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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성장의 디딤돌

  • 기사 입력 : 2025-12-19 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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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삶> - 제2장 - 성공

저자 <댄다코리아 김영삼 회장>

05. 시련은 성장의 디딤돌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다. 사람들은 대개 그 시련을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련에 따른 스트레스는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명약이다. 영국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의 위험성을 역설하며 청어와 물메기 이야기를 즐겨 했다고 한다.

영국인은 청어를 밥상 요리 중 최고로 친다. 많은 사람이 싱싱한 청어를 먹고 싶어 했으나 북해에서 잡은 청어는 성질이 급해 런던까지 오는 도중 대다수가 죽었다. 죽거나 얼려서 가져온 청어는 가격이 쌌다.

그런데 같이 조업을 나간 배 중에 늘 살아 있는 청어를 항구까지 가져오는 어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청어잡이에게 몰려들었고 값이 세 배 이상 비쌌어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다른 어부들이 ‘이번엔 운이 좋았겠지’ 했지만, 그 어부는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싱싱하게 살아 있는 청어를 항구까지 가져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다른 어부들은 그에게 비결을 알려달라고 청했다. 과연 그 비결은 무얼까? 어부들의 집요한 설득 끝에 그가 털어놓은 비결은 간단했다. 청어를 잡아둔 배의 수족관 안에 물메기를 같이 넣는 것.

물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느라 바빴던 청어가 스트레스를 받을 틈이 없어 싱싱하게 살아 있는 상태로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아널드 토인비는 그의 책《역사의 연구》에서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황허강이다. 중국 양쯔강은 비옥하고 환경이 좋은 반면, 황허강은 범람이 잦고 기후도 좋지 않다. 그러나 인류는 지속적인 도전과 응전으로 황허강에서 빛나는 문명을 탄생시켰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죽음을 맞이해 돌이나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없다. 죽은 물고기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죽은 새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살아 있는 새는 바람의 역풍을 타고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떨어져 나간 죽은 꽃잎은 바람 따라 흩날리지만 살아 있는 꽃잎은 성장하며 미래의 희망 씨앗을 잉태한다. 결국 스트레스는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스트레스가 따른다. 가령 먹는 행동은 치아나 위장에 스트레스다. 무언가를 보는 것은 눈에 스트레스다. 하지만 보고 듣고 먹고 느끼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기능은 퇴화한다.

생각 역시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쇠의 녹이 쇠에서 나왔어도 그 쇠를 갉아먹듯 생각이 주는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그 스트레스(stress)를 스트렝스(strength)로 바꿀 수는 없을까? 스트레스를 성장의 힘으로 바꾸자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이 생기면 부정적인 면을 먼저 바라본다. 예를 들어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만하길 다행이다’ ‘좀 쉬어갈 시간이 생겨서 좋네’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갑자기 회사에서 퇴직하면 ‘자기계발을 해서 더 나은 회사에 갈 기회가 생겼다’라고, 피치 못해 이혼하면 ‘다시 결혼할 기회가 생겼네’라고 생각하자.

어떤 상황에 놓이면 그림자가 먼저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그 반대 방향에 빛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람들은 대부분 그림자가 주는 슬픔, 좌절, 고통의 껍질에 싸여 웅크리기에 그 반대편의 빛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 빛은 두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 즉 통찰의 눈으로 봐야 보인다.


06. 상처는 성장의 발로(發露)이자
 성공의 심볼
내 몸에는 어릴 적 다쳐서 생긴 상처가 몇 개 있다. 그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첫 번째는 오른쪽 손가락이다. 어릴 때 용돈이 궁했던 나는 약초를 캐서 팔거나 개구리와 뱀을 잡아서 팔았다. 당시에는 그런 것을 사고파는 것이 흔했다. 가장 좋은 용돈벌이 대상은 뱀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뱀을 보면 피해 갔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뱀을 보면 “돈이다!” 하면서 먼저 잡기 위해 앞다투어 달렸다.

한번은 운동회 전날 독사를 한 마리 잡았다.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날 밤 설레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날은 뱀을 팔아 운동회 때 먹을 눈깔사탕, 어묵, 솜사탕을 기대하며 잠을 잤다. 다음 날 일찌감치 일어난 나는 항아리에서 뱀을 꺼내 비닐봉지에 담은 뒤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학교가 있는 면소재지로 갔다.

