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전쟁의 소용돌이’…K-기업 비상
‘글로벌 사우스’ 전략이 직면한 예상치 못한 암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현실화되면서 중동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업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때 ‘기회의 땅’으로 불리던 이곳이 순식간에 화약고로 변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그룹 등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임직원 안전 확보와 사업 차질 방지를 위한 긴급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지난 3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분쟁의 직격탄을 맞은 이란과 이스라엘 사업장의 인력을 즉각 인접국으로 이동시켰다. 삼성전자는 사태가 터지자마자 두 국가에 체류하던 임직원들을 두바이, 이집트, 요르단 등으로 급히 대피시켰으며, 특히 이란 사업장은 자체적으로 일주일간의 휴무를 결정하며 셧다운에 들어갔다. 현재 사우디와 요르단 법인은 정상 근무를 이어가고 있으나, UAE와 카타르, 이라크 법인은 재택근무로 전환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해 왔다. 삼성은 향후 전황에 따라 제3국 대피나 본국 귀국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역시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현지의 한국인 임직원과 가족들은 이미 대사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으며, 이란에서 근무하던 한국 인력도 지난주에 이미 출국을 마친 상태다. LG전자는 중동 전역의 직원들에게 불필요한 이동을 자제하라는 강력한 권고를 내리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중동 지역 첫 생산 기지(HMMME)를 건설 중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현지 공항은 폐쇄된 상태지만, 다행히 건설 현장 인력들은 정상적으로 출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분쟁 지역인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에서는 대리점 쇼룸 운영을 일시 중단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에 나섰다. 현대차 측은 비상 연락 프로토콜을 유지하며 중동 전역의 상황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으며, 사태 추이에 따라 추가적인 대응 전략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번 사태가 뼈아픈 이유는 국내 가전·자동차업계가 수요 침체의 돌파구로 낙점했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공략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중동에서 공조 시스템(에어솔루션)을 앞세워 B2B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중동 에어솔루션 데이’를 여는 등 공들여왔고, 사우디 리야드와 이스라엘에 각각 지역 본부와 반도체 연구소까지 운영하며 기반을 닦아왔으나 이번 분쟁으로 사업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LG전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UAE 아부다비에서 7년 만에 대규모 행사인 ‘LG 이노페스트’를 열고 250여 명의 주요 거래처를 초청해 중동·아프리카 시장의 청사진을 제시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악재를 만난 것이다. 두바이 본부를 필두로 사우디의 에어컨 공장과 이집트의 TV 생산 라인 등이 인접국에 위치해 있어, 공급망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가장 큰 걱정은 물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물류비와 유가, 환율이 요동치며 사업 수익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현대차는 올해 4분기 사우디 공장 완공을 목표로 중동·아프리카 생산 거점 확보를 서두르고 있었으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부품 수급을 위해 우회 항로를 찾아야 하는 등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안해 제한적으로 영업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처럼 전면적인 공습 상황은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라며, “현재로서는 현지 수요 변화를 점검하고 물류 대체 경로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설명했다.
“단 한 방울도 못 나간다”…100달러 유가 공포 현실화
미국의 전격적인 이란 공습 이후,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혈맥인 호르무즈 해협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란이 해협 폐쇄를 예고하며 보복 의지를 다지자, 시장에서는 1970년대 오일 쇼크에 버금가는 대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 3월 2일(현지시간), 뉴욕과 런던의 원유 선물 시장은 공포 섞인 매수세가 유입되며 비정상적인 급등세를 보였다.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4월 인도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4.21달러(6.28%) 오른 배럴당 71.23달러로 마감했다. 브렌트유 역시 5월물 가격이 4.87달러(6.68%) 치솟으며 배럴당 77.74달러를 기록하며 80달러 선을 목전에 두게 됐다.
유가 폭등의 도화선이 된 것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경고였다. 에브라힘 자바리 IRGC 사령관 보좌관은 현지 매체를 통해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을 불태워 이 지역에서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와 관련해 시장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양 병목지점이 막힌다면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충격이 불가피하며, 10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틀 전만 해도 오만만에 포진했던 이란 함정 11척이 현재는 모두 사라졌다”며, 이란의 해상 장악력이 이미 약화되었음을 꼬집었다. 이는 이란의 ‘괴롭히기’ 시대가 끝났다는 자신감 섞인 발표였다.
