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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는 왜 약가 인하에 반발하나?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6-02-13 08: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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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지난 1월 20일 개최된 약가제도 개편 대응 연석회의


정부가 지난해 11월 말 기습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이 국내 제약산업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개편안의 핵심은 제네릭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 이하로 대폭 인하하고,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위험분담제(RSA)를 약가유연계약제로 개편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제약산업의 혁신 유인을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제약업계는 “산업 기반을 흔드는 구조적 충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번 개편이 연간 최대 3조 6,000억 원 규모의 매출 손실을 초래하고, 특히 중소·중견 제약사의 경우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재정 효율화 논리와 산업계의 생존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번 약가 개편 논쟁의 쟁점을 짚어본다.


정부 “건보 재정 절감·신약 접근성 확대”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제도 개편의 1차적 목표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약품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을 추가로 인하해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2012년 약가 개편 이후 최초 등재가 53.55%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다수 제네릭 제품에 대해 “이미 충분한 시장 경쟁이 형성됐다”는 판단 아래 가격 인하 여력이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신약 도입 장벽 완화를 위해 기존 위험분담제(RSA)를 약가유연계약제로 개편하고, 성과 기반 지불 방식 등 다양한 계약 구조를 도입해 고가 신약의 건강보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즉, 제네릭 약가는 낮추고 혁신 신약에는 보다 유연한 보상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재정 효율성과 혁신 유인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이 정책 설계의 기본 골자다.

정부 측은 “제네릭 가격 인하는 국제 비교상 여전히 높은 국내 약가 구조를 정상화하는 조치이며, 신약 접근성 확대와 재정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제약기업이 단순 복제약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R&D 중심의 혁신 모델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구조개혁적 의미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업계는 이번 개편이 단순한 가격 조정 수준을 넘어, 제약산업의 수익 구조와 투자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 특성상 제네릭 매출이 R&D 재원을 떠받치는 핵심 축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급격한 약가 인하는 산업 전반에 연쇄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연간 최대 3조 6,000억 손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최근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네릭 약가를 40% 수준으로 인하할 경우 응답 기업 59곳의 연간 매출 손실액만 1조 2,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됐다. 이를 전체 산업 규모로 환산하면 연간 피해액이 최대 3조 6,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협회의 분석이다. 기업당 평균 매출 손실액은 233억 원 수준으로, 중소·중견 기업일수록 손실 비중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업이익 감소 폭이 심각하다. 응답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영업이익이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으며, 중견기업의 경우 감소율이 55%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넘어 기업 존속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매출 감소는 일정 부분 감내할 수 있지만, 이익이 반토막 나는 구조에서는 연구개발 투자와 설비 확충, 고용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토로한다.

또 다른 문제는 충격이 대형사보다 중소·중견 제약사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대형 제약사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나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을 통해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지만, 국내 제네릭 중심 구조에 의존해온 중소·중견 기업은 약가 인하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업계 설문에서는 중소기업의 매출 손실률이 10%를 넘는 반면, 대형기업은 4%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업계는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국내 제조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생산 품목을 대폭 축소할 경우, 특정 의약품의 공급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제약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약가 인하가 연구개발(R&D) 투자와 설비 확충, 고용 안정성에 미칠 파급 효과다. 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은 약가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연구개발비를 평균 25% 이상 줄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설비투자 역시 평균 30% 이상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설비투자 감소율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나타나, 생산 인프라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용 측면에서도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약가 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전체 인력의 약 9%에 해당하는 인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을 넘어, 제약산업 전반의 고용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특히 GMP 전문 인력 등 숙련 인력이 이탈할 경우, 국내 의약품 생산 역량과 품질 관리 체계에도 장기적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정 절감 수단 넘어 산업 정책으로 접근해야
제약업계는 약가 인하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이번 개편안이 산업 현실과 시장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재정 절감’ 논리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업계는 약가 정책이 단순한 비용 통제 수단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혁신 역량을 좌우하는 핵심 정책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제네릭 매출이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재원을 뒷받침하는 구조에서, 급격한 약가 인하는 신약 개발 투자 여력을 직접적으로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정부가 제시한 ‘혁신 신약 유인 강화’라는 목표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R&D 축소와 사업 위축이라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네릭 약가를 깎아 신약을 장려하겠다는 정책 논리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국내 산업 구조에서는 오히려 혁신 역량의 기반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업계는 ▲단계적·점진적 약가 조정 ▲중소·중견 제약사에 대한 완충 장치 마련 ▲R&D 투자와 고용 유지에 대한 실질적 인센티브 제공 ▲산업계와의 충분한 사전 협의 및 영향 분석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일괄적·급격한 인하가 아니라, 품목 특성과 기업 규모, 시장 경쟁 상황 등을 반영한 차등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역시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산업계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재정 건전성과 제약산업 구조 혁신이라는 큰 방향성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향후 약가제도 개편안이 국회 및 관련 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조정·보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재정 효율성’과 ‘산업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이다. 단기적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와 장기적 제약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목표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만 무게를 둘 경우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업계는 “약가 정책은 비용 통제 수단이 아니라 산업 전략의 일부로 설계돼야 한다”며 정부가 보다 정교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 접근을 통해 산업과 국민 모두가 수용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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