친구 몇 명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나는 친구들에게 “뱀을 팔아 눈깔사탕, 솜사탕 사줄게” 하고 말하며 아스팔트 길을 걸어갔다. 운동회 날이라 그런지 도로에 학부형과 아이들이 많았다. 이윽고 뱀 가게에 다다른 나는 뱀이 잘 있는지 보려고 가방 지퍼를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독사가 아스팔트에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뿔싸! 비닐봉지가 제대로 묶이지 않은 것이었다. 뱀은 먼저 한 발로 꼬리를 밟고 나머지 발로 몸통을 훑어 머리를 밟은 뒤 목덜미를 잡으면 맨손으로 수백 마리를 잡아도 물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뱀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걸 많은 사람이 쳐다보는 상황이라 어린 마음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 뱀을 놓치면 눈깔사탕과 솜사탕이 모두 날아간다는 생각이 뇌리를 번쩍 스쳤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오른손으로 곧장 독사의 목덜미를 잡았다. 아차차! 독사는 즉각 이빨로 내 오른쪽 검지를 물어버렸다. 따끔한 느낌에도 뱀을 잡아 그대로 달린 나는 뱀을 통에 넣고 뱀 가게 아주머니한테 뱀에게 물린 사정을 이야기했다. 급히 주황색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떠 온 아주머니는 물린 손가락을 잡고 날카로운 칼로 스윽스윽 여러 번 베더니 따뜻한 물에 손가락을 담갔다. 신기하게도 빨간 피와 함께 독사의 노란 빛 독이 기름처럼 둥둥 떠올랐다. 그런 다음 아주머니는 민간요법에 따라 돼지비계를 상처 난 곳에 올리고 고무밴드로 묶어주었다.

그렇게 운동장으로 가서 한창 경기와 응원에 몰두하는데 갑자기 속이 매스꺼웠다. 손을 봤더니 물린 자리가 퍼렇게 붓고 오른팔 전체가 팅팅 부어올랐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결국 보건소를 찾았고 혈청주사를 맞고서야 살아났다. 독사에게 물려 죽을 뻔한 나는 집에 돌아가 엄마한테 쓸데없는 짓 한다고 맞아 죽을 뻔했다. 두 번 죽을 뻔한 셈이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오른쪽 검지가 시큰거린다. 일기예보가 궁금하면 나한테 물어보라. 비교적 정확하다.

그 일로 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방심하지 말자! 그리고 절차대로 하자!

사고는 대부분 방심하는 순간 일어난다. 귀찮거나 급하다고 절차대로 하지 않아도 역시 사고가 난다. 어린 시절의 따끔한 경험 덕에 내게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가끔 혼자 되뇐다. 방심하지 말자! 절차대로 하자! 장거리 운전을 할 때도 상처가 있는 검지를 만지며 그 말을 되뇐다. 독사에게 물린 상처는 지금까지도 내게 삶의 지혜를 주고 있다.

두 번째는 오른쪽 팔뚝에 난 스크래치다. 고3 때 나는 반장을 맡았고 1학기, 2학기 장학금도 탔다. 공부를 대단히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 곧 대학교를 가야 하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형편에 4년제는 사치이니 2년제를 졸업해 빨리 돈을 벌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에 합격한 뒤 어머니에게 “등록금만 내주세요”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선뜻 승낙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난 후 어머니가 나를 부르더니 슬픈 표정으로 도저히 힘들겠다고 했다. 7남매를 홀로 키우다시피 하면서 고생고생한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원망조차 내겐 사치였다.

며칠 뒤 나는 한동안 집에 올 수 없을 것 같아 필요한 옷가지를 가방에 잔뜩 챙겼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 길로 대구에 간 나는 친구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다. 친구들은 대학교에 다녔고 난 막노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막노동을 시작으로 2년간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목수 일을 했다.

한 층에 철근을 감싸는 거푸집을 지으면 시멘트를 부어 양생한다. 양생이 끝나면 벽면부터 천장까지 철거한다. 한번은 천장에서 떨어진 자재가 머리를 내려쳤는데 목이 옆으로 돌아갈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때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면 아마 크게 다쳤을 것이다. 철거한 자재는 다음 층을 공사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린다. 1층에 있던 자재를 2층으로, 2층에 있던 자재를 3층으로 올리는데 보통 베란다 쪽에 서서 받아 올린다. 그냥 서 있기도 힘든 한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하면 숨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쉴 수가 없다. 팀을 짜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자칫 위에서 자재를 놓치면 밑에 있는 사람이 다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늘 긴장해야 하는 악조건이었다.

어느 날 나는 발바닥이 따끔해서 깜짝 놀라 주저앉았는데 알고 보니 대못을 밟은 것이었다. 그 정도로는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목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못이 발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일은 허다하다. 오른쪽 팔뚝에 스크래치를 남긴 그날, 한여름 불볕더위에 사람 키보다 더 큰 합판을 들고 계단을 오르던 중 앞서가던 동료가 합판을 놓치고 말았다. 그 큰 합판이 뒤따라 올라가던 내 얼굴을 덮치려는 순간 나는 오른팔로 그걸 막았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나 상처는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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