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성장의 발로(發露)이자 성공의 심볼
<구름 위의 삶> - 제2장 - 성공
저자 <댄다코리아 김영삼 회장>
06. 상처는 성장의 발로(發露)이자 성공의 심볼
지금도 오른팔에 상처가 선명히 남아 있다. 그 상처는 가난 탓에 20대 초반에 남들처럼 대학에 다니지 못하고 막노동을 해야 했던 청년의 아픈 기록이자 반드시 성공하고 말리라는 외침의 흔적이다.세 번째는 자동차 도색 가게를 운영할 때 생긴 상처다. 내가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 한 일은 순대, 호떡, 오다리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우선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작은 푸드 트럭을 샀다. 그때 이곳저곳을 돌며 장사했는데 그래도 ‘서울’ 하면 강남이라 생각해 사전답사를 해보니 강남역 7번 출구 쪽은 노점을 허용했다.
그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오다리 몇 봉이 팔렸다. 그런데 곧바로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주변 노점 상인들이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절대 장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강제로 문을 내리려 했고 자기 가게에 손님이 오면 갔다가 없으면 다시 와서 장사를 방해했다. 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사정했다. 계속해서 장사 좀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똑같은 품목이 없으니 좀 하게 해주세요.” 두세 시간이 넘도록 끈질기게 사정해도 그들은 완강했다. 결국 내가 단념하고 “알겠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 가서 하겠습니다”라고 미소 지으며 인사하자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참 이상한 청년이네. 다른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하면 큰소리치고, 멱살 잡고, 싸움을 하다가 가는데. 대단한 청년이네.”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은 나는 이후 관악구 신림동, 영등포 목동 시장 통로로 옮겨 다니며 장사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 뒤 자동차 도색 가게를 차렸다. 드디어 사업다운 사업을 시작한 셈이었다. 어엿하게 내 가게를 얻어 떳떳하게 장사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업용 드라이어로 작업을 하는 중에 사고가 났다. 공업용 드라이기는 어지간한 납과 쇠도 녹일 정도로 온도가 높다. 그날 작은 쇳조각 하나가 드라이기에 녹아 내 손등에 떨어졌는데 그것이 치~익 하면서 살을 파고들어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털어내고 싶지 않았다. 살 타는 냄새와 연기가 콧속으로 들어가고 쇠가 계속해서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게 눈에 보였다. 그때 나는 ‘동맥까지 타고 내려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지켜봤다. 무슨 심산인지 그걸 지켜보고 싶었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느낌 그대로 나는 굳게 다짐했다. ‘서울에서 난 반드시 살아남는다. 아니, 난 반드시 성공한다.’ 그만큼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피하지 않고 맞서서 이겨낼 결심이었다. 지금도 내 왼쪽 손목에 그때 얻은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가끔 담배빵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영광의 상처라고 대답한다.
마지막 상처는 배 가운데에 있다. 도색 사업을 시작한 초기, 업계 최초로 24시간제를 도입해서 그런지 꽤 잘나갔다. 사업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자 나는 신정동에 가게를 하나 더 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하루에 잠을 3~4시간만 자는 날도 부지기수였고, 심지어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어느 날 작업이 새벽 3시까지 이어졌는데, 갑자기 송곳으로 배를 찌르는 듯한 심한 복통이 느껴지면서 나는 데굴데굴 굴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진정되지 않았고 결국 119의 도움을 받아 이대목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도 통증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진통제를 복용하고 진정되길 기다리며 몇 시간이 흘렀다. 야속하게도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혹시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고통을 겪겠구나’ 싶었다. 결국 의사는 하얀 액체를 먹게 한 뒤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다.
심한 복통의 원인은 위천공이었다. 위에 구멍이 나서 이물질이 다 새어 나온 것이었다. 나는 급히 봉합 수술에 들어갔고 며칠 후 퇴원했다. 그 당시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전혀 피우지 않았다. 그런데 위천공이라니?! 단지 스트레스에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신경성 위염이 있었고 그것이 위천공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지금도 내 배 가운데에는 그 상처가 선명히 남아 있다. 그것은 잠을 설치거나 밤을 새우며 도전하던 시절에 얻은 뜨거운 열정의 훈장이다.
남들은 상처를 없애고 싶어 하지만 나는 내 몸 곳곳에 난 상처가 자랑스럽다. 그만큼 그 상처는 내가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서게 해준 밑바탕이다.
어느 높은 산에 독수리 우두머리가 있었다. 하루는 젊은 독수리가 우두머리 독수리에게 어떻게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두머리 독수리는 날개를 펼쳐 가슴을 보여줬는데 그곳은 상처로 가득했다. 우두머리 독수리가 말했다. “이 상처들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해주었다.” 나도 그 독수리와 같다. 나는 내 상처를 지우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는 상처를 하나하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내 상처는 성장의 발로이자 성공의 심볼이다.
07. 고(苦)와 락(樂)은 순환한다
삶은 괴로움(苦)과 즐거움(樂)의 순환이다. 크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자. 크고 넓은 강일수록 소리 없이 흐른다. 너무 조급해하지도 말자.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서로 열애 중인 처녀와 총각이 있었다. 솔로인 둘은 결혼만 하면 외롭지도 않고 마냥 행복할 것 같았다. 연애할 때는 서로 공통점만 눈에 들어왔다.
“짜장면이 좋아, 짬뽕이 좋아?” “짜장면.” “어머, 나랑 똑같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바다.” “어머, 그것도 나랑 똑같네.”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여름.” “왜 이렇게 나랑 잘 맞아!”
둘은 결혼했다. 이후 어떤 일이 생길까?
결혼하고 한 공간에서 같이 살면 서로의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갈등이 일어난다. 치약을 아내는 뒤에서 짜고 남편은 가운데서 짠다. 감자를 삶아 아내는 소금에 찍어 먹고 남편은 설탕에 찍어 먹는다. 빨래와 청소를 아내는 매일 깔끔하게 하는데, 남편은 실속 있게 일주일에 한 번 한다.
마냥 행복할 것 같던 결혼 생활에 간혹 전쟁이 벌어진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그 부부는 고민한다. 둘만 있어서 자주 싸우는 건가? 아기가 생기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들은 행복을 위해 간절히 원한 끝에 아기를 낳는다. 그런데 거기서 또 다른 불행이 싹튼다.
아기를 키우느라 잠도, 개인 생활도 사라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 안됐지만 학교 뒤치다꺼리가 더 힘들다. 아이가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 막상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또 걱정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 역시나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 아이가 결혼하면 행복하겠지…. 끝이 없다.
인생의 고와 락은 순환한다. 고와 락은 한 뿌리다. 고는 락의 원인이고 락은 고의 원인이다. 그러니 어떤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우리는 망원경과 돋보기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삶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뜻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성공한 순간뿐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지금도 내 소중한 삶이다.
자동차의 전면 유리는 크고 백미러는 작다. 이는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자. 용기와 희망을 안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 지금, 여기에 머물러 현재를 살자. 오늘을 불투명한 내일 일을 걱정하는 데 사용하지 말자. 우리가 할 일은 선명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발전하고 성장하는 나를 메타인지, 즉 제3자 관점에서 내려다보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러면 즐겁고 신나는 하루가 펼쳐진다. 삶은 ‘숨은 그림’ 찾기다. 내 주변에는 기쁨과 설렘, 행복이라는 보석이 널려 있다. 다만 그것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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