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신년(新年)인가, 신념(信念)의 지옥인가
2026년 붉은 말의 해가 밝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아직 2025년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쿠팡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갑론을박이 떠들썩하고, 정치권은 정리되지 않은 묵은 과제들로 시끄럽다. 정치 칼럼이 아니니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겠지만, 단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신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뜨거운 감자인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압송 소식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월 3일, 미국은 ‘절대 결의 작전(Operation Absolute Resolve)’이라는 비장한 이름 아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전격 체포했다.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의 작전 수행 능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작전 개시 단 3분 만에 대통령궁 심장부로 진격했고, 불과 3시간 만에 단잠에 빠져 있던 마두로를 미국행 비행기에 태웠다. 베네수엘라가 자랑하던 방공망과 호위 부대는 영화 <아바타 3>의 상영시간보다 짧은 시간 안에 무력화됐다. 베네수엘라 측 사상자는 80명에 육박했으나, 미군 측 피해는 부상자 2명에 그쳤다는 소식은 현대전의 비대칭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베네수엘라 국경 밖, 전 세계의 모니터 앞에서 터져 나왔다. 이 군사 작전을 두고 지구촌 곳곳에서, 정확히는 국가의 공식 논평보다 개개인들의 격렬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됐다. 한편에서는 “독재의 종식을 축하한다”, “드디어 베네수엘라 국민이 해방됐다”며 쾌재를 부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적 횡포다”라며 미국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이 사건의 진정한 팩트는 하나다.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타국 정상을 체포했다’는 것. 그러나 이 하나의 사실은 개개인의 ‘신념’이라는 굳은 믿음을 통과하며 전혀 다른 두 개의 반응으로 쪼개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오늘날의 신념은 의미가 변질됐다. 과거에는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가치관을 의미했지만, 2026년 현재에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맞다’가 되어버렸다. 과거와 다르게 스마트폰, 인터넷 등에서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정보의 편식 속에 갇혀, 나의 생각만이 정답이고, 반대편은 악(惡)이라 규정하는 아집이 ‘신념’이라는 포장지를 쓰고 활개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신념’의 폐해는 정치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업계 주변을 기웃거리는 불법 코인 조직이나 무등록 피라미드업체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시스템은 폰지 사기에 가깝다.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와 전문가들의 경고, 심지어 수사기관의 구속 소식이 들려와도 그 안에 빠져버린 투자자들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외부의 비판을 “우리의 성공을 시기하는 세력의 음모”라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치부한다. 또 “우리 코인은 100배 간다”는 모집책의 허황된 약속을 굳게 믿고 지난 세월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전부 투자하곤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불법 업체의 모집책들이 이러한 ‘맹신’을 의도적으로 조장한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주입하여 합리적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성공하고 싶다면 의심하지 말고 따라와라”, “믿고 따라온다면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라는 말 등이다. 이런 식의 가스라이팅은 건전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파괴하고 투자자들을 사이비 신도로 만들기 십상이다.
다단계판매업계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쉽다.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인 다단계판매는 회사의 비전, 제품의 우수성, 그리고 나를 이끌어주는 리더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성립되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이 건강해야 할 신뢰가 맹목적인 ‘신념’으로 변질될 때, 그곳은 더 이상 합리적인 비즈니스의 장이 아닌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 없는 광신의 도가니가 된다.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이 만병통치약이라 믿어 병원 치료를 거부하게 만드는 신념, 빚을 내서라도 직급을 유지하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도박과도 같은 신념들이 바로 그 예시다.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말은 역동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물이다. 그러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는 기수가 이끄는 대로, 혹은 자신이 보고 있는 좁은 시야 속의 길로만 달릴 수밖에 없다. 2026년의 우리가 그런 경주마 신세는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진정한 신념은 검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끊임없이 팩트와 대조하며 수정해 나가는 유연함이야말로 진짜 ‘신념’이다. 무조건적인 믿음은 신념이 아닌 게으름을 대변한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판단하기를 남에게 맡겨버린 지적 태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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