하지만 MST 마퀴의 사울 카보닉 총괄은 “이번 사태는 1970년대 석유 금수 조치보다 3배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유가뿐만 아니라 LNG 가격까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중동 하늘길 마비에 발 묶인 K-관광객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상호 공습으로 아라비아반도의 주요 관문 공항들이 폐쇄되면서, 현지 한국 관광객들의 불안감 또한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이번 사태로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 등 주요 경유지가 봉쇄되자,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여행하던 우리 국민들은 귀국 항공편 취소와 체류 비용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특히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의 상황이 긴박했다. 패키지 여행이 끝난 관광객들은 사비로 추가 체류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비자 만기일 내에 출국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대사관에 대책을 문의하는 등 문의가 쏟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이란의 보복 공격 위험에 노출된 이스라엘 내 한국인들은 이집트로의 긴급 대피를 시작했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은 영사를 파견해 통관을 돕는 한편, 공관 직원들이 자신의 집을 숙소로 내놓는 등 자발적인 구호 활동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심각한 항공 대란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사흘간 수천 편의 항공기가 취소되었으며, 승객 수십만 명의 발이 묶였다.
단순한 운항 중단을 넘어 공항 시설이 직접 타격을 입으면서 공포는 더욱 커졌다. 아부다비 공항에서는 드론 격추 과정에서 발생한 파편으로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으며, 연간 9,500만 명이 이용하는 두바이 국제공항 역시 청사 일부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독일, 이탈리아,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은 자국민 철수를 위해 사우디와 오만 등에 전세기를 급파하며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지난 3월 2일(현지시간)부터 UAE 일부 항공사들이 제한적으로 운항을 재개했다. 에티하드 항공은 아부다비에서 런던, 파리, 카이로 등으로 향하는 15편의 여객기가 이미 이륙했으며, 에미레이트 항공은 소수의 여객편 운항을 재개하며 기존 예약 승객 수송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플라이 두바이는 점진적인 복귀를 위해 관계 당국과 협력 중이며 소수의 비행편을 띄우기 시작했다.
다만, 당국은 안전상의 이유로 항공사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승객에 한해서만 공항에 나올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카타르 도하 공항은 지난 3일 아침 추가 평가가 있을 때까지 이착륙 중단을 유지하고 있으며, 요르단 영공도 부분 폐쇄되는 등 여전히 변수가 많은 상황이었다.
‘전쟁 공포’ 뚫고 1억 원 탈환한 비트코인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급격한 가격 조정을 겪었던 가상자산 시장이 하루 만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지난 3일 오전, 비트코인은 다시 1억 원 선 위로 올라서며 투자자들도 안도 랠리를 이끌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8시 15분 기준, 국내 거래소 빗썸에서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2.83% 상승한 1억 87만 4,000원에 거래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6만 9,000달러(약 1억 115만 원)대 후반까지 가격을 끌어올리며 강력한 복구력을 과시했다. 이러한 현상은 불과 지난달 28일, 이란 공습 소식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극에 달하며 9,200만 원대까지 밀려났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등이다. 당시 시장은 공포에 휩싸였으나, 지난 3월 2일 자정을 기점으로 대규모 매수세가 유입되며 하락분을 모두 만회했다.
이번 반등은 단순히 심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시장 내부의 수급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과 S&P500이 기술주 중심의 저가 매수에 힘입어 상승 마감하자, 가상자산 시장 역시 ‘공포가 과도했다’는 인식이 퍼졌다. 가격 급락을 예상하고 하락에 베팅했던 공매도 세력들이 가격이 오르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비트코인을 대거 되사는 과정에서 가격이 폭등하는 ‘쇼트 스퀴즈’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매수 압력을 가중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주춤했던 비트코인 현물 ETF로 다시 글로벌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장기 보유 수요가 가격을 뒷받침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이번 반등이 하락 추세를 완전히 돌려세웠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평가다.
가장 중요한 분수령은 7만 5,000달러(약 1억 992만 원) 부근의 강력한 저항선이다. 이 구간을 거래량을 동반해 돌파하느냐가 향후 강세장 재개 여부를 가를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지정학적 불안이 여전하고 거시 경제 환경의 변동성이 큰 만큼, 투자자들은 ‘V자 반등’에 대한 과도한 낙관보다는 분할 매수 관점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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