옮기기로 했는데, 그분을 들자마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살펴보니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욕창이 생긴 것이었다. 검지가 들어갈 만큼 구멍이 난 살에 피고름이 맺혀 썩고 있었다.
그렇게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꺼져가는 한 사람의 삶을 대하자니 뭐라 말하기 어려울 만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어찌어찌해서 그분을 깨끗하게 씻기고 다시 병상에 눕히자 만감이 교차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내 인생에도 노을이 찾아올 텐데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쓸쓸히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문득 슬펐다. 그런 마지막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몸을 씻은 그분은 개운했는지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일 듯 말 듯 짓던 그 옅은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원하던 물건을 사면 행복감이 열흘쯤 이어진다. 그러나 강한 인상을 받은 봉사 기억은 평생 가슴속에 남아 미소를 짓게 한다.
이처럼 돈으로 얻는 행복은 그 수명이 짧다. 반면 가치를 추구해서 얻는 행복은 그 수명이 길고 값지다.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덤으로 얻는 것도 있는데 그건 바로 돈, 명예, 인기다.
현재 삶이 힘들다면 웅크리고 앉아 이런저런 번민에 휩싸이지 말고 차라리 봉사를 해보길 권한다.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은 감사를 불러일으키고 행복감도 준다.
국어사전에서는 행복을 “기분 좋은 느낌(Good feeling)”으로 정의한다. 그러니까 행복을 돈 많이 버는 것, 큰 집을 소유하는 것, 좋은 차를 타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보고 듣고 걸으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오늘 어떤 상황에 있든 행복을 선택하자. 매일매일 그렇게 하자.
07. 죽기 직전 후회하는 4L
20세기 최고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bler-Ross)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는《인생 수업》(류시화 옮김, 이레, 2006)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후회하는 공통점 4가지, 즉 4L이라는 위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고(Laugh), 배우라(Learn)는 가르침인데 이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저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들은 삶은 기회이자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므로 붙잡고 감상하고 누릴 것을 권한다. 또한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음을 강조한다.
라이브(Live)는 ‘좀 더 잘 살걸’ 하는 후회다.
죽을 때는 대체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부두의 배는 정박해 있을 때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렇게 세워두려고 만든 게 아니다. 배는 비록 위험할지라도 풍랑을 헤치고 바다로 나가 꿈의 그물을 던져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인생의 선장은 ‘나’다. 돛을 세워 바다로 나아가자! 도전하자!
러브(Love)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할걸’ 하는 후회다.
9.11테러 당시 테러범이 비행기 4대를 납치했다. 그중 2대는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부딪혔고, 1대는 미국 국방부 본부 청사 펜타곤 건물 일부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나머지 1대는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했다. 그야말로 2,800~3,50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대참사였다.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히고 추락할 때 많은 사람이 마지막 문자를 남겼는데, 그 대다수가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이 죽기 직전에 가족, 지인에게 한 말은 거의 다 “사랑한다”였다.
살아 있다는 건 아직까지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오늘부터 가족과 지인에게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게 어떨까?
래프(Laugh)는 ‘좀 더 많이 웃을걸’ 하는 후회다.
웃을 일이 생겨야 웃는 게 아니다.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 항상 표정이 밝고 자주 웃는 사람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다. 이런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모든 식물이 햇빛을 원하듯 사람들은 밝은 사람 곁에 가고 싶어 한다.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더 좋고 훌륭한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니 잘 웃는 사람은 잘될 수밖에 없다.
런(Learn)은 ‘좀 더 배울걸’ 하는 후회다.
이것은 꼭 학교 공부를 뜻하는 게 아니다. 배운다는 것은 어떤 식이든 알아채고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이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듯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것을 말한다. 그 깨달음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혜안을 준다. 그리고 그때 느끼는 카타르시스(Catharsis)는 행복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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