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제11장(第十一章) 三十輻 共一轂(삼십복 공일곡):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곳으로 모인다. 當其無 有車之用(당기무 유거지용): 그것이 없음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埏埴以爲器(연식이위기):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든다. 當其無 有器之用(당기무 유기지용): 그것의 없음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鑿戶牖以爲室(착호유이위실): 문과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든다. 當其無 有室之用(당기무 유실지용): 그것의 없음에 방의 쓰임이 있다. 故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리): 그러므로 있음의 이로움은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 없음의 쓰임새에 있다.
제11장은 동양 철학의 핵심인 유(有)와 무(無)의 변증법을 가장 명쾌하게 드러내는 장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있음’에만 집착할 때, 노자는 정작 삶과 조직의 모든 ‘쓰임(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없음(無)’에서 비롯된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제시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존재를 채우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비워 구성원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 있습니다. 조직을 번성케 하는 힘은 리더의 능력에 앞서 리더의 비움에 있는 것이지요. 노자는 수레바퀴의 비유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수레바퀴라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진리입니다. 서른 개의 바퀴살(三十輻)이 아무리 견고하고 아름답더라도, 그 바퀴살들을 연결하는 바퀴통(轂, 허브)의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있어야만 축(軸)이 관통하여 수레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약 바퀴통의 중심이 꽉 막혀 있다면, 수레는 단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고철 덩어리거나 나무토막에 불과할 것입니다. 리더는 바로 이 바퀴통의 비어 있는 중심과 같습니다. 리더가 중심에 서서 모든 구성원(바퀴살)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시로 그 중심을 꽉 채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권위와 욕심, 독선적인 확신을 비워냄으로써 다른 이들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수용하고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꽉 찬 리더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 성공 공식으로 조직의 모든 틈을 막아버립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외부의 변화를 수용할 여백이 없기에, 조직은 경직되고 변화하는 시대에 멈춰 서게 됩니다. 비어 있는 리더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음을 인정하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심리적 공간과, 권한을 위임할 공간을 창출합니다. 이 비움이야말로 조직에 동력을 공급하고 조직이 움직이게 하는 핵심입니다. 수레가 달리기 위해선 바퀴통의 공간이 필요하듯, 조직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리더의 경청과 구성원들의 주장을 수용할 공간이 필수적입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움직일 수 있는 유연한 힘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 Chat.gpt로 생성된 이미지
노자는 다시 그릇의 비유를 듭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 것은 인간 생활의 이로움(利)을 만들어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릇이 그릇으로 인정받고 널리 쓰이는 것은 그 안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비어 있지 않다면 물이나 곡식, 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을 수 없습니다. 담고, 싣고, 포용해야 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면 반드시 그 속이 비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조직을 그릇이라고 생각해봅시다. 리더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 조직이 실질적인 기능을 하려면 반드시 비어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입니다. 많은 리더가 조직을 자신의 업적으로 가득 채우려 합니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 자신이 세운 규칙, 자신이 주도한 프로젝트로만 조직을 가득 메우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릇을 진흙으로 꽉 채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언가를 담을 수 없는 그릇은 더 이상 그릇이 아니라 진흙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릇의 비어 있는 공간은 아직 담기지 않은 무한한 잠재력을 상징합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빈 시간, 빈 역할, 빈 아이디어 공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성원들이 외부의 새로운 기회나 위기를 담아낼 수 있는 여유와 유연성을 갖게 됩니다. 조직이 너무 꽉 차 있으면(과부하, 비효율적인 회의, 마이크로 매니징), 변화가 닥쳤을 때 대처할 여력이 전혀 없습니다. 리더의 머릿속이 오로지 자신의 주장과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이미 다른 이의 고통, 의견, 비전을 담아낼 수 없는 꽉 찬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스스로를 비워내고 들을 줄 압니다. 벽을 쌓아 방(室)이라는 형태(있음)를 만드는 것은 이로운 일이지만, 사람이 그 안에서 생활하며 쉴 수 있는 쓰임이 생기는 것은 오직 문과 창문(戶牖)을 뚫어 ‘없음’을 만들어냈을 때입니다. 문이 없으면 드나들 수 없고, 창문이 없으면 빛과 공기가 통하지 않아 그 방은 감옥이나 창고에 불과합니다. 이는 리더가 만들어야 할 조직의 소통 구조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리더가 조직을 구축하고 질서를 세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쓰임을 갖기 위해서는, 리더가 조직 내부에 끊임없이 소통의 문과 투명성의 창을 뚫어주어야 합니다. 문과 창은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이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정보가 순환하고, 피드백이 오가며, 빛과 공기가 유입됩니다. 리더가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고, 정보의 창을 막아버리면, 조직은 겉만 번지르르한 밀실이 되어 구성원들은 질식하고 고립됩니다. 훌륭한 리더는 정보를 독점하지 않습니다. 빈 공간을 만들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개진하게 합니다. 이 투명한 여백이 조직에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모든 일정이 빡빡하게 채워진 조직은 문과 창이 없는 방과 같습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쉼과 사색의 여백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의성이 발현되고, 고차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방의 핵심적인 ‘쓰임’입니다. 있음(有)은 이로움(利)이 되지만, 없음(無)은 쓰임(用)이 됩니다. 여기서 ‘있음(有)’은 형태, 물질, 지식, 권위, 시스템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분명 편리함(利)을 줍니다. 수레의 바퀴살, 그릇의 흙, 방의 벽은 없으면 안 되는 이로움입니다. 하지만 노자가 진정으로 강조하는 것은 없음(無)의 가치입니다. 이 무(無)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 작용을 일으키는 공간, 잠재력을 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시스템(有)을 구축하는 것은 이롭지만, 그 시스템이 진정으로 쓰임(用)을 갖게 하려면, 리더는 다음과 같은 ‘무(無)’를 실현해야 합니다. 무위(無爲): 억지로 하지 않음, 구성원의 자율성을 침범하지 않음. 무지(無知): 아는 체하지 않음, 언제나 경청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음. 무욕(無欲): 사적인 욕심으로 조직을 채우지 않음, 오직 공적인 가치만을 지향함. 리더가 자신의 ‘있음’을 자랑하기 시작할 때, 그 조직은 경직되고 망가집니다. 현명한 리더는 자신의 ‘없음’을 끊임없이 창조합니다. 그는 구성원들이 그 빈 공간을 메우며 스스로 성장하고, 조직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담아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궁극적으로 도(道)를 체득한 지도자는 자신이 한 일도 ‘내가 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퀴통의 빈 공간이 수레의 공로를 독차지하지 않듯, 그는 배경에 머물며 조직 전체가 움직이는 동력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있음’의 리더십을 넘어선 ‘없음’의 리더십, 즉 비어 있음으로써 가장 강력한 쓰임새를 창출하는 현덕(玄德)의 리더십입니다. 스스로를 비울 때,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 조직의 유용성은 리더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비워두고 있느냐(無)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