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마트는 규제 사각지대?
<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최근 유통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를 꼽으라면 단연 ‘식자재마트’를 둘러싼 논쟁일 것이다. 외식업 종사자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게 되는 이 공간이 이제는 전통시장과 동네슈퍼의 존립을 위협하는 ‘거대 유통 채널’로 떠올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외식업 소상공인들이 생존을 위해 가장 의존하는 필수 인프라 역시 식자재마트라는 점에서 규제 논의는 쉽지 않은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 속에서 식자재마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논란이 치열해지는지 살펴본다.
규제의 빈틈 속 폭발적 성장
식자재마트의 성장세는 단순히 ‘잘 된다’는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푸디스트’, ‘세계로’, ‘장보고’ 등 이른바 빅3 업체의 매출은 이미 일부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넘어서는 수준이며, 전국 곳곳에서 2~3층 규모의 대형 점포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형마트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인 경우에만 대형마트로 분류해 월 2회 의무휴무 등 각종 규제를 적용한다. 그러나 식자재마트는 이 기준을 교묘히 피해간다.
가령 매장을 2~3개 동으로 분리해 각각을 3,000㎡ 미만으로 등록하거나, 창고 혹은 물류시설로 신고해 사실상 대형마트처럼 운영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점포 쪼개기’, ‘법인 쪼개기’ 전략이 일상화되면서 법은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 결과 식자재마트는 대부분 연중무휴, 영업시간 제한 없음, 입점 제한 없음이라는 ‘3무(無) 특혜’를 누리고 있다. 전통시장–대형마트–SSM으로 이어지던 기존 유통 시장 구도가 식자재마트의 등장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규제의 공백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식자재마트의 성장 이면에 납품업체의 희생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불만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과도한 입점비 요구다. 신규 입점 시 수천만 원대의 비용을 요구받거나 매장 리뉴얼을 이유로 기존 납품업체에게도 입점비를 반복적으로 부과한다는 증언이 있다. 매장 확장, 이동, 리모델링 등 명목은 다르지만 사실상 ‘자릿세’에 가깝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둘째는 행사 납품 강요다. 일부 식자재마트는 연간 180일 이상 ‘행사 납품’을 요구하는데, 이 경우 납품가는 소비자가의 절반 이하, 심지어 원가 이하로 떨어지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를 거부하면 기존 납품 거래가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실상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셋째는 미끼 상품 전략의 부담을 전가시킨다는 점이다. 계란, 양파, 고추 등 기초 식자재를 ‘상시 최저가’로 판매하기 위해 원가 이하 납품을 요구하거나, 특정 납품업체에 행사 물량을 떠넘기는 관행도 지적된다.
납품업체 입장에서 식자재마트는 손대면 매출은 늘지만 정작 남는 것이 없다는 목소리가 잦다. 특히 지역 기반의 도매상·영세 공급업자들은 “이대로면 버티기 어렵다”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역 자본 ‘블랙홀’ 비판
문제는 납품업체만이 아니다. 식자재마트가 급증하면서 전통시장, 동네슈퍼, 식재 소매상 등 기존 지역 유통망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식자재마트는 1만 원, 3만 원짜리 소량 소비자 판매도 활발하게 병행하기 때문에 동네마트의 고객까지 흡수한다. 특히 대형 점포가 주차장, 창고, 식자재 전문 코너까지 갖추고 24시간 영업할 경우, 전통시장의 경쟁력은 더 약해진다.
이로 인해 소상공인 단체들은 식자재마트를 “규제 없는 대형마트”, “지역 자본의 블랙홀”, “골목상권의 침식자”라고 표현하며 우려를 표한다.
실제로 한 지역에서는 식자재마트가 들어선 뒤 반경 1km 내 식료품 소매점 절반 이상이 2~3년 내 폐업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점포 쪼개기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서도 사실상 대형마트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이유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오세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장)은 “대형 식자재마트의 규제 회피와 불공정거래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그리고 중소 유통업계가 붕괴되고 있다”며 정부의 제도 보완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국식자재유통협회 “소상공인 생존 돕는 존재”
이 같은 비판과 달리, 한국식자재유통협회(이하 협회)는 식자재마트가 소상공인 생존을 돕는 존재라며 정면 반박한다.
협회는 “식자재마트의 매출 구조를 보면, 일반 가정 소비자가 아니라 식당·카페·분식점 등 외식업자 비중이 50% 이상”이라며 “외식업자는 대형마트나 온라인몰보다 식자재마트에서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 재료를 공급받기 때문에, 식자재마트는 ‘경쟁 파괴자’가 아니라 ‘조력자’”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며 미국의 예를 들기도 했다. 미국의 Restaurant Depot은 중소형 외식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핵심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협회는 “한국에서도 식자재마트는 외식업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 역할을 한다”며 규제를 강화하면 오히려 외식 소상공인이 타격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협회는 “식자재마트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외식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유통 기반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규제보다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월 2회 의무휴무의 형평성 논란
식자재마트 논쟁의 불씨를 더 키우는 쟁점이 하나 있다. 바로 ‘대형마트 의무휴무 규제의 형평성 문제’다.
대형마트·SSM은 월 2회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지만, 식자재마트는 이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 규모와 매출이 SSM을 뛰어넘는 식자재마트도 휴무 의무는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식자재마트가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심지어 오전·야간 모두 이용 가능한 ‘편리함의 상징’이지만, 전통시장과 동네마트는 “우리는 쉬는데 너희는 쉬지 않는 것은 불공정”이라며 반발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휴무 여부를 떠나 ‘누가 대형 유통업체인가’를 재정의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즉, 법률상 식자재마트를 ‘대형마트로 볼 것인지’, ‘별개의 업태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한 것이 갈등의 근원이다.
식자재마트는 한국 유통업에서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외식업 소상공인의 생존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자, 동시에 전통시장과 납품업체에 부담을 주는 강력한 플레이어다. 이중적 성격 때문에 불가피하게 논쟁이 커지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행 제도는 식자재마트의 급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 국회, 협회, 소상공인, 납품기업 모두가 함께 참여해 새로운 유통 질서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규제와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외식업·유통업 생태계가 함께 지속 가능한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TOP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