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의전이 곧 신뢰다
상당수의 사람에게 ‘의전(儀典)’이란 용어 자체가 낯설고 설령 이 용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격식, 과도한 형식 등 무언가 불편하고 부정적인 것을 연상하게 된다. 행사장에서 내 자리의 위치는 어떻고, 내 이름은 몇 번째로 불리는지. 이런 것들 말이다. 실제로 이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기관단체, 기업 등의 행사장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외교부에 따르면 의전이란 “자동차의 윤활유와 같이 부분들의 흐름을 잘 연결시켜 주고 전체적인 운행이 조화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의전은 기본적으로 형식에 관한 것이지만, 지나친 형식보다는 흘러가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잘하는 의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 업계에서 의전이 갖는 중요성은 일반 산업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산업이든 사람과 리더십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다단계판매만큼 이것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뛰어난 리더로 인해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단 한 사람의 그릇된 리더, 방만한 경영을 펼치는 경영자들로 인해 잘 나가던 기업도 좌초하고 마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기업의 임직원들과 리더들이 파트너 사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이들을 대하는 태도, 행사의 분위기, 질서, 배려는 곧 기업에 대한 신뢰로 직결되기도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산업에서는 작은 말 한마디, 손동작, 입장 동선 하나까지도 강한 인상을 남기게 마련이다. 기업의 품격, 그것은 의전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 컨벤션, 세미나 등 우리 업계의 주요 활동 대부분은 판매원들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소속감을 강화하는 장이 된다. 이때 사소한 의전 실수를 범하게 되면 행사 전체가 엉망진창인 것처럼 비치기도 하고, 진실된 메시지조차 왜곡되거나 전달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직급 인정식에서 직급 달성자들의 동선이 꼬이거나, 이름을 잘못 호명하게 된다면 영광이 돼야 할 순간이 몹시 불쾌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반대로 의전이 정교하고, 자연스럽고, 품위 있다면 판매원들은 자신이 소중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며, 기업에 대한 자긍심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이 모습을 처음 본 새내기 사업자들에겐 “이 회사에 오래 남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
다단계판매는 전국 팔도에서 십인십색의 사람들로 이뤄진 산업이므로, 작은 서운함이나 오해가 들불 번지듯이 커지기도 한다. 행사장에서 누가 어디에 앉았는지, 책상이 있는지 없는지 또 거기에 마실 물이 있는지 없는지, 누구부터 소개하는지, 어떤 순서로 발표가 이어지는지 등은 아주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서열, 역할, 공헌도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의전을 통해 이를 섬세하게 조율해주면 조직 내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사업자들을 대하는 데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브랜드 측면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의 무대 구성과 연출, 안내 방식, 직원의 태도 등은 모두 참석자에게 제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제품의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의전이 엉성하면 행사 참여자들이 그 제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업계에서 의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해외 임직원, 리더들과 교류할 일이 잦다는 점이다. 국가마다 예절, 문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같은 행동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토종기업이든 외국계기업이든 한국에서 대규모 컨벤션을 열 경우 임직원들이 한두 달가량을 밤낮없이 준비에 매달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얼마 전 글로벌업체의 리더사업자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모 임원의 발언으로 조직 분위기가 크게 흔들렸고 결국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회사를 떠났다고 털어놨다. 회사가 정한 보상플랜에 따라 정당한 방식으로 실적을 쌓고 수당을 받았는데도, 해당 임원이 “리더들이 후원수당을 너무 많이 받아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밤낮없이 사업을 하면서 매출을 끌어올린 리더들을 과도한 수혜자처럼 언급했다는 사실은 리더에 대한 예우를 무너뜨린 행위이고 치명적인 오너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의전은 행사장에서만 필요한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평소 사용하는 언어와 태도 전반에 적용돼야 할 기본적인 원칙이자 상식에 가깝다. 리더를 도외시한 위 업체는 내일 당장 도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최악의 상황에 다다랐다고 한다. 결국 비즈니스란, 그리고 다단계판매산업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식에 입각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그리고 무엇이 먼저고,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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