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의 시대를 끝내고 증명, 그리고 ‘초연결’로 회귀

2026년, 전 세계 직접판매 시장은 거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은 이제 안착 단계를 넘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고,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까다로워졌다. 이러한 시점에 미국 직접판매 전문지 다이렉트셀링뉴스(DSN)가 발표한 두 건의 리포트, ‘The Road Ahead(앞으로 나아갈 길)’와 ‘Latin America’s Moment(라틴 아메리카의 순간)’는 정체기에 빠진 한국 직접판매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지금 ‘과학적 검증’과 ‘AI 혁신’을 통해 시장의 판을 새로 짜고 있으며, 남미는 ‘인간적 신뢰’와 ‘디지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과연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카더라’ 통신은 이제 그만…‘테스트 기반 웰니스’로의 대전환
미국 시장에서 감지되는 가장 강력한 변화의 바람은 바로 ‘건강기능식품의 과학화’다. 과거 직접판매업계가 “이 제품을 먹으면 몸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나 체험 사례에 의존했다면, 2026년의 글로벌 트렌드는 ‘철저한 데이터와 증명’으로 이동했다.
DSN 리포트인 ‘The Road Ahead’에 따르면, 진지노(Zinzino)와 같은 기업들은 가정용 혈액 검사 키트를 도입해 소비자가 제품 섭취 전후의 신체 변화를 데이터로 직접 확인하게 함으로써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는 소비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하고 관리하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직접판매 시장은 전 세계에서 건강기능식품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 중 하나다.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약국 채널과의 경쟁에서 직접판매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신뢰’가 아닌 ‘눈에 보이는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DTC(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나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분석 서비스를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단순히 “비타민을 드세요”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개인의 선천적 취약점을 파악하고, 장내 미생물 분석을 통해 현재의 식습관 문제를 진단한 뒤, 3개월 후 재검사를 통해 제품의 효능을 수치로 증명해 보이는 등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테스트 기반 웰니스 프로세스는 한국 소비자 특유의 깐깐함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 텔레헬스(원격진료)와 연계된 GLP-1(비만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한국 역시 전문 의료기관과의 제휴를 통한 ‘전문가 연계형 헬스케어 솔루션’을 구축해야 한다. 의약품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는 ‘동반자 케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한국 직접판매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남미의 열정에서 배우는 교훈, 기술보다 강한 ‘초신뢰 커뮤니티’의 구축
남미 시장이 아시아를 맹추격하며 급부상하는 원동력은 최첨단 기술 이전에, 그 기술을 움직이는 ‘사람 간의 끈끈한 유대’에 있었다.
남미는 가족 중심의 문화와 높은 모바일 의존도가 결합하여 독특한 직접판매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들은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되, 단순히 물건을 파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신뢰를 쌓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한다. 이는 기술이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술을 리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직접판매는 IT 인프라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는 ‘판매’와 ‘리크루팅’에 매몰되어 있다. 카카오톡 단체방은 공지사항과 제품 홍보로 도배되고, SNS는 보여주기식 성공 과시에 치우쳐 있어 오히려 대중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한국형 직접판매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남미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디지털 정(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판매원은 단순한 ‘셀러’가 아니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컨설팅해 주는 ‘큐레이터’이자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로 거듭나야 한다.
판매원들은 단순히 “SNS에 제품 사진을 올려 홍보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온라인상에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지, 그 ‘소통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팔로워 수가 많은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 10명의 고객이라도 깊은 신뢰 관계를 맺는 ‘진짜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소셜 커머스 시대, 한국 직접판매가 놓치고 있는 ‘본질’이다.
AI는 대체자가 아닌 ‘최강의 무기’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메리케이(Mary Kay), 니오라(Neora) 등 글로벌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스킨케어 진단, 제품 추천, 그리고 판매원 코칭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 전반을 혁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AI가 판매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원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증강’ 도구로 쓰인다는 것이다. AI 피부 분석 앱은 초보 사업자도 전문가처럼 고객의 피부 상태를 진단할 수 있게 해주며, AI 코칭 시스템은 사업자의 활동 패턴을 분석해 “오늘은 이 고객에게 연락해 보세요”라며 구체적인 행동 가이드를 제시한다.
한국 직접판매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상위 스폰서의 역량에 따라 하위 파트너의 성공 여부가 크게 갈린다는 점이다. 또한, 고령화되는 사업자 조직과 달리 신규 유입되는 젊은 층은 체계적이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원한다.
이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AI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AI 디지털 스폰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첫째, 제품 상담의 AI화다. 고객이 앱을 통해 자신의 건강검진 데이터나 피부 사진을 입력하면, AI가 일차적으로 분석 결과를 내놓고 사업자가 이를 바탕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이는 사업자의 전문성을 보완하고 고객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준다.
둘째, 교육의 AI화다. 획일화된 집단 교육에서 벗어나, AI가 각 사업자의 부족한 점(예: 리크루팅 능력 부족, 제품 지식 부족 등)을 파악하고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개인화된 러닝 패스’를 제공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한다.
지금 한국 직접판매산업은 저성장의 늪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테스트 기반의 과학적 검증’, ‘커뮤니티 중심의 진정성’, ‘AI를 통한 초개인화’라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았다.
이제 한국의 CEO와 리더들이 응답할 차례다. 과거의 성공 방식인 ‘인해전술’과 ‘감성 마케팅’만으로는 2026년의 파도를 넘을 수 없다. 미국과 남미가 보여준 혁신의 길을 한국적 토양에 맞게 이식하고, 과감한 R&D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지금 혁신하지 않으면, 한국의 직접판매는 글로벌 트렌드에서 영원히 고립된 ‘갈라파고스’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 바로 그 골든타임이다.
공병헌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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