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화된 비대면진료, 어떤 변화가 오는가?
<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15년 만에 비대면진료가 법적으로 제도화되면서 우리 의료 환경에도 대규모 변화가 예상된다.
코로나19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던 비대면진료는 시민들의 높은 접근성과 편의성 덕분에 꾸준히 확대되어 왔지만,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어 ‘시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제한적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지난 12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으로 인해 비대면진료는 드디어 정식 제도로 편입됐다.
이번 개정안은 2010년 18대 국회에서 첫 제출된 이후 무려 15년 만에 성사된 것으로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총 9건의 의료법 개정안이 병합 심사된 결과물이다.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은 “비대면진료 상시 허용의 법적 근거 마련부터 플랫폼 관리·감독, 전자처방전 안전 전송 시스템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비대면진료는 대면진료의 보완수단’임을 명시하며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초진은 예외적 상황에서만 허용되며, 그조차도 지역과 처방 범위에 제한을 둔다. 안전성에 대한 의료계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또한 비대면진료의 제공 주체도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설계됐다. 이는 지나친 병원·대형병원 쏠림을 막고 지역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이번 개정안의 특징은 ▲비대면진료 플랫폼 중개업자의 신고·인증제 도입 ▲개인정보 보호 및 의료적 판단 개입 금지 규정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 근거 ▲공공 비대면진료 지원시스템 운영 등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구축 조항’이 대거 포함된 점이다.
이는 코로나19 당시 플랫폼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제기된 ‘무분별한 상업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섬·벽지 주민, 등록장애인, 장기요양 수급자, 감염병 확진자 등 취약계층에게는 약 배송도 허용된다. 하지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약 배달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복지부는 법 시행(공포 후 1년) 전까지 시범사업을 개편해 현장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며, 대상 환자 기준, 처방제한 의약품 등 구체적 기준은 하위 법령으로 정해질 예정이다.
의료 접근성 혁신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대한 찬성 의견은 크게 의료 접근성 제고, 의료 사각지대 해소, 환자 편의성 확대, 의료 시스템 효율성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령층,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의료기관 방문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휠체어나 보호자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이동’ 자체가 치료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에 비대면진료는 실질적인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재진 중심이라는 원칙은 비대면진료의 본래 목적과 맞닿아 있다. 고혈압, 당뇨병, 갑상선 질환처럼 정기적으로 약 처방과 경과 확인이 필요한 환자들은 불필요한 방문 진료 없이 편리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의료기관의 대면 진료 수요를 분산해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다.
코로나19 시기 비대면진료는 감염 확산을 막으면서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비슷한 전염병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제도적으로 상시 전환한 것은 국가의 보건의료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
지역 간 의료 격차 완화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섬이나 벽지 주민에게는 ‘주치의’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대면진료를 통해 도시권의 의사와 연결되면 기본적인 진료와 약 처방을 더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약 배송 허용 대상에 섬이나 벽지 주민이 포함된 것은 의미가 크다.
안전성 미비·과잉진료·의료민영화 우려
반면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가진 위험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의사단체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비대면진료가 장기적으로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화면을 통해 진료하는 만큼 신체 검사나 촉진이 어렵고, 진단 누락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초진의 경우 환자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오진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게 의료계의 대표적 반대 의견이다. 의료법 개정안에서 초진을 제한하고 재진 중심 원칙을 둔 이유 역시 이러한 안전성 논란을 고려한 결과다.
플랫폼 중심의 과잉 또는 중복진료 우려도 제기된다. 코로나19 시기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통해 짧은 진료 후 불필요한 약 처방이 이루어지는 ‘단타 처방’ 문제가 이미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다. 중개 플랫폼이 더 많은 진료·거래를 촉진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과잉진료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번 개정안이 플랫폼에 의료적 판단 개입 금지, 개인정보 남용 금지, 정기점검 의무 등을 부과한 이유도 이 같은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대형 플랫폼에 의한 시장 독점 우려도 제기된다. 비대면진료 시장이 활성화될 경우, 스타트업이나 대형 IT기업이 의료기관과 환자를 연결하는 구조가 강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의료기관은 비용, 홍보, 환자 확보 문제 때문에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장기적으로 특정 플랫폼의 시장 독점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 결과 의료 서비스의 가격, 노출 알고리즘 등이 플랫폼 기업의 손에 좌우될 위험성이 있다.
이로 인해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의료 민영화를 앞당길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 접근 경로가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로 대체될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 때문이다. 비대면진료는 기본적으로 ‘앱 기반 진료’와 ‘디지털 전송’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기업은 ▲환자 정보의 수집·분석 ▲의료기관 노출 ▲진료 연계 ▲약 배달 참여 기업과의 연계 등 핵심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의료 행위는 의사가 하더라도 의료로 접근하는 ‘통로’가 민간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개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 비대면진료 지원시스템 구축, 플랫폼 신고·인증제, 의료광고 사전심의 대상 포함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해두었지만, 플랫폼 시장이 커질 경우 공공이 민간의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앞으로의 과제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분명 한국 의료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조치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 편의를 확대하며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중심의 의료 구조가 형성될 경우 장기적으로 의료 민영화 논란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비대면진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적 논쟁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공공성을 지키고, 시장의 혁신과 의료서비스 개선을 균형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다.
안전성 미비·과잉진료·의료민영화 등의 우려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간 플랫폼에 대한 종속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공공 시스템이 충분히 경쟁력 있게 구축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오진 방지, 적절한 진료 시간 확보, 진료 정보 누락 방지 등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특히, 비대면진료가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원급 중심이라는 제도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 의료기관 지원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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