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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약 개발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6-03-26 16:55:08
  • 수정 시간 : 2026-03-26 17: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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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신약 하나면 기업의 운명이 바뀐다”는 말은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연 매출 1조 원을 넘는 ‘블록버스터 신약’은 단일 품목으로도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국가 산업 경쟁력까지 좌우한다. 그렇다면 지난 25년간 축적된 국내 신약 개발의 성과는 어디까지 왔을까.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넣은 단계일까, 아니면 여전히 가능성에 투자하는 고위험 산업에 머물러 있을까.


양적 성장과 구조적 진화
국내 신약 개발은 1999년 첫 국산 신약 허가 이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후 25년 동안 총 38개의 신약이 허가되며 외형적인 성장 측면에서는 분명한 성과를 축적해왔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는, 이 기간 동안 연구개발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가 함께 성장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신약 파이프라인 수가 1,700개를 넘어서는 등 연구개발 기반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고, 초기 탐색 단계부터 글로벌 임상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구조가 점차 정착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발 방식 역시 눈에 띄게 변화했다. 과거에는 해외 기술을 도입하거나 다국적 제약사와의 공동개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비임상 및 초기 임상까지 수행한 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이 하나의 표준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라이선스 아웃’ 중심 모델이다. 이는 단순한 개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연구 초기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기업들이 최소한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 역량’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과거 제네릭 의약품 중심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혁신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산업의 질적 도약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연구개발 인력, 임상 수행 경험, 규제 대응 역량 등도 축적되면서 전반적인 산업 체력이 강화되는 양상이다.

성과는 더 이상 허가 건수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제 시장에서 매출을 창출하는 국산 신약이 점차 늘어나며 ‘상업화 가능성’ 역시 확인되고 있다. 연간 처방액 100억 원을 넘는 제품이 10개 이상 등장했고, 일부 품목은 500억 원을 상회하며 안정적인 블록버스터 후보군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과거 ‘허가 이후 시장 안착 실패’라는 한계를 일정 부분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특히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은 연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00억 원대 진입까지 거론되며 국산 신약의 상업적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진출까지 병행하며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이 외에도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 위장질환 치료제 ‘펙수클루’, 소염진통제 ‘펠루비’ 등은 꾸준한 처방 실적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매출 흐름을 유지하며 국산 신약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항암제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 표적항암제 ‘렉라자’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을 통해 해외 허가를 획득하며, 국내에서 개발된 혁신 신약이 글로벌 규제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한 개별 제품의 성과를 넘어, 국내 신약 개발 역량이 국제적 기준에 근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 성공 사례를 종합해 보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도출된다. 우선 시장 규모가 충분히 큰 질환 영역을 타깃으로 하면서 기존 치료제 대비 복용 편의성 개선이나 약효 차별성 확보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초기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임상 전략과 파트너십을 병행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결국 신약 개발의 성패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시장 진입 전략과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업화의 벽 앞에 절반은 사라진다
그러나 긍정적인 성과만으로 산업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실제로 상당수 국산 신약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판매 중단 또는 허가 취소된 신약이 10개에 이르며, 일부 제품은 연간 처방액이 1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다. 이는 신약 개발의 성공이 단순히 ‘허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상업화 단계다. 임상 시험을 통과해 허가를 받더라도, 경쟁 약물 대비 차별성이 부족하거나 시장 진입 전략이 미흡할 경우 매출은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글로벌 신약과 경쟁해야 하는 환경에서 국내 신약은 가격, 임상 데이터, 브랜드 인지도 등 여러 측면에서 열세에 놓이기 쉽다.
 


여기에 시장 수요 예측 실패, 보험 등재 지연, 마케팅 역량 부족까지 겹치면 제품은 빠르게 시장에서 도태된다. 결국 신약 개발의 진짜 승부는 연구개발이 아니라 시장 안착 이후에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글로벌 기준의 블록버스터 신약이 국내에서 탄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 매출 1조 원 이상을 기록하는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 신약 산업은 여전히 ‘가능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의 배경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신약 개발에는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며, 특히 후기 임상 단계에서는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가 요구된다. 국내 기업이 이를 독자적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등장한 전략이 바로 기술수출이다. 임상 2상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해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조기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기술수출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며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한계를 갖는다. 기술을 이전하는 순간 제품에 대한 통제권은 글로벌 기업으로 넘어가고, 최종 상업화 성과의 상당 부분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계약 구조에 따라 마일스톤 수익이 불확실해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자체 상업화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R&D를 넘어 ‘산업 역량’ 갖춰야
글로벌 제약 시장을 보면 블록버스터 신약의 탄생은 단순히 연구개발의 결과가 아니다. 미충족 의료 수요를 정확히 겨냥하고, 적응증을 확장하며, 빠른 허가와 보험 등재를 거쳐 강력한 마케팅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종합 산업 역량’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희귀질환이나 특정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신약도 블록버스터로 성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형 시장에만 집중하기보다 차별화된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국내 신약 개발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역량을 넘어서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글로벌 임상 수행 능력, 대규모 투자 환경, 규제 대응 역량, 그리고 상업화 전략까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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