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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데이터를 쌓아야 하는 이유

  • 두영준 기자
  • 기사 입력 : 2026-01-23 08: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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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시즌을 앞두고, 화훼 농가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인건비,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인해 꽃다발의 값이 오르면서 가격 부담으로 이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한 번 쓴 꽃다발을 되파는 게시물까지 올라오고 있다. 졸업식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 역시 ‘어차피 한 번 쓰고 말 건데’라면서 꽃을 중고로 구매하고 있다고. 얼마 전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는 수상자에게 생화 꽃다발 대신 레고 장난감으로 만든 꽃다발을 건네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불경기 탓일까? 물론 불경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소비자들이 꽃을 사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가격에 그 효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측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졸업식이나 시상식 같은 공식 석상에서 생화 꽃다발을 주는 것은 축하의 뜻도 있지만, 그 사람의 체면을 고려한 일종의 사회적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또, 과거에는 새것을 정가에 주고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나 레고 꽃다발이 선택되는 이유는 새것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나 만족도 등을 세밀히 따져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단계판매산업에도 비춰 볼 수 있다. 다단계판매의 기본적인 원리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최단거리로 연결한다는 데 있다. 기업은 유통과 마케팅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시중의 채널보다 더 싸게 판매해도 이익이 남고 판매원은 절약한 마케팅 비용을 받음으로써 이익이 된다. 이것이 가장 원론적인 다단계판매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원리를 실행하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TV 광고 등의 비용을 늘리면서 근본 원리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이렇게 되면 동일한 성분,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 하더라도, 다른 유통채널보다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예전에는 조직의 소속감, 성공이라는 동기부여,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바탕으로 이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겠지만 가치소비가 보편화되고 있는 지금 이것이 과연 주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왜 이 제품이 이 가격이어야 하는가”라는 소비자들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할 것도 같다. 

다단계판매산업에 큰 관심이 없는 소비자들이 봤을 때 업계의 제품은 단순히 비싸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제품의 값이 왜 이렇게 책정됐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암웨이가 ‘씨앗에서 완제품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철저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강조하고, 애터미가 ‘절대품질 절대가격’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데이터 축적이다. 과거에는 반품만 잘해줘도 소비자들의 불만이 없었고 높은 만족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왜 반품이 발생했는지, 어떤 제품에서 불만이 나오는지, 제품 구매 단계에서 어느 것이 소비자의 기대에 어긋나는지 등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가치소비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는 감성이나 관계보다 근거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쌓아온 데이터는 다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일으킬 수 있는 근거이자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지난 12월 30일 디지털 시장에서 데이터를 둘러싼 경쟁·소비자 이슈를 검토한 ‘데이터와 경쟁(Data and Competition)’ 정책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를 통해 공정위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오늘날, 데이터는 산업 전반에서 핵심적인 투입요소이자 경쟁의 주요 매개변수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기업의 데이터 수집·이용 방식이 시장의 경쟁과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가 사업자 간 혹은 사업자-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상품·서비스 간 비교를 용이하게 하여 시장 투명성을 강화하고 경쟁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데이터는 상품·서비스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상품·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활용되는 등 혁신의 기반”이라고도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제품이 어떤 이유로 선택받았고, 어떤 점에서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격이 왜 이렇게 책정됐는지,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 가치소비의 시대에 믿음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이 남긴 데이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영준 기자 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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