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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냉장고를 비워야 할 시간

  • 유승우 기자
  • 기사 입력 : 2026-02-13 08: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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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냉동실 깊숙한 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봉지’들이 살고 있다.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거라 믿으며 넣어둔 식재료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들은 식재료가 아닌 짐이 된다. 공간만 차지할 뿐 아니라, 정작 새로 산 신선한 식재료를 넣을 자리를 뺏어버린다. 아깝다는 미련에 버리지 못한 낡은 것들이 냉장고 전체의 선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는 셈이다. 지금 우리 네트워크 마케팅업계의 모습이 이 ‘정리가 안 된 냉장고’와 무섭도록 닮아 있다.

업계의 보상플랜과 영업 방식은 한때 성공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원칙은 수많은 성공 신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원칙이 만들어진 지 벌써 수십 년이다. 강산이 몇 번 변하는 동안 세상은 초연결·초개인화 시대를 넘어,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상을 설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소비자들은 이제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물건을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AI 비서가 추천하는 최적의 가성비와 가심비 제품을 구매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완벽히 붕괴되었고, 과거의 필살기였던 지인 판매나 대면 설득이라는 전통적인 무기는 그 날카로움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냉동실 안에는 여전히 10년, 20년 전의 유통기한 지난 방식들이 꽁꽁 얼어 있다. 기존 직급자의 수익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설계된 복잡한 점수 체계, 신규 유입보다는 기존 조직의 수성과 무리한 재구매 압박에 특화된 보상 구조, 그리고 제품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인생 역전’이라는 철 지난 비전만을 무한 반복하는 뻔하디뻔한 교육 방식들이다. 이는 마치 자율주행 전기차가 도로를 누비는 시대에, 기름때 묻은 수동 변속기 매뉴얼을 들이밀며 이것이 운전의 정석이라고 우기는 꼴이다.

특히 AI 시대의 도래는 소비자의 성향과 트렌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지금의 소비자, 특히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MZ세대와 그 뒤를 잇는 알파 세대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생존 본능처럼 여긴다. 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복잡한 구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누군가의 일방적인 훈계나 설득에 귀를 닫는다. AI가 최저가를 찾아주고 성분을 1초 만에 분석해 주는 세상에서, “나를 믿고 일단 써봐라” 혹은 “일단 사람부터 모아라”라는 식의 감성 호소형 마케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들에게 업계의 낡은 보상 체계는 합리적인 비즈니스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소득자를 지키기 위한 장벽처럼 느낄 수 있다.

더욱 뼈아픈 점은 이러한 낡은 방식이 신규 인재의 진입을 막는 거대한 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플랫폼 비즈니스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현재 네트워크 마케팅업계의 시스템은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수동으로 명단을 작성하고, 카페에서 몇 시간씩 대면 미팅을 하며, 비슷한 내용의 비전을 전파하는 방식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쉽게 노출되는 그들의 생활과는 맞지 않는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야 할 냉장고 자리를 낡은 방식과 문화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새로운 에너지가 공급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피하는 것만이 아닌, 그 파도 위에 올라타야 한다. AI는 이미 마케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필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개인화된 메시지를 초 단위로 전달한다. 이런 시대에 사람이 직접 찾아가 마음을 얻는 감성적인 마케팅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려면, 그 방식 또한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한 전략으로 갖춰져야 한다.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전문적인 일상생활 속 데이터 분석가이자 해석자가 되어야 하며, 기업의 보상 체계 또한 이러한 디지털 환경에 맞게 훨씬 직관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재설계되어야 한다.

죽어가는 냉장고를 살리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잠시 전원을 끄고, 내용물을 모두 꺼내 유통기한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감한 ‘대청소’가 필요하다. 아깝다는 생각에, 혹은 변화가 두렵다는 이유로 상한 음식을 다시 냉동실 구석에 밀어 넣어두는 실수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의 수입이 조금 줄어들까 무서워 낡은 보상 체계와 교육 커리큘럼을 붙잡고 있는 것은, 냉장고 안의 모든 음식을 썩게 만들고 결국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업의 본질 자체를 고장 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 업계의 구조는 AI가 지배하는 지금의 시장 온도에 적합한가? 우리의 영업 방식은 2026년의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신선한 제안인가? 하고 말이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래라는 이름의 봄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냉장고의 문을 열고 환기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의 기회를 채울 수 없고 버리지 않으면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넘어서 나아갈 수 없다. 냉장고 깊숙한 곳, 우리가 성공의 훈장이라 믿으며 애써 외면해온 그 ‘검은 봉지’부터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던져야 할 때다. 그것이 AI라는 새롭고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비즈니스가 뒤처지지 않고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유승우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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