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칼럼> 퇴직연금 의무화가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
현행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퇴직금 제도’나 ‘퇴직연금 제도(DB, DC)’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 퇴직급여를 지급하여야 한다. 언뜻 보면 ‘의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위반 시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이 사실상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기업의 도입률은 90%를 상회하는 반면,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도입률은 20%대에 머물러 있다.
이번 정부는 4월부터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을 의무화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본격 착수하고, 금년 7월까지 단계적 의무화 및 영세사업장 지원방안을 마련한 후, 올해 말까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 칼럼에서는 정부는 왜 퇴직연금 의무화에 집중하고 있고 그 내용은 무엇인지, 어떠한 장단점이 예상되는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1. 퇴직연금 의무화 추진 배경
가장 큰 배경은 사업주의 체불 리스크와 근로자의 노후 파편화 때문이다.
현재의 퇴직금 제도는 퇴직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일시금을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평소에 적립해두지 않은 기업은 근로자가 한꺼번에 퇴직할 경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임금체불’로 이어져 사업주가 형사 처벌을 받는다.
또한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 역시 적립금을 제때 적립하지 않다가, 폐업 위기 시 지급할 연금이 없는 상황을 목도한다. 근로자 역시 내 퇴직금이 회사 장부상에만 존재할 뿐, 실제로 외부 금융기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근로자들은 퇴직금을 중간정산하거나 일시금으로 받아 주택 마련, 부채 상환 등에 써버리는 탓에, 정작 은퇴 시점에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노인이 속출한다.
2. 단계적 의무화와 강력한 유인책
정부의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로드맵의 핵심은 단순히 ‘가입’을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퇴직급여를 기업 내부가 아닌 외부 금융기관에 쌓도록 하는 ‘사외적립 의무화’에 있다. 또한 적립금을 제때 적립하지 않는 경우에 처벌규정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기업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격적인 유인책을 병행한다.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 가입 시 사업주 부담금의 일부를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범위를 확대하고, ▲퇴직연금 도입 기업에 대한 손비 인정 및 법인세 감면 혜택을 강화하며, ▲근로자는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소득세 감면율을 높여 ‘일시금’보다 ‘연금’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수익률이 낮으면 상품을 퇴출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을 도입하고,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여 투자전문성을 높여 저조한 수익률 문제를 해결한다.
3. 퇴직연금 의무화의 기대와 우려
퇴직연금 의무화가 안착되면 근로자에게는 ‘수급권 보호’라는 강력한 장점이 생긴다.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된 내 돈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직이 잦은 현대 직장인들이 IRP(개인형 퇴직연금)를 통해 퇴직금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노후 자산의 누수를 막을 수 있다.
반면, 중소·영세 사업주에게는 ‘즉각적인 비용 부담’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퇴직 시점에 지급하면 되던 퇴직금을 매달 혹은 매년 현금으로 지출해야 하므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 또한, 근로자 입장에서도 당장 목돈이 필요한 경우 중도 인출 규제가 강화되는 점은 제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
4. 전문가적 시각에서 본 대응 전략
퇴직연금 의무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인사노무적 관점에서 볼 때, 조기에 퇴직연금 체제로 전환하여 법인세 절감 효과를 누리고 잠재적인 퇴직금 체불 리스크를 해소하는 것이 경영 전략상 훨씬 유리하다.
결국 이 제도의 성공 열쇠는 ‘수익률’과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에 달려 있다. 퇴직연금이 잠자는 돈이 아니라 불어나며 든든한 노후를 보장하는 자산이라는 확신을 노사 모두에게 심어주고, 정부가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면 자연스레 퇴직연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지윤·송하승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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