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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신약개발 어디까지 왔나?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6-02-06 08: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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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인공지능(AI)이 신약개발의 전 과정을 재편하고 있다. 후보물질 탐색에만 수년이 걸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AI가 수십억 개의 화합물을 가상 실험으로 분석해 유망 후보를 단기간에 도출하고 독성, 효능까지 예측하는 시대가 열렸다. 전통적인 신약개발은 평균 10~15년, 비용은 1~2조 원 이상이 소요되고 성공 확률은 1만 개 후보 중 1개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돌파할 대안으로 AI 신약개발이 부상하며, 글로벌 제약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AI 기반 신약개발 시장은 연평균 30%에 가까운 고성장을 이어가며 2029년 약 7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희귀질환, 맞춤의료,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는 표준화된 공정보다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 경쟁력이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AI는 더 이상 연구 보조 도구에 머물지 않고, 신약 후보 발굴부터 임상 설계, 규제 대응까지 전 주기 혁신의 중심 기술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10년의 벽을 허무는 기술 혁신
AI 신약개발의 가장 큰 강점은 시간과 비용의 획기적 절감이다. 기존 방식은 표적 단백질을 규명한 뒤 수많은 화합물을 합성·실험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했다. 반면 AI는 유전체, 단백질 구조, 화합물 라이브러리, 임상 데이터 등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약물-표적 결합 가능성, 독성 위험, 약효 지속성 등을 사전에 예측한다. 이를 통해 실험 단계로 넘어가는 후보물질 수를 대폭 줄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생성형 AI와 딥러닝 모델은 ‘신약 설계’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신규 화합물 구조를 생성해 타깃 단백질에 최적화된 후보를 제시하거나, 항체 서열을 자동 설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인실리코(in silico) 실험이 결합되면서, 과거에는 필수였던 일부 세포·동물실험 단계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AI 신약개발 기업들은 신약 후보 발굴 기간을 수개월 단위로 단축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기업은 20~40일 내 소분자 후보를 도출하고, 1년 이내 임상 진입 단계까지 도달한 사례를 공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AI가 단순한 ‘속도 개선 도구’를 넘어 신약개발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로 평가받는 이유다.

글로벌 주요국들은 AI 신약개발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규제, 인프라, 데이터 정책을 동시에 정비하고 있다. 미국은 FDA를 중심으로 AI 기반 의약품 심사·평가 파일럿을 운영하며, 생성형 AI를 실제 규제 의사결정 과정에 적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특히 FDA는 ‘AI 지원 과학적 심사 프로젝트’를 통해 내부 데이터 플랫폼과 연동된 공통 AI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의약품과 의료기기 전주기에 걸친 AI 활용 원칙을 정립 중이다. 이는 AI 모델을 단순 참고 자료가 아니라, 공식 심사 자료로 인정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의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 역시 AI 신약개발을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전환 전략 핵심 요소로 포함하며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제약산업 디지털·지능형 전환 계획(2025~2030)’을 통해 AI 기반 신약개발을 우선순위 과제로 지정하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임상시험 효율화, 바이오뱅크 구축, 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정비 등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최근 중국 제약기업들은 다국적 제약사와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며, AI 기반 후보물질 발굴 역량을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고 있다.

유럽은 세계 최초로 AI 규제법(AI Act)을 도입하며, 의료·의약 분야 AI 시스템에 대해 고위험군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의약품 규제에서의 데이터 및 AI 활용 전략’을 발표하고, AI 모델의 투명성, 신뢰성, 재현성 확보를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AI 활용 확대와 동시에 안전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이중 전략으로, 향후 글로벌 규제 표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가능성과 한계 공존하는 국내 AI 신약개발
국내에서도 AI 신약개발에 대한 투자와 정책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AI·바이오 융합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국가 차원의 바이오 전략과 연구개발(R&D) 과제에 AI 신약개발을 포함시켰다. 주요 제약사와 바이오벤처들은 자체 AI 플랫폼 구축, 글로벌 AI 기업과의 협업, 데이터 기반 후보물질 발굴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선도국과 비교할 때 국내 AI 신약개발 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논문 수, 특허 출원, 글로벌 라이선스 성과 등 양적·질적 지표에서 격차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임상 단계까지 진입한 AI 기반 파이프라인 사례는 제한적이다. 이는 단순 기술 역량뿐 아니라 데이터 접근성, 규제 수용성, 임상 인프라, 투자 구조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AI 신약개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임상·유전체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제도 개선 ▲AI 모델 신뢰성·재현성 평가 기준 마련 ▲인실리코 데이터의 규제 인정 범위 확대 ▲바이오-AI 융합 인재 양성 체계 구축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식약처 등 규제기관이 AI 기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승인 절차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산업 활성화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AI 신약개발의 확산과 함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은 ‘신뢰성’이다. AI 모델이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고, 어떤 기준으로 후보물질을 추천했는지, 결과가 얼마나 재현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 확보 없이는 규제기관과 의료현장의 수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 등 주요 규제당국은 AI 모델의 개발, 검증, 운영 전반에 대한 ‘우수 머신러닝 관리기준(GMLP)’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인실리코 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인정 기준은 중요한 쟁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규제 체계는 동물실험(in vivo)과 세포실험(in vitro) 데이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AI 기반 시뮬레이션 결과는 보조 자료 수준으로만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AI 모델의 정확성과 재현성이 충분히 입증될 경우 일부 비임상 단계에서 인실리코 데이터가 실험을 대체하거나 축소하는 방향으로 규제 패러다임이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AI 신약개발의 성패는 알고리즘 성능보다 규제·윤리·데이터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투명한 데이터 활용,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성 관리, 책임 소재 명확화 등 제도적 기반이 함께 구축될 때, AI는 비로소 신약개발의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AI 신약개발이 제약산업에 미치는 구조적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후보물질 발굴, 독성 예측, 임상 설계, 약물 재창출 등 전 단계에서 AI 활용이 일상화되면서, 신약개발의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혁신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대형 제약사뿐 아니라, 스타트업과 학계 연구팀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변화로 해석된다. 특히 희귀질환, 개인 맞춤형 치료, 난치성 질환 분야에서 AI 기반 접근법이 실질적인 치료 옵션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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