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처럼 사랑하는 내 꿈
<구름 위의 삶> - 제5장 - 마음
저자 <댄다코리아 김영삼 회장>
03. 목숨처럼 사랑하는 내 꿈
우리 형제는 7남매로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넉넉지 않은 환경을 견뎌내야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 밤에 별을 보며 들어올 만큼 고되게 일했으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기에다 아버지가 술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낮술까지 드셨으니 365일 중 366일을 술로 사신 셈이었다. 술잔은 소주잔이나 맥주잔이 아니라 대접이었다.
그 탓에 하루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하고 들어와 밤에 어머니와 티격태격하는 일이 잦았다. 두 분은 복싱에 암바 기술까지 동원하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두 분이 심하게 싸우는 날에는 우리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아버지가 마구 화를 내며 지게 작대기로 때리려 하면 우린 어머니와 함께 비닐하우스로 도망쳤다. 그런 날엔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모종 이불을 덮고 밤하늘을 보며 잠을 청했다.
어느 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소원을 빌었다.
“사장이 되게 해주세요~”
그렇다. 내 꿈은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어도 가난이 싫었다. 내 할머니는 힘들게 농사를 짓다가 돌아가신 뒤 그 밭 모서리 산에 묻혔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평생 고된 농사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살림살이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를 먹는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다. 나는 버스비 100원이 없어서 산 두 개를 넘어 걸어서 다녔다. 학교에 다녀와 학원에 가거나 주말에 노는 친구는 더 부러웠다. 우리 형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평일이든 휴일이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 모든 것이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는데 사장이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에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출근하는 게 아닌가.
“그래, 바로 저거야! 난 사장이 되어야겠다.”
나는 진정 가난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반드시 사장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어린 내 가슴에 ‘신념의 알’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인생 방향을 정했기에 나는 청년 시절부터 태양열 대리점, 밤 유통, 자동차 도색, 식당 경영 그리고 지금의 회사 운영까지 사업에 매진했다. 결국 나는 내 꿈을 이뤘다. 이제는 꿈을 넘어선 꿈을 실천하고 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정말 이뤄질까? 어쨌거나 나는 이것을 실제로 경험했는데 여기에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별똥별은 눈에 띄자마자 거의 1초에서 2초 안에 사라진다.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려면 평소 마음속에 꿈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래야 별똥별을 보자마자 바로 소원을 빌 수 있다.
우리는 마음속에 생생하게 품은 꿈을 닮아가고 그 꿈은 마침내 이뤄진다. 꿈과 함께 눈을 뜨고, 꿈과 함께 호흡하고, 꿈과 함께 밥을 먹고, 꿈과 함께 울고 웃고, 꿈과 함께 잠자리에 들자. 물고기가 물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달이 지구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 우리는 꿈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나도 그렇다. 나는 내 소중한 꿈을 목숨처럼 사랑한다.
04. 구름 위의 삶
구름 아래의 삶은 눈, 비, 바람, 태풍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하지만 구름 위의 삶은 그러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늘 화창하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나는 오다리 버터 구이를 시작으로 순대, 호떡 노점상을 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자동차 도색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사업이 잘되자 비슷한 가게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새벽 3시 무렵 작업을 하던 나는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급히 119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가 진단을 받으니 위천공이라 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나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경쟁자가 지나치게 늘어난 상황이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이후 갈빗집을 열고 잘나가다 또다시 엎어진 이유도 자본을 등에 업은 경쟁자가 출현한 탓이었다. 아무리 울고불고하고 세상을 향해 원망을 토해낸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 둘을 건사하며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직장에 들어갈까, 아니면 예전에 하던 막노동을 다시 해볼까?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다.
갈빗집을 접은 뒤 빚이 5억 넘게 남았다. 모든 걸 정리하고 LH에서 빌려준 보증금 7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빌라로 이사했다. 낡아빠진 실내 구조는 그렇다 치고 한여름엔 옥상의 지열로 너무 더웠고, 한겨울에는 외풍이 심해 이불을 덮어도 입김이 보일 정도였다. 그런 집에도 결국 빨간딱지가 붙고 채권자들이 찾아와 압박했다.
그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다. 내게는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을 투자할 수 없었다. 몸뚱이 하나로 열정을 다하면 다할수록 돈을 더 버는 사업이 최적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직판 유통회사와 연결되었다. 무자본, 무점포, 무경험으로 사업이 가능한 ‘3무 사업’이었다.
여전히 채권자들이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나는 사무실에 라꾸라꾸 침대를 펴놓고 잤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보냈다.
다른 사람과 동선이 겹치지 않으려고 나는 매일 새벽 6시에 샤워를 했다. 12월 새벽, 화장실에서 주황색 바가지로 머리에 찬물을 부으면 정수리부터 타고 내려오는 한기가 면도칼로 긋듯 온몸에 파고들었다. 그 느낌이 내 처지를 상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날카로운 칼을 목에 대는 심정으로 다짐했다.
“만약 내가 이 회사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냥 죽자! 이걸 못 해내면 나는 살 가치가 없다! 그동안 패기와 열정을 이렇게 저렇게 불태웠지만 그 청춘의 열정은 하얀 재가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죽으리라.”
이런 각오로 나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피를 토하듯 회사, 제품, 마케팅을 설명했다. 그리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혼자 사무실에서 라꾸라꾸 침대를 펴며 벌거벗은 내 현실과 마주했다.
어린 두 아이가 몹시 보고 싶었으나 집에 갈 수 없었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채권자와 마주치기 싫었고 처량한 내 현실과 마주하는 것은 더 싫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일요일에 사무실 근처 중국음식점으로 불렀다. 두 아이가 자장면을 먹고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씹어 삼켰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내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다!
거의 매일 웅크리고 새우잠을 잤지만, 아이들을 만난 날은 특히 더 두 다리를 펴고 잘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었으나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성공을 상상했다. 말 그대로 새우잠을 자면서 고래의 꿈을 꿨다!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새우지만 고래가 되어 저 태평양에서 헤엄치리라!
결국 나는 내 사업에서 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5억 원 넘는 빚을 2년여 만에 갚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또한 부동산 재테크로 5년 만에 평생 먹고살 수익도 올렸다.
나는 20여 년 동안 구름 아래의 삶을 살았다. 그 기간에 온갖 풍파를 겪은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약 5년 만에 구름 위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는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것은 엄청난 자유다.
많은 사람이 구름 위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내 꿈이자 바람이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내 잘못이다. 이왕 태어났으니 우리 모두 구름 위의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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