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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 규제가 바꾸는 한국 헬스케어 전략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6-03-06 08: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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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와 FDA 임상 규정 강화, 글로벌 임상시험 지형의 재편은 의약품산업뿐 아니라 건강기능식품, 바이오, 디지털헬스 전반의 시장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해외 시장을 노리는 국내 기업이라면 ‘규제 리스크 관리’가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미국 관세 리스크가 촉발한 글로벌 의약품 생산 재편
최근 글로벌 의약품 생산량이 이례적으로 급증한 배경에는 미국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서비스기업 아트라디우스(Atradius)에 따르면, 미국이 의약품 수입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시사하자 주요 제약사들이 선제적으로 생산을 확대하며 2025년 글로벌 의약품 생산량이 전년 대비 9.1%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수요 증가가 아닌,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재고 확보(front-loading)’ 전략의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영국과 유럽연합(EU)은 2025년 생산량이 21% 이상 급증했으며, 아일랜드는 글로벌 제약 제조 허브 역할을 하며 40%가 넘는 생산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 역시 생산량이 5% 이상 늘었으나, 이후에는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국은 미국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 원료의약품(API) 경쟁력을 바탕으로 2026년 이후에도 6%대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변화는 단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가별 생산기지 분산과 전략적 비축 확대 등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각국 정부가 자국 내 의약품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제약산업은 단순한 시장 경쟁을 넘어 ‘정책·안보 리스크 관리’라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남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원료 조달 구조가 바뀌고, 해외 생산 비중이 늘어날수록 품질 관리 기준, 허가 요건, 통관 규제에 대한 이해가 필수 요소로 떠오른다. 특히 건강기능식품과 바이오소재 기업 역시 원료의 글로벌 조달 비중이 높은 만큼, 의약품산업에서 나타난 공급망 재편 흐름은 그대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임상 확산? FDA 승인에는 ‘미국 환자 20%’ 벽
글로벌 임상시험 무대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중국이 핵심 시험 무대로 부상하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연구개발(R&D) 전략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임상시험 신청부터 승인까지 소요 시간을 50~70% 단축했으며, 2023년 기준 글로벌 임상연구 점유율이 39%에 달할 정도로 환자 모집과 개발 속도 측면에서 미국과 유럽을 앞섰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 R&D 조직에 150억 달러를 투자해 신약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단계를 현지화한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촘촘한 CRO 생태계와 병행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초기 임상 단계에서 강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세포치료제,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 등 고난도 영역에서도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진출, 특히 미국 FDA 승인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게 중국 임상은 ‘속도는 빠르지만, 승인 문턱은 여전히 높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FDA 규정에 따르면, 미국 승인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대상자의 최소 20% 이상이 미국 환자로 구성돼야 하며, 미국 내 데이터가 부족할 경우 승인 자체가 거부될 수 있다. 실제로 일라이릴리와 이노벤트의 PD-1 억제제 신틸리맙은 중국 단일 국가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승인 신청을 했다가 미국 환자 데이터 부족을 이유로 FDA로부터 거절당했다. 로슈의 컬럼비 역시 적응증 확대 신청 과정에서 미국 임상 참여 비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인에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이는 글로벌 임상 전략이 단순히 ‘어디서 더 빨리 시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최종 허가 시장의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가’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해외 임상을 통해 개발 속도를 높이더라도,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 규제 요건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상업화 단계에서 다시 시험을 반복해야 하는 비효율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 정책에도 간접적 영향
미국 관세 정책과 FDA 임상 규제 강화는 국내 정책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약품과 바이오제품의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각국 규제기관은 품질 관리, 임상 데이터 신뢰성, 제조 공정 투명성에 대한 요구 수준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국내 허가·심사 체계 역시 국제 조화(harmonization)와 실증 데이터 기반 규제 강화라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특히 해외 임상 데이터 활용과 관련해 식약처는 이미 ICH 가이드라인에 따라 인종 간 차이(Ethnic factor) 분석, 브리지 임상 요구 여부, 데이터 외삽(extrapolation) 기준 등을 적용하고 있다. 향후 미국 FDA가 미국 환자 참여 비율을 엄격히 관리하는 흐름이 강화될 경우, 국내 기업이 해외 임상 데이터를 국내 허가에 활용할 때에도 보다 정교한 근거 제시와 데이터 신뢰성 검증이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분산 전략은 원료의약품(API), 부형제, 원자재의 생산·유통 이력 추적성(traceability)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의약품뿐 아니라 건강기능식품 원료, 기능성 소재, 바이오 원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흐름이다. 최근 식약처가 원료 관리 강화, GMP 기준 정교화, 수입 원료 실태조사 확대 등을 추진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식약처 허가·심사 요건을 단순히 국내 규제로만 이해하기보다, 미국 FDA나 유럽 EMA 등 주요 규제기관의 글로벌 기준과 연동된 구조로 해석하는 접근이 필요해지고 있다. 결국 초기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규제 전략을 염두에 둔 설계가 곧 국내 허가 성공 가능성과 직결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 진출, ‘속도’보다 ‘규제 적합성’이 관건
최근 바이오·헬스케어산업 전반에서 ‘빠른 개발’이 경쟁력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는 단순한 속도 경쟁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중국 임상을 통해 임상 초기 단계를 단축하더라도, 미국 FDA 승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다시 임상을 설계해야 하는 이중 비용 구조에 직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관세 리스크에 대비한 글로벌 생산기지 다변화는 단기적으로 안정성을 높이지만, 품질 관리·허가·실사 대응 부담을 동시에 증가시키는 양면성을 갖는다.

결국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 환경 변화는 ‘빠른 개발 → 빠른 허가 → 빠른 시장 진입’이라는 기존 선형 구조를 해체하고, ‘규제 적합성 기반의 전략적 개발 → 글로벌 데이터 연계 → 안정적 공급망 구축’이라는 새로운 경쟁 구도로 재편하고 있다. 이는 국내 헬스케어산업 전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흐름이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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