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사설> 노인과 다단계

  • 기사 입력 : 2026-03-06 08:46:22
  • x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홀로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청새치와 대결한다.  

요샛말로 독거노인인 산티아고는 사회로부터도 공동체로부터도 고립돼 누구와도 정서적 연결이 없는 상태다. 바다에서도 그는 늘 혼자 싸우지만 완전히 고립된 존재는 아니다. 그를 현실 세계에 붙들어 두는 끈이기도 한 소년 마놀린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늙어가면서 사회로부터 멀어지지만, 단 한 사람과의 관계만으로도 다시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초고령 현실을 바라보면 이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기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민족답게 고령화 속도 역시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프랑스나 독일, 일본을 따돌리고 훨씬 더 빨리 급속도로 늙어간다. 

늙어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공동체의 대응이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형제나 자식들이 오롯이 책임지기에는 그들이 처한 현실 역시 녹록지 않아 노인들이 마음 편히 기대고 머물 곳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도 숱하게 나온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구호까지 내걸면서 산아제한에 박차를 가한 결과 노인 인구를 건사할 젊은이들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가족 구성은 급격히 축소됐고 1인 가구는 빠르게 늘어나면서 고독은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고독사가 아니라 고독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불로장생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가혹한 유혹인지 저마다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이 노인 증가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동안 이들 노인 인구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케어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직접판매가 거론된다. 

도심의 골목과 시골의 외딴 마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건강음료를 전달하는 판매원, 정기적으로 고객과 파트너를 만나 안부를 묻는 다단계판매원들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작은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독거노인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거나 실종된 치매 노인을 찾아내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보고된다. 

행정과 복지가 미처 닿지 못한 생활의 틈을 일상의 대면 네트워크가 메우고 있는 셈이다. 무지한 많은 사람들은 다단계판매를 포함한 직접판매를 그저 돈을 버는 행위로만 바라본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기고, 정부 당국자 또한 이러한 수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면서 정책 수립이나 법률 재정비에도 손을 놓는 행정 공백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직접판매의 본질은 단순한 상품 유통이 아니다. 사람을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관계를 유지하는 구조다. 세미나와 교육, 팀 미팅, 제품 전달 등 다양한 접점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 상태를 살핀다. 특히 고령층에게 이러한 만남은 경제 활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노년의 고립은 단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국가가 제도와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사람의 삶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관계다. 그런 점에서 골목을 다니는 판매원 한 사람,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파트너 한 명이 때로는 어떤 정책보다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산티아고 곁에 마놀린이 있었듯, 우리 사회에도 노인을 붙들어 줄 관계의 끈이 필요하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